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쉿.. 조용히."


린다는 무전을 꺼냈다.


"코드번호 세븐, 목표물 확보 완료."


치직.


"여긴 일레븐. 오케이, 곧 데리러 가겠다."


"언니?!"


린다는 머리를 긁었다.


"조용히. 너랑 승현 둘 다 소림으로 갈 거야. 상부의 명령이야. 그곳이 여기보다 안전하다는 판단이겠지."


=======


눈 떠보니 소림이었다.


"으음.. 여., 여긴 어디..?"


드륵.


"승현!"


연화가 달려들었다.


"괜찮아? 아픈 곳은 없어?"


"아.. 네.. 아픈 곳은 딱히 없는데 무슨 일이.."


연화가 설명해 줬다. 


린다가 날 기절시키고, 노벨에서 직접 소림까지 호송했다고 한다. 


언니의 말로는 우리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거란다.


'안전이 최우선이라..'


그래도 말도 없이 기절시키고 낯선 곳에 끌려온 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난 머리를 긁적였다. 


연화가 계속 미안해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주어진 환경에 저항하기보다 수용하고 적응하는 게 익숙하니까, 어릴 때부터. 


일어나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다행히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참 연화? 몇 살이세요?"


"응? 나 17살.."


"나도 17살이야. 이제부터 말 놔도 되지?"


'비록 너가 먼저 말 놓긴 했지만..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건가.'


"응! 우린 친구니까 당연히 괜찮지."


연화가 바보처럼 베시시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데 그 모습이 살짝 귀여워 보였다.


"지금부터 친구다. 잘 부탁해, 연화."


난 연화의 손을 잡았다.


드르륵.


나랑 연화는 재빨리 손을 놓았다.


"오, 일어났는가. 한국에서 온 젊은이. 홀홀, 좋은 나라에서 왔구먼. 본인도 젊을 때 자주 여행 다니긴 했었지."


삐죽머리에 콧수염이 있는 할아버지였다.


"아, 인사드려. 이쪽은 대왕노사 할아버지야. 소림의 주지이기도 하지. 할아버지, 전에도 말했듯이 이쪽은 승현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머쓱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몸이 아픈 곳은 없나?"


"아, 네. 덕분에.."


"그럼 배는?"


"배?"


그때 갑자기 배에서 소리가 났다.


꼬르륵.


"홀홀, 이 늙은이가 너무 눈치가 빨랐군. 때마침 점심시간이니 같이 식사하러 가세나."


연화는 이미 먹고 왔다며 할 일이 있다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난 대왕노사 할아버지랑 같이 점심을 먹게 됐다. 


나물 반찬과 밥. 그게 전부였다.


"홀홀, 젊은이가 느끼기에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나물에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나물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어이, 각성자."


이번에는 노란 삐죽머리였다.


"내 소개를 하지. 난 파피로. 넌 불이라며? 난 참고로 얼음이다."


"홀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거늘.. 정녕 피를 보고 싶은 게냐."


밥에 진심인 대왕노사였다.


"칫.. 망할 늙은이. 불, 밥 다 먹으면 수련장으로 나와라.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다. 얼음과 불, 누가 더 강한지 오늘 겨뤄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노란 삐죽머리는 사라졌다.


"아, 사부님 여기 계셨군요."


파피로가 떠나고 이제 겨우 한 숟가락을 더 먹으려 할 때, 이번에는 대머리였다.


"홀홀, 청운 왔는가. 같이 앉지."


그렇게 청운이라 불리는 대머리도 합류했다.


"아, 이분이 그 불 각성자.."


"아.. 네, 안녕하.. 쿨럭쿨럭!"


망할.. 삼키다 목에 걸렸다. 


나도 모르게 낯선 이들의 등장에 긴장했나 보다.


"아, 죄송합니다. 천천히 드시죠."


다행히 식사 시간은 더 이상 아무 일 없이 끝났다.


