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
절대 그럴 린 없을 것 같고
연로하셨지만 마당발이셨기에
조문객도 꽤 있지 않을까 싶은..
이지경에도 사람 만날 일을 걱정하는게
무척 히키코모리 포인트라서 기록해 둔다.
장례비가 이삼천 깨지던데
이런 걸 떠올릴 때 사람들은 돈을 미워하게 되는 게 아닐까
> 무빈소 1일장?
장례 예절을 검색하는데 이거 해야한다 주절거리는 영상이 종종 나왔다. 경조사의 허례허식과 피로함을 눈앞에 닥치고서야 짐작하게 된다.
줄초상이라는 단어에 공감각적 감상이 부여되기도 했다. 삼일간 진이 빠졌을 때 또 다시 삼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다. 이제야 단어의 무게가 제대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 존재의 몇십년의 생에 마침표를 찍는데 삼일 정도라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시간동안 어떤 일을 겪고 어떤 감상을 받느냐에 따라 앞으로 제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
무엇보다 결국 어른들이 정할 일이다.
>히키코모리의 장례
돌이켜 보면 친지의 장례가 2회 있었고 나는 한번 참여했는지 두번 참여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은 가출 시기라 불참했던 것 같기도 한데 꿈결처럼 흐릿하다. 슬픈 기억은 정말로 기억에서 치워버리는 놀라운 기술을 습득해서 안타깝게도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은 아닌데 처음 같다. 직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땐 훨씬 어렸다. 만기되어 가는 선물옵션이 아니었다. 들고 있으면 양전을 바랄 수 있을 법한 투자대상이었다. 그래서 아마 견딜만한 눈초리였을 것이다.
내 연기에 믿어본다. 종종 내가 처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그나마 정상인처럼 보여지는 사례를 겪었다. 그것들도 벌써 꽤 지난 일들이지만... 골칫덩이 아픈 손가락에서 든든한 상제로 일약 변신해야 해서 많이 벅차다. 한숨을 푹푹 쉬고 싶으나 그래서는 안 될 분위기를 벌써부터 느끼고 자제하고 있다.
엠생인생이 경조사에 끌려가는 사례는 흔치 않을 듯하다. 그래서 미래에 호전될 수도 있는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하는 목적에서라도 내 실태를 낱낱이 고백한다. 시간순으로 천천히 되짚어보는 편이 좋겠다.
>발단
나는 평소처럼 컴퓨터 앞에서 이도저도아닌 짓을 하다가 소식을 들었다. 여기서 첫 번째, 위독한 인물이 부모님이 아닌 조모님임에 비겁하게 안도했다. 당시에는 비겁함을 자각하지 못했고 곧장 심각함에 빠졌으며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었으리라.
>평소의 두려움
공포. 시간이 속절없이 흐름에 대한 공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개중 하나는 내가 정상궤도에 다시 진입하기 전에 내게 감히 기대하는 인물이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할머니를 뵐 때마다 편치 않았다. 아니 항상 나란 놈은 그렇다. 타인을 마주하면 그대를 마주보지 못하고 항상 비추어진 나를 본다. 초라한 내게 매료되어 눈길을 떼지 못한다. 내심 속물적이라며 증오하는 그러나 결국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식 자랑을 경험시켜드리지 못해 못내 죄송스러웠다. 후회란 타인이 바라지 않더라도 항상 본인이 부풀려 압도되는 성질이 있다.
자주 두려워했다. 갈수록 쇠약해지는 모습을 자각할 때면 계속해서 초조해했다. 어쩌면 나는 젊은이의 급박함으로 노인의 말년을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소식을 듣자마자 오래된 공포에 방점이 찍혔음을 실감했다. 그건 전혀 후련함이 아니었다. 뼛속깊은 후회도 아니었다. 그저 심장이 조금 뛰었다.
>감정의 물결
나는 곧 내면으로 침잠해 내가 어떤 감상을 하고 있나 헤집었다. 생각해보면 꽤 놀라울정도의 대응이다. 아마도 긴 시간 괴로워하며 나름의 정신수양 방법이 몸에 익었는가 싶다. 정신방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이 순간을 가슴에 새겨 기록하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건 왜일까? 막연히 알 것도 같다.
