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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잔을 사이에 둔 거리







사무실 안은 따뜻한 차 향기로 가득했지만, 정작 둘 사이의 온도는 애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오는 찻잔을 든 채 가만히 에반을 바라보았다.

에반은 아무 말 없이 잔을 감싼 손을 살짝 움직였다.

방금 전의 그 시선.

짧았지만 나오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봤을까.’

메테오가 말한 ‘심박수 증가’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먼저 의미 없는 시선을 던졌기 때문일까.

에반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오."

그 이름을 부르는 에반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이상하게 나오의 심장을 쥐어뜯는 듯했다.

가볍게 부른 것뿐일 텐데도, 그 짧은 한 마디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나오는 순간적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에반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

대개는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기에, 방금 전의 그 한 마디는 예상치 못한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평소처럼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일인가요?"

나오는 최대한 무덤덤하게 물었다.

그러나 에반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너무 길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어쩌면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게도 계속 흘러갔다.

에반은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짧은 머뭇거림.

그리고 다시 이어진 말.

"왜 그렇게 저를 보죠?"

나오의 숨이 순간 멎었다.

'아.'

들켰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를 향한 자신의 시선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적당한 거리에서 감정을 숨겨왔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정면에서 들켜버렸다.

나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가급적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다소 떨렸다.

그러나 에반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항상…"

에반은 손가락으로 찻잔 가장자리를 느리게 쓸었다.

그 작은 움직임조차 나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 눈으로 저를 봤어요."

"……"

"마치, 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오의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두려움?

아니었다.

두려운 게 아니라,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더 깊이 빠지기 전에.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기 전에.

그러나 지금, 에반이 그녀를 이렇게 바라보는 이상, 도망칠 길은 없었다.

"…저는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어요."

나오는 애써 웃어 보였다.

"에반 씨는 오해하는 거예요."

그러나 에반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반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제가 당신을 오해하지 않도록, 정확히 말해주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오는 답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어떤 말을 꺼낸들,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걸지도 몰랐다.

나오는 답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입을 떼는 순간,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새어나갈 것만 같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이 식은땀으로 살짝 젖었다.

'이거, 못 피하겠어.'

지금까지는 농담처럼 넘겨왔지만, 에반의 눈빛은 지금 너무나도 진지했다.

이런 에반에게 가벼운 장난처럼 얼버무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솔직해진다면?

아니, 안 된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해버릴 것이다.

"저는 그냥…"

나오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냥, 에반 씨가 신경 쓰일 뿐이에요."

에반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신경 쓰인다?"

"네."

나오는 손가락으로 찻잔을 문질렀다.

"같이 일하는 동료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어쩌면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오는 생각했다.

그러나—

"거짓말이네요."

에반의 말에 나오는 움찔했다.

"……"

"방금 말할 때, 당신은 제 눈을 피했어요."

나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원래 사람 눈을 잘 못 마주쳐요."

"그렇다면 지금은?"

나오는 그제야 에반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에반은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나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나오가 두려워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면… 더 숨길 수 없어.'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차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오의 뺨은 미묘하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에반 씨가, 너무 신경 쓰여요."

나오는 결국,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 에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죠?"

나오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고 물으면,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조여왔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계속 그녀를 향했다. 마치 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됐다니."

에반은 잠시 나오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그러나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당신은."

천천히,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

"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오는 그 말에 숨을 들이켰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입술이 마르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게 아니야.'

두려운 건 에반이 아니었다.

내가, 이 감정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이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그게 두려운 것이었다.

"나오."

에반이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나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도망칠 수도, 숨길 수도 없는 순간이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오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숨을 가다듬어도, 가슴 깊숙이 퍼지는 이 감각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에반 씨는, 제가 두려워 보이나요?"

겨우 짜낸 목소리였다.

에반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오를 바라보았다.

"그렇죠."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에반은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저와 거리를 두려 해요."

"……"

"눈을 피하고, 말을 돌리고, 항상 장난스럽게 넘기려 하죠."

"그건…"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나오는 입을 닫았다.

그럴 필요 없다고?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에반 씨는, 제가 신경 쓰이지 않나요?"

나오는 용기를 내서 물었다.

"제가 이렇게… 이상한 말들을 해도?"

에반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하지만."

