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반, 전속력으로 문으로 돌진하도록 하세yo."
"예? 덴져러스 밥님 무슨..."
"가이반 하라는 대로 하세yo."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순간의 위압감은 가이반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네, 덴져러스 밥님."
가이반은 무전기를 잡았다.
"에라전대 듣고 있나?"
"넵, 여기는 레드 듣고 있습니다, 가이반님."
"지금부터 블랙함대는 하늘의 문을 향해 최고 속력으로 돌진한다."
"넵, 가이반님 명 따르겠습니다!"
잠시 후, 소림 상공에 떠 있던 검은 비행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검은 비행체는 고도를 높이고 속도를 올려 하늘 위 문의 형체로 충돌하듯 향했다.
슈우웅.
검은 함대 갑판 위로 누군가 나타났다.
"이것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문이군yo."
덴져러스 밥은 발걸음을 멈춘 뒤 씨익 웃었다.
"재밌군yo. 브라질 정글 속 유적에서 발견된 문서.. 반신반의했는데, 설마 진짜로 실존할 줄은 몰랐네yo."
덴져러스 밥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정확히는 문이 있는 곳을 향했다.
"흡."
쿠오오오오..
덴져러스 밥의 몸에서 나온 선명한 붉은 기운들이 그의 몸을 감쌌다.
덴져러스 밥은 문을 향했던 두 팔을 천천히 몸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쿠구구구구..
그의 손짓에 반응이라도 하듯 문은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구.
거대한 소리에 놀라 모두는 하늘을 쳐다봤다.
"저, 저건!"
노사는 두 눈을 부릅떴다.
믿기 힘들 정도의 기괴한 광경.
하늘 위에 떠 있는 문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히 비현실적이었다.
"절대 열리면 안 되는 문.."
노사는 혼잣말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할아버지, 뭔가 아시나요?"
연화는 그런 노사를 바라보았다.
소림의 기록들, 그중에 어딘가에 남겨진 기록이 있었다.
노사는 연화와 승현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저 문은 사람들의 바람을 이루어 주는 절대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란다. 하지만 그 절대자는 너무도 순수해서 그게 무엇이든 반드시 이루어 준다고 하는구나. 설령 그게 종말이라도.."
연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저 전설 속에 지어낸 우화인 줄 알았거늘.. 설마.. 진짜일 줄이야.."
노사는 다시 고개를 들어 문을 보았다.
하늘의 문은 어느새 열려있었고, 검은 비행체가 문을 통과하려고 하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저 비행체는 데스트로소.. 덴져러스 밥이 타고 있다.."
"저.. 저희가 무슨 수로.."
승현의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담겨 있었다.
"승현, 생각해 보거라. 덴져러스 밥의 바람이 뭘 거 같나? 그는 자신의 이익 앞에서 한없이 이기적이고 잔인해지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무슨 짓을 벌일지 짐작조차 안 되는구나.."
그때 연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할아버지, 제가 갈게요."
연화의 두 눈에는 결의가 차 있었다.
흔들림 없는 눈.
언제나 먼저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
승현은 그런 연화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비록 괴롭힘을 당하고 친구 한 명 없는 외로운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저도 연화랑 같이 갈게요."
연화는 놀란 표정으로 승현을 쳐다봤다.
"승현, 너까지 안 가도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연화는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 번 두들겼다.
"이렇게 보여도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연화는 승현의 머리에 손을 올려 살짝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고생 많았으니까 뒷일은 우리에게 맡겨.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 이미 충분해."
연화는 승현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승현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난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
언제나 도망치던 인생이었다.
현실로부터, 주변 환경으로부터.
애써 도망쳐도 도망친 게 아니었다.
도망쳤다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나 제자리였다.
사실 제자리에 서서 뒤로만 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눈을 돌려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저 상황만 계속 나빠졌을 뿐.
승현은 연화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흔들림 없는 차분한 붉은 눈동자.