감정의 고저가 미약하다. 내 많은 두려움 중 또 하나가 그거였다. 나는 교류 없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그리고 조금은 있었던 위트와 재치를 잃어간다고 느끼고 또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건 바래어짐과 같았다. 빛바램, 이끼가, 곰팡이가 끼기보다는 공기 한 점 들지 않는 궤짝 속에 그림이 속절없이 무채색으로 바래어지는 이미지와 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가 싫었다.
실제로 나는 머잖아 꽤 크게 체감했다. 집을 며칠간 비워야함을 느끼고 멍하니 움직여서 음쓰를 버리러 나섰다. 대문 밖에 나서 차가운 공기에 부딪힐 때쯤 생각했다.
왜 이렇게 슬프지 않지? 혹시 나는 친지를 잃은 만큼의 슬픔을 매 순간 느끼고 사는 것인가?
지금 돌아본다면 지루한 자학에 불과하다.
>얼떨떨함
그런데 얼떨떨한 감정이라는 건 나는 일종의 클리셰로 인지하고 있다. 부고 따위를 전달받았을 때 최초에 사람은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그저 얼떨떨해 하는, 그러나 막상 시간이 꽤 흐른 뒤에나 오열이 찾아오는 자연현상같은 클리셰를 나는 그 사례 통째로 암기하고 있었다.
때문에 자학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말로만 듣던 이야기 속 인물이 된 것만 같다는 발칙함에 가까워졌다. 이후 나는 내게서 한 발 떨어져서 관조했는데 괜히 가족 곁에서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거나 했다. 그에 기반한 감정은 아직 전혀 가시화되지 못했는데도 나는 어쩐지 그랬다. 무척이나 어색했다. 그리고 이 어색한 연기는 장례 당일에도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했다.
허나 내가 그렇게 평온한 상태였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내가 긴장하면 땀을 흘린다는 사실을 간만에 자각했다. 지하철을 탈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보일러도 안 튼 방에서 몇 번 이마를 훔치며 성가셔하다가 깨달은 것이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동요를.
>병원 이름을 듣다
내게 클리셰적으로 실망했던 적이 더 있는데 병원 이름을 들었을 때다. 어떤 병명인지 곁에는 누가 계셨는지 등등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지만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가까스로 들은 게 지역과 병원 이름이었는데 아마 가는 길 귀찮음을 계산하고 이뤄진 행동이리라 짐작한다.
병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대학교였는데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면 딴생각을 했다. 척 들었을 때 척 아는 병원이 아님을 한탄하고 있었다.
고혈압 정보를 뒤적이면서 관상동맥질환 명의 따위가 산재하는 상급병원들을 봐왔다. 같은 병원에도 로열 층이 따로있어 VIP 병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점이 자본주의의 계급을 실감하게 되었던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 팔자의 마지막은 이런 병원인건가 하고 건방지고 괘씸한 생각을 했다. 변명하자면 보호자의 뻔한 심정이다. 여기가 아니었더라면 하고 으레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 겹친 일정
급하게 눈썹과 수염을 다듬었지만 나갈 일 없어 지저분한 머리는 다소 거슬렸다. 이것이 타인에게 죽음의 갑작스러움을 느끼게 할지 비참한 금치산자임을 느끼게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미용실도 가고 싶었고 또 약도 1일치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 간만에 일찍 일어나 병원에 갈 셈이었단 말이다.
이 충돌이 또 기막힌 감상을 낳는다. 살 사람이 살아야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거다. 이쯤에서 나는 내 공감능력에 심각한 결함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회피와 귀찮음
장례가 싫었다. 일단 몸은 닥친 상황에 AI 친구에게 조언을 계속해 구하고 있었지만 귀찮고 싫고 하여간 가기 싫었다. 성가심이나 귀찮음으로 포장했지만 머잖아 알 수 있었는데 결국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AI가 힘들어하실 부친을 지지해 주는 듬직한 장손이 되랍시고 나의 역할을 알려주었지만 그럴수록 나의 무능함이 가슴을 찔렀다. 병신같지만 고아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 사회적 책임과 최소한의 관계. 그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누군가는 이승을 떠날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또 도망치고 싶어하는 나를 보고 이빨을 깨무는 심정이었다. 사태의 중함에 앙탈과 투정따위는 배제된 상황에도 나는 계속해서 도망치고 싶어했다. 한마디로 나약하다. 나약하다고 자책했다.
