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 역시 소림의 현 주지답군."


노사는 흠칫 뒤를 돌아봤다. 


어떤 존재가 어둠 너머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모습, 이질적인 기운, 붉은 눈, 거대한 검은 망토.


"넌 누구냐." 


노사가 말했다.


"내 이름은 권왕흑룡. 편하게 흑룡이라고 불러도 된다."


"뭐, 뭣? 권왕흑룡?"


노사는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소림의 오래된 책들 속 스쳐 지나가듯 나온 권왕흑룡이라는 이름.


"하지만.. 넌 분명 몇 천 년 전의 존재일 텐데? 잠깐.. 그 검은 망토.. 설마.." 


검은 망토만은 기억한다. 


소림에 보관 중이던, 사념을 지니고 있던 물건.


"설마 그 망토 속에 깃든 원혼이 바로 자네란 말인가?"


"뭐.. 그렇지.. 벌써 몇 천 년 후라니 시간 참 빠르군."


"너 같이 사악한 것이 어찌하여 다시 현세를 떠돌고 있는가.."


"저주.. 받았다고 해두지.. 각설하고 왠 머리숱이 많은 검은 인간이 날 해방시켜 줄 테니 원 없이 싸우라고 하던데 이름이 돈밥이었나? 잘 기억은 안 나는군."


"네 놈의 목적은 뭐냐.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찌 구천을 떠도는 것인가.."


"몇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목표는 하나지. 나보다 강한 놈과 싸우는 것이다. 그 밥이라는 놈도 꽤 강해 보였지만.. 네 놈도 강해 보이는군."


"긴말은 않겠다. 네 놈은 과거에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사라지게 만든 살인귀다.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널 단죄하겠다."


"아, 그런 일도 있었지. 깜박해서 잊고 있었군. 그래, 네 알량한 능력이 부디 날 즐겁게 만들어 주길 기대하지."


쿠르릉


쾅! 


번개가 흑룡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순식간이었다.


'번개라.. 그러고 보니 전에도.. 그 흰머리 놈도.. 번개를 썼던 거 같은데..'


노사는 곧바로 흑룡의 뒤로가서 흑룡의 몸통을 발로 찼다. 


흑룡은 꿈쩍없었다.


"큭!"


쿠르릉, 


쾅! 


쾅! 


두 번의 번개가 다시 한번 흑룡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따끔따끔하군.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야. 근데 잔재주는 다 끝났나?"


"놈! 아직 멀었다!"


쿠르릉


콰가가강! 


이번에는 하늘 위 모든 번개가 한 곳을 향해 내리쳤다.


"그건 좀 아파 보이는군."


노사의 두 손에 모든 번개가 압축되어 모여 있었다.


"하아아아압!"


잠깐의 정적. 


찰나의 순간. 


모든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모든 시간이 멈춘 듯이 보였을 때 노사는 홀로 움직였다. 


눈 깜짝할 순간


노사는 흑룡의 어깨를 잡았다. 


노사의 손에 압축된 수십 개의 번개들이 흑룡의 몸 안을 타고 지반으로 흘러 내려갔다.


파지지지지지지직! 


흑룡은 온몸이 떨리고 입을 벌리고 선 상태로 움직임을 멈췄다.


"후.. 해치웠나?.."


승현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나무에 등을 기대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로 게임이나 만화로 혼자서 시간을 보낸 승현은 알고 있었다.


노사의 대사는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암천." 


굵고 낮은 목소리가 나더니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뭐.. 뭣..?!" 


노사는 모든 시야가 차단된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흑룡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심연 진각."


노사는 뭐에 맞은지도 모른 채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흑룡파."


파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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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현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딸랑


딸랑


냐옹


냐옹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냐옹. 


모든 촉감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온기가 느껴졌다. 


따뜻한 뭔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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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귀찮은 노인네는 처리했고.. 음?"


흑룡의 눈 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불꽃?'


분명 이 장소는 암천인 상태였다. 


모든 것을 어둠 속에 삼키는 흑룡의 원래 능력과 사념이 합쳐진 새로운 무언가.


이 어둠 속에서 불꽃이라고?


"크크큭 재밌군."


승현은 온몸에 불이 난 것처럼 뜨겁고도 따뜻한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은은한 불꽃의 불빛들이 승현을 감싸고 있었다. 


곧이어 한 손을 펼쳤다. 


불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뜨겁지만 결코 뜨겁지 않은 그런 따뜻한 불이었다.


