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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독서"


우선 존 블로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명문인 UC 버클리에서 컴퓨터싸이언스를 전공하다 중퇴한 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써 각종 기업에서 기술 자문 및 프로그래밍 업무를 전전하다


인디게임 <Braid>로 초창기 인디 씬에서 상업적-비평적 양쪽 모든 방면에서


기념비적인 성공을 이뤄낸 1세대 인디게임 개발자임


<Braid>는 XBLA나 스팀 같은 ESD등의 디지털 다운로드 서비스로 유통되는


인디게임 시장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줬던 게임으로 평가받기도 하여


존 블로는 인디게이밍 씬의 개척자 중 한명으로도 여겨지고


이후 토마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에서


"아이디어로 된 중성자별"처럼 높은 밀도로 압축된 아이디어들의 상호작용에 강력한 영감을 얻고 


차기작 <The Witness>를 출시하기도 했음


현재 그의 근황은 빠른 컴파일, 낮은 오버헤드 그밖에도 리플렉션 등의 강력한 기능을 지원하는


자작 C타입 프로그래밍 언어인 <Jai>와 컴파일러를 개발하고  


그 프로그래밍 언어로 차기작 게임을 제작중에 있음

 

다음은 존 블로 자신의 게임과 세계관에 많은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영감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탈로 칼비노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말하는 강연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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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저에게 큰 영광입니다.

제가 처음 칼비노의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꽤 어렸을 때였거든요.

17살이었고,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제 사고방식, 어린 시절의 성격과 동시에 공명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 사고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저에게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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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그것이 지닌 퍼즐 같은 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일까요? 무슨 느낌일까요?

여러분이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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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목차입니다.

그런데 이 목차는 보통 우리가 보는 그런 목차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뭔가 큰 숫자들이 있고, 그게 아마 챕터 번호일 수도 있고, 혹은 섹션 번호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아래에 챕터 번호 같은 것들이 또 있는데,

예를 들면 “기억의 도시들(Cities and Memory)”, “욕망의 도시들(Cities and Desire)” 같은 식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챕터 제목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제목들이 반복됩니다.

첫 번째 항목은 두 번이나 반복되죠.

그러면 그게 챕터 제목이 아닐 수도 있는 건가?

독자인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페이지 번호가 있는데, 그 옆에는 또 다른 숫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 2, 1 3, 2 1, 4 같은 식인데요.

이상하죠? 작은 숫자들이 이렇게 튀어나오는데,

연속적이지 않고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튀고 있어요.


그리고 계속 살펴보면 이 5-4-3-2-1의 반복되지 않는 제목 패턴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목차의 끝에 다다르면,

다시 처음처럼 뒤섞인 상태로 돌아갑니다.

어떤 방식으로는 챕터 1의 구조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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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독자인 저는

아, 여기 뭔가 구조가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5-4-3-2-1은 일종의 카운트다운인가요?

그리고 그게 챕터 끝에 가서 터지는 건가요?

저로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고,

독자인 저는 그에 대한 답을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은, 그냥 일반적인 책을 읽는 방식으로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공중에 떠다니는 듯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죠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건, 각 장(chapter)을 지나갈 때마다,

이전에 있던 주제 중 하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주제가 하나 추가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읽기도 전에,

그저 목차만 보고도 아주 정교한 구성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겁니다.

뭔가 지능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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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제가 보여드리는 시각화 자료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가시화하기(Invisible Cities Made Visible)”라는 이름의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각화해보면, 아주 규칙적인 패턴이 눈에 확 들어오게 됩니다.

각 챕터 번호 안에서 각 주제가 어디에 등장하는지를 색깔로 표시한 것입니다.

시각화라는 건 정말 강력하죠.


이 외에도 다른 요소들을 보여주지만, 지금은 그냥 이 시각화 자료 자체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눈치채셨을 수도 있는데, 이 시각화에서는 따로 표시되진 않았지만,

만약 챕터 1과 챕터 9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그 챕터 둘이 맞물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 점을 시각적으로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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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둘은 맞물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 패턴은 계속 이어집니다.

제가 아까 보여드렸던 방식대로 정렬하면, 바로 이런 식으로 그래픽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책의 끝부분과 시작 부분이 이렇게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이것을 일종의 뫼비우스 띠처럼 상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비틀림은 없지만, 계속해서 순환하면서 영원히 돌 수 있는 구조죠.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제가 지금까지 말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아닙니다.

핵심은, 제가 이 책을 탐색하면서 제 안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우선 저는 이 책의 목차 안에서 구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고, 매우 규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설명되지 않은 것들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챕터들이 여러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 듯한 이유라든가요.


