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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고갤럼들아. 이런 글 올리는 것부터가 좀 이상한데 진짜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서 씀

우리 집 재혼가정이었음. 나는 아빠랑 살다가 아빠가 재혼하면서 의붓여동생 생겼음. 처음엔 어색했음. 남처럼 살진 않겠지 싶었는데 막 친해지지도 못하고 그냥 같이 집에 있고 밥 먹고 그런 식으로 시간만 감

근데 중학교 때 일이 터졌음. 부모님이 둘이 같이 여행 갔다가 실종됨. 신혼여행 비슷한 거였고 정확히 사건인지 사고인지도 애매하게 남았는데 결론은 안 돌아왔음. 경찰도 애매한 말만 하고 주변 어른들도 시간 지나면서 표정 바뀌더라. 그때부터 우리 둘만 남았고 애는 당연히 무너졌음

고모가 배려해줘서 일단 우리 둘이 살 수 있게 해줬음. 대신 조건 걸었음. 내가 고등학교는 계속 다니면서도 돈 벌어서 둘이 최소한으로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계속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함. 말은 쉬운데 사람 하나 인생 갈아 넣는 조건 맞음

문제는 그 뒤로 여동생이 방에 틀어박힘. 잠깐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안 나옴. 문 열리는 걸 본 적 거의 없음. 밥은 내가 문 앞에 놔두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가끔은 그대로 남아있고, 남아있으면 내가 또 새로 놓고 또 기다리고 그걸 반복하는 게 일상 됨

병원 데려가라 할 만붕이 있을 텐데 나도 모르겠냐. 근데 어떻게 데려감. 문을 안 열음. 내가 억지로 열면 그 다음부터는 평생 내 얼굴도 안 볼 것 같아서 못 함. 얘한텐 이미 한 번 세상이 무너졌는데 내가 또 강제로 뭔가 하면 회복이 아니라 더 박아버리는 칼 될 것 같아서 무서움. 나도 어른이면 결단 내리겠지 싶은데 나도 고등학생임. 나도 솔직히 겁나고 답 없음

나는 잘은 안 나가지만 글 쓰는 걸로 돈 벌고 있음. 라이트 노벨씀. 웃기지. 고등학생이 라노벨로 먹고산다 이런 거. 근데 진짜로 그렇게 됐음. 신인상 비슷한 걸로 시작해서 편집부랑 연결됐고 마감 있고 다음 권 얘기하고 표지 얘기하고 그런 게 굴러가니까 돈 됨. 돈 되니까 버팀. 근데 돈 된다는 건 내가 멈추면 다 끝난다는 뜻이라 더 숨막힘

그리고 이 얘기 하려면 그 사람 얘기 해야 함

내 작품에 그림 붙여주는 일러스트레이터 있는데 익명이었음. 닉네임만 알고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름. 근데 그림 존나 잘 나옴. 편집부도 그 사람 덕에 작품 산다는 소리까지 함. 문제는 닉네임이 미친 듯이 튐. 에로망가 선생. 진짜 그 이름임.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업계에서 그 닉으로 굴러가더라. 나도 일로 엮인 거라 참고 같이 가는 중이었음

어느 날 그 사람이 그림 방송 킴. 평소엔 메일로만 오가니까 나도 궁금해서 봤음. 근데 방송 켜자마자 손이 굳었음. 화면엔 손만 나오는데 분위기랑 소리랑, 그리고 집 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정적이 너무 똑같았음. 태블릿 펜 긁는 소리 숨 고르는 소리 혼자 집중할 때만 나오는 그 공기. 나도 모르게 여동생 방 문 앞까지 가서 멈춤

결론부터 말하면 에로망가 선생이 내 여동생이었음

그 순간 기분 존나 이상했음. 살았다 싶으면서도 끝났다 느낌 동시에 옴. 얘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가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혼자서 살아남고 있었던 거임. 근데 왜 하필 그런 닉네임이고 왜 하필 내가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왜 하필 이렇게 들켜버린 느낌인지, 안도감이랑 죄책감이랑 공포가 한꺼번에 와서 손 떨림

근데 더 웃긴 건 그 사실 알아도 아무것도 안 바뀜

여동생은 여전히 방에서 안 나옴. 오히려 내가 뭘 알아챘다는 걸 눈치챈 뒤로 더 조용해진 느낌까지 있음. 내가 문 앞에서 괜찮냐 한 마디라도 하면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림. 그 침묵이 사람 미치게 함. 그냥 무응답이 아니라 너는 거기서 멈춰라는 벽 같은 침묵임

내 생활은 계속 돌아가는데 그게 더 잔인하게 느껴짐. 학교에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고 담임은 진로 얘기하고 애들은 시험 얘기하고 나는 웃는 척함. 집 오면 밥 챙기고 전기세 걱정하고 다음 달 원고 분량 계산하고 편집자 연락 오면 네 하고 대답하고. 밤 되면 키보드 두드리면서도 귀는 계속 여동생 방 쪽으로 감. 오늘 밥 가져갈까 오늘 물 마실까 오늘 기침 소리라도 들릴까

가끔은 나도 화남. 나도 사람이라서. 나도 힘들다고 소리치고 싶을 때 있음. 나도 무너질 것 같은데 왜 나만 버텨야 하냐는 생각 올라올 때 있음. 근데 그럴 때마다 방 안에서 조용히 펜 움직이는 소리 들리면 아무 말도 못 함. 얘도 자기 방식으로 버티는 거니까. 나는 그걸 부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

근데 그렇다고 이대로 두는 게 맞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음. 그냥 방치 같음. 나는 매일 문 앞에 밥 놓으면서도 이게 정답인지 모르겠음. 내가 하는 게 돌봄인지 죄책감으로 연명하는 의식인지 헷갈림. 그리고 솔직히 나도 무서움. 내가 어느 날 밤 원고 쓰다 쓰러지면 얘는 문 열까 아니면 그대로 굶을까. 그런 상상하면 등골 차가워져서 키보드 못 치겠더라

만붕이들아 진짜로 묻고 싶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냐. 문 열게 만드는 게 가능하냐. 아니면 내가 뭔가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냐. 근데 적극적으로 한다는 게 어디까지가 적극적이고 어디부터가 폭력인지 감이 안 옴. 얘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길 바라면서도 그 문이 얘한테 마지막 방벽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서 계속 멈춤

우리가 살아남게 해준 게 라노벨이랑 그림이라는 것도 웃김. 세상 사람한텐 이해 못 받을 것 같고 그래서 더 말할 데 없음

나 지금도 문 앞에 밥 놓고 왔음. 안에서 가져갈지 안 가져갈지 그거 하나로 오늘 내 멘탈 결정됨. 진짜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고붕이 있으면 말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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