'그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연화의 이런 모습에 안도하고 기대어왔을지도 몰라. '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 준 소녀.
"이번에는 내가 먼저 네 손을 잡을게."
"너희들 뭐 하냐.."
파피로는 눈을 얕게 뜬 채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승현과 연화는 재빨리 두 손을 놓았다.
노사는 두 사람이 당황하는 모습에 껄껄 웃었다.
"파피로.. 자넨 괜찮은 겐가?"
파피로는 한 손을 돌려 스트레칭을 했다.
"엉, 파란 머리 녀석한테 한 방 먹긴 했는데 많이 아프진 않네. 빌어먹을. 내가 풀파워였었으면 그런 녀석한테 당하진 않았을 거야."
파란 머리, 이곳에 쓰러져 있었어야 할 살인대좌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아무튼, 듣자 하니 저 문 너머로 가는 거 같은데 나만 빠질 순 없지. 너희 둘은 나 없으면 어디서 맞고 다니잖아."
"할아버지는 여기 가만히 계세요. 저희들만 믿으세요."
"너희들.."
노사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연화, 승현, 그리고 파피로가 손가락으로 코를 슥 비비고 있었다.
"근데 너희 셋 아까 전에 파랑 머리한테 당하지 않았.."
"아이참, 할아버지!"
연화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하.."
승현은 멋쩍게 웃었다.
"영감! 그건 내가 풀파워의 파피로님이 아니었다고! 불 끄다가 지쳤었다고!"
파피로는 노사를 향해 씩씩거렸다.
"..뭐 지금 당장 믿을 사람들은 너희들밖에 없으니.."
노사는 편하게 주저앉았다.
"가거라. 너무 무리하진 말고. 어떤 상황이 와도 서로 믿고 의지하거라."
노사는 여전히 쓰러져 있는 청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가거라. 뒤를 부탁한다, 얘들아."
"예!"
셋은 모두 노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잠시 뒤
데스트로소의 검은 비행체는 이미 문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연화, 파피로, 그리고 승현은 연화의 바람의 힘을 이용해 하늘 위 문으로 향했다.
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분위기는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고 그 말많던 파피로조차 이번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문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우리는 그대로 문 너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으으.."
여긴 어디지.. 잠깐 정신을 잃었었다.
눈을 살며시 떠보니 주변은 풀과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었다.
"냐옹."
언제 왔는지 어느새 파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옆에서 서 있었다.
"넌 누구니?"
난 천천히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여기 사니?"
"냐옹."
고양이는 나를 그냥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난 다시 고양이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냐옹."
고양이는 어딘가로 혼자 걸어갔다.
"냐옹."
내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고양이는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냐옹."
"나? 나보고 따라오라는 소리야?"
"냐옹."
그러고는 고양이는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난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따라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풀숲이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고양이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냐.. 냐옹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 들어 잠깐 오싹해졌다.
'으.. 뭐였지? 혹시.. 귀신..?'
발걸음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안개에 가려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낮인 건 분명했지만..
'이렇게 심한 안개는 처음 보네..'
그렇게 제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 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그냥 걷자.'
얼마나 걸었을까.
쿵.
"으윽.."
딱딱한 뭔가에 살짝 부딪쳤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나무로 만든 문 같은 게 있었고 손잡이도 하나 있었다.
'문..? 이런 들판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천천히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문은 거친 비명 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열렸다.
"윽."
승현은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계단이 있었다.
'후.. 좋아, 일단 가보자.'
승현은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뚜벅뚜벅.
얼마나 계단을 올랐을까
저 끝에서 살짝 빛이 보이는 거 같았다.
빛에 거의 도착할 무렵 승현은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윽."
그렇게 계단을 타고 도착한 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긴 복도가 이어진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이런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승현은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승현은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스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평범한 엘리베이터였다.
"으음.."
승현은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런 버튼도 없었다.
승현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튼을 찾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닫혔다.
"?!"
승현은 깜짝 놀라 살짝 몸을 움츠렸다.
