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도 잘 안달리고 심심해서 개인 작업하다 다시 찾아왔다


플롯이나 캐릭터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아라, 라고 저번에 얘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갤에 올라온 글 쭉 보다보니 플롯이 엉켜서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되는 처지다 이런 글이 보이더라.


플롯 = 캐릭터.


주인공은 ~ 할수 있을 것인가? 라는 극적질문은 단순할수록 좋고, 방해물이 복합적일 수록 좋다. 여기까진 사실 IQ가 1자리수여도 다 이해할거임.


근데 플롯 = 캐릭터 라는 개념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이야기 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착각이다.


보통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플롯은 사실 '세계관'일 확률이 높다.


잘 짜인 세계관은 그 자체로 인과관계를 가지고 완결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있는(잘만든) 캐릭터를 풀어놓기만 하면 작가는 별다른 구상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술술 풀어내지는 마법같은 경험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농담 아니다 리얼임. 이야기는 어느정도는 작가가 직접 쓰는 게 반이고, 쓰다보면 알아서 써지는 게 반인데, 이 후자에 너무 심취하면 이야기 쓸 때 편한데다가 '와 내가 천재 아닌가' 이런 기분좋은 망상까지 들지만, 이야기를 자기 맘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본 만화작가들이 주로 이런식으로 작업한다. 용두사미로 끝내놓고는 자기들도 그 영문을 모르는거지. 왜냐면 그 세계관에서 그 캐릭터는 그렇게 행동할수밖에 없거든. 자기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런 의미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완결되고 완성된 매력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내라.


반지의 제왕 같이 그냥 행성 연대기 하나 그려낸 수준은 너무 사기고, 내가 지금까지 본 창작물중에 눈에 띠는 세계관은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하던 '흔해빠진 세계관 만화' 랑 영화 중에 '존 윅' 시리즈다.


흔세만 만화는 정말 보기드물게 작가가 세계관 덕후여서 그런지 주인공을 대륙에서 유일한 역사서를 쓰는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그려내는 대륙의 생성과 신들의 연대기, 그리고 신들이 장기말로 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져있다. 아마 작가는 세계관을 만드는 데만 집중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처음의 극적질문 '주인공은 역사서를 끝까지 다 집필할 수 있을 것인가' 는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 극적질문과 맞물리는 여러가지 대모험들이 더 스펙타클하게 펼쳐져서 꽤 괜찮은 전개를 보여줬다.


존윅은 뭐 말할것도 없고. 현대라는 세계관에 '암살자들의 세계' 라는 정말 매력적인 세계를 오타쿠 스럽게 잘 구현해냈는데, 이 세계관이 볼때는 오글거려도 그 안에서 나름의 법칙과 완결성을 갖다보니까 그 안에서 인물들이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아주 재밌게 다가온다. 특히나 존윅은 딴거 없고 극적 질문이 '주인공은 복수를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딱 하나기 때문에 골치아프지도 않고 인물을 따라가면서 매력적인 세계를 탐방하게 된다.


막연하게 판타지, 막연하게 무협, 뭐 이런걸 대뜸 구현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은 뭔가 자기가 창조주가 되었거나, 고대 부족의 샤먼이 되어서 신들이 우리 행성을 창조하고 부족을 창조한 이야기부터 써낸다는 생각으로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만들어내보려고 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 복잡하고 매력있는 인물, 그 인물의 적대자, 인물의 극적질문만 만들어주면 사실 이야기는 알아서 '굴러가게' 된다. 정말 자동으로 써짐. 인간의 이야기에 대한 창의력이란 때론 놀랍게 진화해서, 이런 순간이 오면 스스로도 참 감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