그녀는 나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지금 숨기고 있는 게 뭔지는 알고 있어요."

나오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알고 있다고…?'

설마, 여기까지 들킨 걸까.

그렇다면—

"에반 씨는, 대체…"

목소리가 떨렸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예요?"

에반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 순간, 나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 빗방울들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오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이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걸.

그리고—

에반 역시,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걸.

숨이 턱 막혔다.

나오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에반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그러나 어딘가 깊숙이 가라앉은 눈빛.

“……그걸 언제부터.”

겨우 짜낸 말이었다.

에반은 시선을 내리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오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었지만, 나오는 끝내 내뱉지 못했다.

에반은 모른 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녀는, 이 감정을 거부할 생각조차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둘 중 어느 쪽이든, 나오에게는 잔혹했다.

“나오.”

조용한 목소리.

그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도, 심장이 요동쳤다.

나오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반쯤 웃듯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말, 너무 반칙 아닌가요?”

에반은 가만히 나오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는.”

잠시 망설이듯 숨을 들이쉬었다.

“숨길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요?”

나오는 답하지 못했다.

숨길 수 있다면, 진작에 숨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에반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은 곧,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계속 이대로 머물 것인지.

아니면, 이 감정을 드러내고 나아갈 것인지.

“……저는.”

나오는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에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오, 당신은 날 가족처럼 생각하는 거죠?”

……가족.

나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에반의 말이 들렸지만, 그 의미가 곧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귓가에 다시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가족.

입안이 바짝 말라갔다.

그게… 그녀가 내 감정을 정의한 방식이구나.

너무도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이 당연했다는 듯이.

나오는 억지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나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건조했다.

심장이 어딘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에반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순간적으로, 그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린 것 같았다.

... 정말, 기분 탓일까?

그렇게 믿고 싶었을까.

어쩌면, 이게 가장 잔혹한 형태의 모른 척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오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가족."

겨우 입 밖으로 꺼낸 단어였다.

그러나 그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 나오는 자신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딘가 쓴웃음 같은 미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렇군요."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에반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나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그 말까지 듣는 순간, 나오는 더 이상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행.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그럼, 나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가 나를 이렇게까지 쉽게 정의해버렸는데.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녀의 말이 너무 부드러워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너무 다정해서, 너무 확신에 차 있어서—

그래서,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오는, 그 잔혹함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찻잔을 꼭 쥐었다.

사각-.

작은 기척이 들렸다.

에반이 자리에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차가 식었네요."

나오의 앞에 있던 찻잔이 에반의 손끝에 닿았다.

그러나 그 순간—

에반의 손끝이 찻잔을 감싸던 나오의 손가락을 스쳤다.

뜨거웠다.

아니, 차가운 찻잔과 대비되었기에 더 선명하게 느껴진 온기였다.

그것이, 너무도 명확하게 닿았다.

나오의 호흡이 잠시 멎었다.

공기가 목구멍에 걸려 흐름을 잃었다.

에반의 손길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녀에게는 그저 찻잔을 확인하려는 무심한 동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오에게는, 너무나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온기.

에반의 손끝이 머문 그곳에서, 온도가 퍼지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차가운 표면 위에 내려앉은 따뜻한 숨결 같았다.

"새로 따뜻한 걸로 우릴까요?"

그녀가 묻는 순간, 나오는 시선을 들 수 없었다.

그녀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아니, 닿고 말 거리.

아니, 이미 닿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이전과는 다른 박동.

너무 가까이 있어서, 숨결이 닿을 듯했다.

그러나 나오는 애써 웃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약간 어색했다.

"괜찮아요. 아직 마실 수 있어요."

찻잔을 감싼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에반이 그 떨림을 알아채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눈치채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긴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숨이 막혔다.

그러나 에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시선을 돌리고 다시 몸을 기대었다.

다시 찾아온 침묵.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벽이 허물어진 것도,

거리가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건넨 한마디가,

그녀가 건넨 시선이,

나오의 마음을 너무 깊이 흔들어 놓고 말았다.

그녀는 너무 쉽게 말했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답이기라도 한 듯이.

그래서, 더욱 가혹했다.

그녀의 그 한 마디가, 차갑고 예리한 칼날처럼 가슴 깊이 박혔다.

그리고—

나오는 다시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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