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잘 살던 집에서 두달반 내 집 빼달란 집주인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첫 일주일은 멍한 채로 '뭘 어쩌지?' 란 생각에 원래 하던 개발 일상을 영위했고,


2주차 접어드는 주말에 갑자기 '이제 두달 겨우 남았나?' 란 현실자각이 들자 갑자기 불면증이 찾아왔습니다.


누워있기만 해도 배가 아프고 '당장 뭘 어째야하지?' 란 생각과 '혹시 기간내 집을 못빼면 어쩌지?' 란 불안에 온몸이 쪼그라드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이사 하는 법을 다 까먹은 상태라, 일단 부동산에 연락부터 돌려야 하나? 란 생각 등 온갖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습니다.


집주인은 명확한 퇴거일을 지정해둔 상태였고, 그 기간 안엔 무조건 집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기에, 일단 3시간짜리 산책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그래, 우선 부동산앱들부터 깔자' 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떠올린 생활패턴이


'기상직후 부동산앱 확인 30분, 괜찮아 보이는 매물 있으면 즐찾 해두고, 개발은 원래 6시간 하던대로 진행, 매주 월요일 즐찾매물 보러가기'


였습니다.


그렇게 절차를 정해두니 뭔가 다시 생활이 규격이 잡힌것 같고, 어느정도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개발과 이사갈집 찾기를 동시에 하는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말이죠.


그것이 지옥의 시작인 줄도 모른 채.




일단, 매물이 드럽게 없었습니다.


이 푼돈에 들어갈 수 있는 전세집은 수량이 정해져있고, 게다가 저는 HUG 전세보증보험 안되는 집은 거들떠도 안보는데다, 투룸 이상은 돼야하는 짐 사이즈여서


조건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반드시 지상층일 것 포함.)


그럴싸해보이는 집들을 몇 개 즐찾해두긴 했으나, 다들 조건이 별로였습니다.


이 때 기회가 한 번 찾아옵니다.


넓고, 지층에, 가격도 딱맞고, 내부도 깔끔한, 주차되는, 쓰리룸.


이거다!


바로 즐찾해두고 '다음 주 월요일에 보러가야지' 라는, 진짜 미친놈짓을 해버렸습니다.


네, 다음날 사라져있더군요.


대놓고 좋은 매물은 누구에게나 좋다는걸 왜 이런 중요한 순간마다 까먹는걸까요.


그렇게 첫 열차를 놓치고, 다시 기회를 노렸습니다.




안오더군요.


일주일 내내 아무런 기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건에 맞는 매물은 씨가 말랐고, 남은건 악성재고 같은 매물들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적당한 수준의 매물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을 흘려보내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습니다.


정신이 나갈 것 같더군요.


연락 돌린 부동산들에선 소식이 없고, 당근부동산,다방,직방 매일같이 돌려봐도 새 매물은 뜨지 않았습니다.


이 무렵 '피터팬의 좋은방 찾기' 앱과 '네이버 부동산' 이란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사실 부동산 알아보는 최고의 장소는 네이버 부동산이었더군요. 그걸 일주일 넘게 모르고서 이상한 군소 앱들만 찾았던겁니다.




이 무렵부터 개발은 포기했습니다.


일단 매일같이 반복되는 스트레스에 도저히 코드를 만질 정신적 여력이 나질 않았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컴 켜고 네이버 부동산부터 켜둔 채, 조건에 맞는 매물을, 가능한 지역에 전부, 매일같이, 하루종일 찾았습니다.


가격대에 맞는 매물은 수백개도 넘었습니다.


문제는, 그 가격대에 괜찮은 매물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좋은 매물 뜨기를 기다리길 또 며칠.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밥도 도저히 안넘어가고,


이대로 그냥 좋은 매물 뜨길 기다리다간 답이 없겠다 싶어서


조건이 그냥 얼추 맞기만 해도, 그게 썩빌이든 70년대 지어진 단독주택이든,


일단 실물을 보러다니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일 일어나서, 4대 부동산앱 + 네이버 부동산 켜놓고 몇시간동안 최대한 보러갈만한 매물 수색.