이런 설명되지 않은 요소들을 마주하면, 저는

“아, 내가 갖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이 소설 안에 숨겨진 더 깊은 구조 속에 존재할지도 몰라”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왜 제가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그건 이미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저를 잘 이끌고 있다는 신뢰가 생긴다는 것이죠.

저는 이 작품이 세심하게 구성되고, 체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챕터 옆에 붙은 숫자들

그건 그냥 우연히 붙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시점에서는, 독자로서 우리가 눈치챌 수 없는 요소들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것은 명백한 패턴들이 지니는 강도와 일관성 덕분에,

보다 미묘한 패턴들 역시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신뢰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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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일관성(consistency)’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유는,

원래 이 일관성이라는 것이 칼비노가 남긴 여섯 번째 메모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칼비노가 그 여섯 번째 메모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책들을 읽으며 

이 일관성이라는 개념이 제게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유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오늘 이 강연의 남은 부분에서도 계속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인용하거나 참고할 수 있는 직접적인 메모는 남아 있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 신뢰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패턴을 찾기 위해 쏟는 에너지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람들이 두 가지 뚜렷한 심리적 단계를 거친다고 상정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 단계로, 내가 이 작품에 처음 접하고, 그 안에서 구조의 실마리들을 발견하게 되며,

그것들이 제 안에 기대와 설렘을 쌓아가고, 점점 점들을 연결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2 단계는 일종의 열반의 경지 같은 것으로,

“나는 이제 모든 걸 이해했다”고 느끼게 되고,

마침내 이 작품의 보석 같은 구조를 천상의 세계에서 감상하는 경지에 이르는 상태이지요.


물론 실제론 1단계와 2단계 사이쯤 되는 1.5단계에 머물며 책을 읽게 되죠

어떤 단서는 부분적으로 이해되고 있고,

그 단서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감상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신비한 구조로 그 단서들이 어디까지 확장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체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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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것이 하나의 독서 경험을 형성하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방식을 잘못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독자를 해치는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신비감의 느낌을 만들어 놓고, 결국 마지막에는 그걸 뒷받침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건 어느 정도 관객에 대한 학대, 혹은 무신경한 태도가 될 수 있겠죠.

그럴 경우,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가까운 관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건 독자를 기만하려는 태도이고, 별로 바람직한 방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혹은, 여러분이 제시한 신비가 실제로 뒷받침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신비 속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탐색, 그리고 그 신비 자체를 갈망하는 감정은,

그 작품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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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다른 책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라는 작품인데요,

저는 이 책을 정말 깊이 사랑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앞서 이야기한 책도 무척 사랑하죠.

그리고 타이틀도 정말 멋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이 책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패턴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패턴부터 시작해서, 아주 다양한 패턴들이 이 책 안에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이 책의 기본적인 전제, 즉 중단된 소설들의 패턴입니다.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으셨거나, 아주 오래 전에 읽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 책에서는 약간의 프레임 이야기가 서문처럼 나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설을 읽기 위해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막 읽기 시작하게 되죠.


이때 주인공은 ‘당신’, 즉 독자인 여러분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소설의 첫 챕터를 막 끝내자마자,

그 소설의 나머지 부분이 망가져서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복사본을 구하려고 시도하게 되지요.


그런데 복사본을 구하는 과정에서 속임수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완전히 다른 소설을 읽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일이 계속 반복됩니다.

프레임 이야기 (즉 현실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소설의 첫 챕터가 나오고, 다시 프레임 이야기, 또 다른 소설의 첫 챕터...

이런 식으로 총 10편의 허구의 소설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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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는 달리) 책 안에서 명확하고 선형적인 순서로 전개됩니다. 

어쨌든, 매우 눈에 띄는 패턴입니다.

독자는 이 리듬 속으로 빠져들게 되죠.

“아, 이제 또 이런 챕터인가?”라는 식으로요.


그러면 보통 2장이나 3장쯤에 이르렀을 때, 독자는 “아, 이게 어떤 구조인지 알겠다”는 감을 잡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가파른 비탈에서 몸을 기울이며」(Leaning from a Steep Slope)라는 챕터를 다 읽어갈 즈음에는,

“이거 곧 잘릴 텐데…”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특히 그쯤 되면, 여러분은 이 패턴에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가 됩니다.

이건 리듬입니다. 마치 운율과 같은 것이죠.


그렇게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일정한 규칙성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단 한 번도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항상 일관되게 유지되지요.

이 ‘소설의 중단’이라는 패턴에서 흥미로운 점은,

단지 반복되거나 규칙적으로 나타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안에 ‘변주(variation)’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요소가 됩니다.

유쾌한 이야기, 혹은 재미있는 장치로 작용하는 거죠.

이쯤 읽다 보면, 독자는 “아, 또 이런 식으로 잘릴 거야”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칼비노는 매번 그 ‘잘리는 이유’를 새롭게 생각해내야 하죠.