'나물.. 생각보다 배부를지도..'


대왕노사는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갔고, 청운과 단둘이 남게 됐다.


졸졸졸.


청운은 능숙하게 그릇을 닦았다. 


나도 청운 옆에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


"각성이란 건 어떤 기분입니까?"


"네?"


"아.. 제가 너무 두서없이 말했군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졸졸졸.


"저는 이곳에서 25년 가까이 수행했지만 아쉽게도 전 각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문득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느낌이라.. 딱히 느낌이랄 것도 없었고 그때는 정신도 혼미해서 잘 기억나진 않았지만..'


"뭔가 제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그..렇군요."


끼익끼익.


설거지가 끝나고 청운과 난 헤어졌다.


'참.. 그러고 보니 뭔가 잊은 듯한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 이불에 다시 누웠다.


'음.. '


누워도 괜찮나 싶지만.. 일단 난 손님이고, 뭐 할 일 있을 때 누군가 부르겠지 싶었다.


그렇게 다시 눈을 감았다.


드륵 탁!


소리에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야, 부우우우울! 어디 갔어!"


노란 삐죽머리였다.


삐죽머리..?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이제 기억났냐!!!"


파피로는 팔을 잡아당겼다.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져서 부담스러웠다.


"오늘 누가 더 센지 결판을 내자!"


파피로에게 질질 끌려서 수련장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날이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후후, 드디어 이 날이 오는군."


파피로는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 근데 왜 제가 파피로 씨랑 싸워야 되나요?"


"그건 너가 불이기 때문이다."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피로가 한 손으로 코를 슥 했다


"사실 난 각성자가 아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러시아였지. 추운 곳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갔지. 그리고 부모님은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고, 수소문 끝에 소림사라는 곳에 날 맡기셨다."


파피로는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뭔가가 파피로의 발밑에 떨어졌다.


툭.


얼음이었다.


"어.. 얼음..?"


갑자기 얼음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지금 날씨가 한겨울도 아니고, 주변에 나무는 푸릇푸릇했고 풀들도 무성했다.


"난 얼음을, 정확히 차가운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파피로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의 주먹이 한기가 느껴질 만큼 차갑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으면 얼어붙을 거다."


파피로는 그 말을 끝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잠깐, 나 아직 아무것도 못하..!"


파피로의 주먹이 내 몸에 닿는 순간, 그대로 내 몸은 차갑게 얼어버렸다.


==========


"파피로 씨, 뭐 하는 짓이에요!"


연화가 소리쳤다.


"이러다가 승현이 감기라도 걸리면 책임지실 거예요?!"


"고..고의가 아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약해빠졌을 줄은.."


파피로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자자, 다들 진정들 하시게. 파피로도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지 않는가."


청운이 둘 사이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잠시 뒤 도망치는 파피로와 소리 지르는 연화를 뒤로하고, 청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불 가까이 다가왔다.


"승현, 몸 상태는 어떤가? 정말 괜찮은 겐가?"


난 여전히 뼛속까지 느껴지는 냉기를 느끼며 애써 미소 지었다.


"아니요.. 콜록콜록!"


설마 파피로 녀석이 그렇게까지 무식할 줄이야.. 다짜고짜 사람을 얼려버릴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네. 보통은 2~3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네."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역시 불의 각성자이기 때문인가."


"네? 방금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네. 방 안은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그만 푹 쉬게나. 따뜻한 마실 게 필요하면 연화에게 말하면 된다네."


그렇게 청운은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연화는 파피로를 쫓아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고, 청운씨도 가버리고 난 혼자 덩그러니 남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음, 생각보다 낡아 보인다. 오래된 곳이라서 그런가.. 


"콜록콜록."


'망할 파피로.. 두고 보자.. 내가 능력만 쓰게 되면 이런 냉기 같은 건 다 녹여주마.'


난 한 손을 꺼내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손이나 몸에서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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