그리고 리스트 짜서 효율적인 동선을 그린 후, 그 순서대로 부동산에 연락돌려서 보기.


이 짓을 보름간 매일같이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집 상태가 너무 안좋았고, 조건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작업실까지 걸어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라던지,


에어컨이 없다던지,


집이 너무 좁다던지,


집이 너무 더럽다던지,


주차가 안된다던지,


위치가 너무 안좋다던지,


절대 포기 못하는 부분들이 꼭 하나씩 껴있어서, 정말 '참고 살아보자' 는 생각이 드는 곳 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거의 한달을 남긴 상황이 됐고, 스트레스는 이미 주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평소 먹던 식사량에 반도 채 못먹는 상황이 됐습니다.


누워도 잠이 안와서, 약장에서 오래전에 끊었던 신경안정제를 다시 먹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밤에만 먹는건데, 하루 3번을 먹었습니다. 검색해보니 치사량은 아니어도 과복용은 확실하더군요.


이 짓을 한달여 간을 했습니다... 진짜 매일이 지옥이었고, 아무런 작업도 하지 못한 채 인생이 점점 수렁으로 끌려내려가는 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안그래도 뒤쳐지던 작업스케쥴이 한달을, 아무런 발전도 성과도 없이 그냥 흘러가자


진짜 우울증 초기단계 수준의 무력과 좌절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매일밤, 뭘 어찌할 수도 없는 시간에, 뭘 보러가거나 더 찾을 매물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신경의 안정을 위해 무의미하게 켜놓은 부동산앱들, 그리고 채 끄지 못한 컴퓨터의 네이버 부동산, (끄면 내 정신도 꺼질것 같은 두려움)


그 상태로 신경안정제와 기분전환용 카페인 도핑에 기대 유튜브에서 매일같이 부동산뉴스, 전세사기, 똥파트 보수 소송뉴스 등을 끝없이 둠스크롤 했습니다.


둠스크롤이란게, 끊임없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뉴스와 소식들만 찾아보는 중독적 행위를 말하는건데, 이게 꽤 도움이 되더군요.


그래, 전세사기로 돈 다 날리고 몇 년 째 재판중인 사람들도 있다.


평생 번 돈 다 영끌해 들어간 브랜드 있는 아파트도 입주하자마자 천장에서 물이 샌다.


원래 이사갈 집 찾는게 이렇게 힘들구나. 다들 힘들어 하는구나.


이런 영상들 보면서, 무기력하게, 밤새도록,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쳐 잠들면 다섯시간 겨우 자고 벌떡 일어나 카페인 도핑으로 기분전환 + 4대 부동산앱과 네이버 부동산 매물검색.




그렇게 연락받은지 약 한달 하고도 보름이 흘렀습니다.


이미 정신력은 바닥났고, 뭘 더 찾아볼 물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거의 초기에 연락했었던 HUG 전세보증보험 안된다는 집이 다른 부동산에서 새 매물로 올라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시 HUG 전세보증보험 됩니까?' 하고 연락했더니, 잠깐 집주인에게 연락후 다시 연락드린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기대반 걱정반으로 십분정도 시간이 흘렀고,


이후 돌아온 답변 '집주인 분이 HUG 전세보증보험 진행하라 하시네요~'




구세주였습니다.


다른 무뚝뚝한 부동산에선 (아마 높은 확률로 '귀찮아서') 안된다고 하던게,


멀쩡히 된다는 겁니다.


재빨리 연락하고 그대로 보러갔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집 크기가 너무 작았습니다.


투룸이긴 한데, 거실이 아예 없는 그냥 '중간방+작은방+부엌+작은발코니' 있는, 간신히 11평 될까말까 하는 아주 작은 투룸이었습니다.


제가 짐이 많아 기존에 살던곳이 대부분 14~17평 정도 되는 집들이었는데,


거의 크기가 60% 수준으로 줄어든겁니다.