흑룡이 그런 승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승현은 그런 흑룡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흑룡이 그런 승현을 향해 소리쳤다.


"흑룡파!!!"


흑룡에서 시작된 무수히 많은 이질적인 검은 기들이 승현을 향했다. 


화르륵


승현의 손에서 나온 불꽃들이 검은 기들과 충돌했다. 


타닥타닥...


승현의 불꽃이 흑룡의 검은 기를 태우고 있었다. 


흑룡은 어느새 승현의 옆에 서 있었다.


"심연 중륜ㄱ.."


흑룡이 승현을 향해 묵직하게 발을 돌려찼다


휘이잉


갑자기 날아온 바람이 흑룡을 휘감았다. 


흑룡은 중심을 잃고 살짝 비틀거렸다


흑룡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큭!"


"승현!! 괜찮아?!" 


연화가 소리쳤다.


연화는 크게 도약하더니 승현의 옆에 섰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모두 한 번에 보내주마!!"


흑룡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검은 기들이 흑룡의 한 주먹에 모이기 시작했다.


"극 흑룡파!!!"


콰가가가가각! 


아까랑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대하고 강력한 기들이 승현과 연화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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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푹 잠들었었군.' 


노사가 천천히 일어났다.


'이 몸도 이제 슬슬 은퇴할 때가 되었는가..'


노사는 눈을 감았다


노사의 모든 기가 심장 쪽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번에 살아남는다면.. 다 내려놓고 여행이나 떠나고 싶구만.. 세상 구경을 안 한지도 오래되었어.. 홀홀..'


노사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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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현은 두 손을 앞으로 향했다.


분명 이번에도 어떻게든 막을 수 있으리라.


내 뒤에는 연화도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 고생이 많구먼 홀홀." 


어느샌가 나타난 노사가 한 손으로 흑룡파를 막고 있었다.


"확실히.. 나이가 들어서 버겁구만.. 10년만 더 젊었더라도.."


"하.. 할아버지?!"


노사는 승현의 옆에 서 있는 연화를 바라보았다.


"연화.. 어느새 훌쩍 커버렸구나.. 지나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 같아.."


"하, 할아버지.. 소.. 손이!" 


노사의 손이 조금씩 검게 물들고 있었다.


"모두 잘 듣거라. 내 마지막 힘을 모아서 놈에게 역으로 되돌려줄 거란다. 이 검은 것들 까지도. 어떠냐? 같이 해볼 테냐?"


"할아버지"

"노사님"


 "해볼게요!" 


승현과 연화가 동시에 답했다.


노사는 그런 둘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승현과 연화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시뒤


바람이 살며시 노사의 몸을 감쌌고, 승현의 불들이 그런 바람을 다시 한번 부드럽게 휘감았다.


파지지지직! 


곧이어 노사의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스파크가 튀었다.


그렇게 바람과 불, 번개가 노사를 중심으로 한 곳에 모였다. 


노사는 세 개가 합쳐진 그 기의 소용돌이를 흑룡을 향해 폭발하듯 내던졌다.


"흡!"


후우우우웅! 


그 하나가 된 기는, 검은 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흑룡은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큭.. 이..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단 말이다!!!"


흑룡은 그대로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이내 합쳐진 기의 폭풍은 검은 기를 몰아내고 그대로 흑룡을 집어삼켰다.


"내.. 내 수천 년의 원한이.. 이리 허무하게.. 크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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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덴져러스 밥님.."


가이반은 창 너머의 풍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믿기 힘든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첫 시작은 하늘 너머로 솓구쳐오른 기의 소용돌이였다


잠시 뒤 


하늘에서 갑자기 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선들은 각자의 모양을 찾아가는 듯 점점 선명해졌다. 


이윽고 하늘에는 거대한 문처럼 생긴 무언가가 나타났다. 


덴져러스 밥은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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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흑룡이 깃든 검은 망토가 사라지고,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청운이 있었다.


"예끼 못난 놈.." 


노사는 청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 스승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청운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청운아."


"예, 스승님."


노사는 청운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속에 한두 가지 욕망을 품고 살아간단다. 그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네가 강해지고 싶다는 바람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란다."


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상처 입힌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란다. 내 말 알아듣겠느냐?"


"예.. 스승님. 정말.. 죄.. 죄송합니다.." 


청운은 조용히 흐느꼈다.


"..조금만 쉬었다 천천히 가자꾸나.."


연화는 승현의 손을 꽉 잡았다.


두 사람은 청운이 흐느끼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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