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비 시작하고 형색에 가입한게 7월 초였다.


당시엔 모든 게 낯설고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안정윤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몰랐다.


그러다가 한 달 즈음 길터에서 지내면서 한 명 한 명 관찰하고 나서부터 길드원들 아이디와 성향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이 친구는 어떻고 저 친구는 어떻고.. 근데 그중에 특이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형형색색 길터에 항상 상주하고 있는 '낙타' 길드의 '안정윤' 이다.


이 친구를 관찰하고 나서 얼마 안 가서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본 정윤이의 패턴은 보통 남들이 대화하는 곳에 서성이다가 본인의 이야기에 대꾸를 해주는 사람을 한 명 발견하면


그 사람을 붙잡고 일방적으로 30분 ~ 1시간동안 자기 얘기만 하는 친구였다.


나도 형형색색 길터에서 오래 머무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윤이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보통 대화의 흐름이 본인은 무엇을 했는데~ 로 시작해서 대부분은 페이트 이야기로 빠져서 페이트 이야기만 했고 상대방이 페이트에 관심이 있건 없건

페이트 얘기만 하다가 끝났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장난감, 만화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정윤이랑 대화가 길어질 때마다 기가 빨렸다.


처음에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꼬박 대답해 줬는데 그에 대한 댓가로 나는 정윤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한번은 정윤이가 내가 연주했던 음악이 마음에 든다며 지브키엘 악보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정윤이는 한동안 내가 만들어준 악보로 형색 길터에서 지브키엘 악보가 닳고 닳을 때까지 해당곡을 1곡 무한 재생을 돌렸다.


나는 마비노기의 합주, 음유시인 시스템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었던 사람이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내가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지 않는 옵션을 처음으로 활성화시키고 현재까지 유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정윤이가 기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고 부담스러웠다.


여전히 정윤이의 대화에 꼬박 꼬박 대답해 주는 형형색색 길드원들이 진짜 착한 건지 동정심에 대꾸를 해주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그 후로도 정윤이와의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면 잠수인 척을 했다.


나도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선택한 취미인 게임에서 남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게 싫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정윤이가 내가 속해있는 형형색색 길드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디스코드 채팅창에서도 정윤이의 대화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에는 괜찮은 듯하다가 본인이 관심을 받지 못하다고 느껴지면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인 워딩으로 채팅을 했다.


길드원들의 위로를 받고 그게 제법 괜찮았는지 그러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런 위로도 한두 번이지 이게 반복되면 당연히 좋아할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뒤로 나는 길드 디스코드 채팅을 켜지도 않았다. 굳이 보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극한으로 감정이 치달은 사람이 있었는지 정윤이에게 일방적으로 분노를 터트리는 일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정윤이의 대화 패턴에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인간관계, 철학, 삶에 관련된 책을 읽고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케어하며, 자아 성찰하는 시간을 먼저 가져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