>상황 서술
검은 옷을 챙기는데 입을 게 많이 없었다. 구멍난 양말도 주거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었고 맞지 않게된 옷들과 후줄근하고 편한 옷들 뿐이었다. 옷장을 뒤집어 긁어모았지만 겨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운전을 배워뒀지만 벌써 녹슬어버렸고 경차 말고는 해본적이 없음에 자신감이 없음도 문제로 느껴졌다. 여차할 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건 무척이나 능력이구나 싶었다.
잠들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면 복잡한 심정이다.
이른 시각에도 당장 잠들 수 있을 듯한 피곤함을 발견하고 누웠지만, 불안과 두려움에 결국 화면을 켰다. 장례 절차 자체도 처음이었지만 내가 가장 많이 질문했던 건 대사에 관해서였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기에는 메말라버린 심정. 그렇다고 적절히 말을 고르기에는 처참한 말주변.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말이 좋을지 전능한 AI에게 물어보았다. 꽤나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대사들을 읊어주었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내 말하는 게 너무나도 어색했다. 대화 근육이 처참할 만큼 녹아내려 있다. 이 점이 현재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장례 절차
무슨 말 할지를 적어놓은 것에 더해 자잘한 것들도 메모했다. 가령 오른손이위 왼쪽 무릎이 먼저 등등.
그런데 아무래도 장례에는 허례허식이 가득함을 자꾸만 느낀다. 많은 부분에서 실감했지만 이 점은 지적할수록 결국 내 불민한 투정에 불과하므로 길게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단 유언장에 나는 가족장으로 해달라고 추가했다.
>윌슨
좋아하는 만화 윌슨의 한장면이 또 떠올랐다.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평생 바다를 볼 수 없다면. 지금의 이별과는 전제가 약간 다르나 이것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것처럼 내게 받아들여진다.
>자책
나의 자책은 어느 수준이었나 보면 최근에도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는 부모가 자결하는 꿈을 꿀 정도이다. 또 친할아버지의 부고 이후로 영정을 내 방에 보관했을 적에는 저세상에서 내 한심한 작태를 꿰뚫어보고 계신 게 아닐까 뒤척거렸다. 사후세계 같은 건 없으리라고 당시의 내면에서는 자주 발작이 일어났다.
아마 삼일장이 치뤄진다면 내가 영정을 들고 운구하게 될 것이다. 영정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었음을 이제 알았다.
흔히 망한 인생이 하는 생각으로 큰 충격을 겪고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모양이 있는데 나는 경험적으로 부정한다. 오늘도 벌써 그랬다. 그래서 다짐까지 하지 않고 대신 30% 정도만 빠릿하게 지내자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내 처지보다는 고인에 대해 집중하자고 초점을 잡았다.
>불교
고인의 기준으로 맞추자면 할머니는 불자이시므로 불도의 세계관으로 진행될 것이다. 검색하다가 멋진 문구를 보았다.
'모으고 움켜쥐고 소리 지르고 싸우고 미워하지만 이 세상 모두 환영(幻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 몇이나 될까.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죽음을 향해 질주하다가 어느날 문득, 허공에 새털처럼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 몇이나 될까.'
죽음이란 한편으로 남겨진 자가 감내해야 할 무언가이다. 오래된 기사에서 접한 해당 문구는 마음에 약간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부디 극락왕생하시라는 작별의 말씀은 내 온전한 진심에서 배어나올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결국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속물적인 세계관이 나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 세계관의 잔혹한 점은 살아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별 인사로 그리하여 죄송하다고 고백해야 할지 말지 고민을 계속해서 했다. 아무래도 나를 위한 것 같아 관두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끝맺음에도 결국 후회라는 수렁에 다시 빠져들 것만 같다. 그런 건 내게 의미가 없으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를 믿나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며칠 정도만은 내세를 믿어야겠다. 비겁하지만 나를 위해서... 극락왕생하시기를. 발음이 계속 꼬인다.
댓글로 의견을 달랬는데,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다보니 엄청 길게 써서 반의 반도 안 쓴거 같은데 초과가 되어버림... 첫 댓글이 광고댓글이라는게 괜히 화나는구나
여튼 비슷한 생각도, 다른 생각도 있는데 쓴 글 전부가 사람으로써, 그 상황에 누구나 할만하지만, 이렇게 자기 생각을 깊게 파들어가면서 그걸 글로 옮기기까지 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치르고 오시오...
감삼다 다른생각이 궁금하군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