엘리베이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혼자서 위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고, 충분히 높은 곳에 있겠구나 생각할 무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뭐.. 뭐야.."
내 눈 앞에는 긴 파란 머리가 매서운 눈빛으로, 당당히 서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 위압감에 살짝 침을 삼켰다.
그렇게 나랑 파란 긴 머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네놈이 승현인가."
파란 긴 머리가 입을 열었다.
"..?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하얀머리가 알려줬다."
"하얀머리? 하얀머리가 누구지?"
"문답무용."
파란 긴 머리는 한 손을 올려 오른쪽 어깨 근처에 있는 손잡이를 잡았다.
철컥
끼기기긱
파란 긴 머리가 천천히 손잡이를 들어 올리자,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서슬 퍼런 하얀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원하는 답을 얻고 싶거든 날 쓰러뜨려라."
파란 긴 머리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얀 긴 칼날이 천천히 날 향했다.
난 영문도 모른 채 당황했다.
"자.. 잠깐.."
난 싸울 의사가 없다는 마음을 파란 긴 머리에게 전하기 위해 다급히 두 팔을 올렸다.
"지.. 진정.."
파란 긴 머리는 어느새 내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고,
툭.
바로 옆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건 내 팔이었다.
"으..으아아아아아악!!!"
피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난 정신을 잃었다.
======
"헉!"
헉 소리와 함께 다시 눈을 떴다.
난 벌떡 일어나 팔을 확인했다.
다행히 팔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붙어 있었다.
난 오른팔을 만져보기도 하고 천천히 회전하듯 돌려보기도 했다.
다행히 내 오른손은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꾸.. 꿈이었나..?'
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
"꿈이 아니다."
낯선 목소리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파란 머리의 긴 남자.
어느새 그가 또다시 내 앞에 서 있었다.
"한 번 죽은 기분은 어떤가?"
"주..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당황스러웠다
파란 긴 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그게 꿈이 아니란 건가..'
난 천천히 내 오른팔을 움직여보았다
'큭.'
생생히 떠오르는 감각.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었다고?
"그래,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내 부하들은 이곳을 지키는 꼭두각시가 되었지.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오직 나뿐. 우리.. 나와 내 동료들은 하얀머리에게 저주받았다. 난 이곳을 지키는 열쇠의 파수꾼이자, 이곳 시간이 멈춘 대저택의 주인."
"무엇을 지켜요?"
"자격이 없는 자들로부터 열쇠를 지킨다. 넌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너와 네 동료들은 열쇠를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그럼 왜 저를.."
"그냥.. 그녀.. 하얀머리에게 심술이 났을 뿐이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과거 몇 천 년 전 아득히 먼 과거.
그는 어떤 조직의 수장이었고, 동시에 악당이었으며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어느 날 긴 머리의 소녀가 그의 앞에 나타나 그와 그의 부하를 모조리 제압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름 없는 남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진 닌자 마스터라고 불렀었다.
"뭐, 그래도 네 녀석이 여기 와준 덕분에 나와 내 동료들도 이제는 편히 쉴 수 있겠..."
쿠구구궁.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고 그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풍성한 머리카락, 검은 피부를 가진 거대한 덩치의 남자였다.
"크흐흐흐."
쿵.
그 남자는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밑에는 내 부하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파란 긴 머리의 말에 검은 남자는 씨익 웃었다.
"아아, 그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라면 이미 내가 다 터뜨리고 왔어yo. 참 약했었어yo, but 속도는 나쁘지 않았어yo."
"..네놈.."
파란 긴 머리가 칼을 뽑았다.
"아아.. 너가 여기 보스군yo? 좋은 말로 할 때 열쇠를 내놓으세yo. 계속 반항하면 이곳 건물 자체를 통째로 날려버릴 거예yo."
진 닌자 마스터가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내 옆으로 왔다.
챙.
진 닌자 마스터의 하얀색 긴 칼날이 천천히 떨어졌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