그리고 남향이 완전 막힌 집이라 어두컴컴 했습니다.




그런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남의 집 좋은데 찾아 들어가기 위해 이제 겨우 남은 한달을 더 큰 불안속에서, 아무 개발작업도 못한채 흘려보낼 것인가?'


특히 '아무 개발 작업도 못한 채 인생 허비할 것인가?' 부분에서 그냥 생각이 정리되더군요.


여기로 하자. 할 만큼 했다.


그 외엔 좁지만 주차장도 있고, 위치도 평지고, 어둡지만 지층이고, 작업실과는 오히려 절반 이하로 거리가 줄어서 '걸어서 10분 컷' 인 거리고,


무엇보다 보증금도 전보다 줄어서 월 몇만원이라도 더 아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좁고 어둡다는 문제만 빼면, 사실 작업실과 거리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없던 장점도 있는지라 충분히 트레이드오프가 된다고 느꼈습니다.


좁고 어두운 곳이니, 오히려 앞으로 쓸데없는거 살 때 공간고민도 하게될테고, 또 집에 오면 더 열심히 개발할 동기부여가 될 것이란 (당연히 헛소리인) 희망회로도 돌렸습니다.




그리고 방금 막 계약서 작성 후 계약금 넣고 돌아왔습니다.


주인분이 할머니인데, 중계사분과 대화하는 내용만 들어봐도 지나치게 깐깐하거나 악의는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또 집주인 잘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거 당해보면 진짜 생지옥 입니다. 집주인 잘 보고 거르세요.)


저 HUG 전세보증보험 관련 특약 꼼꼼히 넣는것도 '네 다 넣으세요' 라고 저항없이 받아들이신것만 봐도 좋은분인것 같았습니다.


반면 그분이 제게 건 특약은 '관리비 3만원, 이사 후 30일 이내 반드시 신고하기, 소모품은 네가 알아서 고쳐쓰기' 말곤 없었습니다. (동물 키우지 말라는건 말로만 했고 특약엔 없었습니다. 어차피 안키우니 상관은 없지만.)




이제 한달 하고도 며칠 후에 이사갈 예정인데, 또 이삿짐 줄인다고 당근질 열심히 하고, 이삿짐센터 불러서 견적씨름 하고, 공과금 정산 및 이전신청 하고, 할 일이 산더미이긴 합니다.


저번처럼 이사를 최대한 저렴히 컷하면 좋을텐데 가격협상할 생각 하니 벌써 또 불안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오는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처리는 이제 확정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좀 더 좋은 집 (특히 넓이) 을 구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는데, 어차피 남의 집인데 궁궐같은데 들어가서 살아봤자다 싶기도 하고


집이 어둡고 좁으면 되려 더 오래 작업실에 있고싶겠거니 하는 (거의 100% 안지켜질) 기대도 해봅니다.


작업실과의 거리는 정말 획기적으로 파격적으로 줄었습니다. 기존 '걸어서 30분' -> '걸어서 10분' 이 됐습니다. 그냥 '편의점 가는 느낌으로 작업실 도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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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요약하며 마치겠습니다.


1.이사는 지옥이다. (특히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퇴거일 고지하는 스타일인 경우. 예전 집들은 나갈기간 충분히 봐주면서 진행.)


2.HUG 전세보증보험은 '반드시' 들어라. 안된다고 하면 '귀찮은건지, 안되는 물건인지' 를 확인 후, 같은매물 올린 다른 부동산에 연락해라.


3.무직자(대부분의 인디개발자) 는 HUG버팀목대출 안된다고 보면 된다. (은행 5군데 3시간 돌며 상담했으나 안된다고 거절. 무직자도 말잘하면 된다는건 제겐 해당사항 X.)


4.'진짜 좋은 집' 발견하면 '그 즉시' 보러가라.


5.결국 인디개발자에겐 '개발이 우선' 이란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집 찾겠다고 시간허비 하는동안 못하는 개발을 생각해보라. 이게 최종 결정의 핵심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