왜 이번에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없는지,

왜 또 이번에는 다른 소설도 이어지지 못하는지에 대한 ‘구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지 “이번에도 중단되겠지”라는 기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중단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프레임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

“아, 이번 거 웃기네” 혹은 “오, 이번엔 꽤 참신하네”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죠.


이건 마치 시에서, 여러분이 어떤 음절이 운을 맞출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맞춰질지는 아직 모르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기대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소설이 중단될까?”라는 질문은,

이 책 전체에서 반복해서 발생하는 하나의 기대와 충족의 패턴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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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이 책 안의 명백한 패턴들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 책 안의 모든 패턴은 아닙니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라는 첫 번째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요,

첫 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종류의 스파이입니다.

그는 접선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경찰서장이 그에게 접근해서 말합니다. “얀을 제거해라.”

그러면 독자는 “오, 뭔가 극적인 전개네”라고 생각하면서 읽게 됩니다. 좋아요.


그리고 나서 프레임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죠.

그다음, 두 번째 소설을 읽게 됩니다. 

이 소설은 서두에서 아주 명확하게 첫 번째 소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별개의 이야기라고 소개됩니다.

이야기 자체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릅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당신은 매 순간마다 새로운 등장인물을 발견하게 되고, 지금 이 시멘트 부엌 안에 몇 명이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이름들이 같은 인물에게 쓰이기도 하죠. 세례명, 별명, 성, 부칭, 혹은 ‘얀의 과부’나 ‘옥수수 가게 견습생’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라면, 즉시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잠깐, 얀? 그거 앞 소설에 나온 이름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으니 다시 앞쪽을 넘겨보죠. “맞네. 얀. 죽었던 그 인물이네.”

그리고 지금 이 소설에서는 ‘얀의 과부’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지요. “이 두 소설은 뭔가 연결되어 있는 걸까?”

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 배경도 완전히 다르고, 등장인물도 완전히 다르고, 분명히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이건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수많은 일관된 패턴들 덕분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어떤 종류의 독자들은 이 시점에서 ‘패턴 찾기 모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실제로 발견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찾아가는지 말씀드릴 텐데요

그리고 사실은, 이게 제가 요즘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는 방식과도 약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그 전체 패턴을 다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이건 멋진 구조라는 거예요.


자,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챕터와 두 번째 챕터 사이의 연결고리는 ‘’입니다.

그리고 단지 이라는 이름만이 아니라, ‘얀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연결점이 됩니다.

그런데 칼비노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 특히 주의 깊은 독자가 지금 ‘패턴 사냥 모드’에 돌입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는 정말 놀라운, 그리고 정말 웃긴 일을 저지릅니다.


프레임 이야기 속 허구의 전제에 따르면, 주인공(즉, 독자인 당신)은

원래 이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다른 소설을 읽게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계기가 무엇이냐면

두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지명들이 서로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인 것입니다.


즉, 칼비노는 독자에게 하나의 패턴을 제시한 다음,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분명히 이름 속에서 패턴을 찾으려고 들겠죠. 그런데 말이죠… 이 소설 속에는 이름이 중복되는 게 아주 많아서,

그 패턴이 진짜인지 아닌지 저도 뭐라 말 못 하겠네요.”

그렇게 독자의 추리를 교란시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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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앞뒤 이야기에서 동일한 이름의 인물이 등장하는것처럼 

한 에피소드는 오토바이가 여러 대 등장하는 아주 웃긴 장면인데요,

그 오토바이 중 하나가 ‘가와사키(Kawasaki)’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거기엔 ‘가와사키 교수(Professor Kawasaki)’가 등장하죠.

그래서 점점 패턴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항상 최소한 이름이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감탄한 건

그가 이 패턴 세팅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게 숙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전체 시퀀스를 다 찾지는 못한 상태,

즉 지금 이 정도밖에 못 봤다고 해도, 이게 일종의 시퀀스라는 것에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일관성 덕분입니다.

저는 소설 전체에 걸쳐 계획된 기하학적 구조를 이미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 이것도 그 일부야. 이것도 맞물려 있어”라고 느끼게 되는 겁니다.


어쨌든, 이 두 책을 서로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저는 마치 수정(crystal) 같다고 묘사하고 싶습니다.

반면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그런 수정성(crystallinity) 을 느끼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훨씬 더 시퀀스(sequence) 에 관한 것이고,

시퀀스를 변형하고, 가지고 노는 즐거움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시퀀스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 못해,

시퀀스를 부러뜨리거나, 혹은 너무 찾기 어렵게 만들어놓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이것을 패턴 브레이크(pattern break) 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챕터도 일종의 패턴 브레이크이고, 저 챕터도 또 다른 방식의 브레이크입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의 붕괴’라는 개념은, 지금 제가 게임을 만들 때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