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승현은 정신이 들었다


"후후, 드디어 눈을 뜬 게냐 본좌의 소중한 친구이자 하나뿐인 친구인 승현이여... 기다리고 있었다! 10년만이로구나"


갑자기 허공에 울려 퍼지는 낯선 목소리


"..누구세요?"


"아앗..기억 못 하는 것이냐..."


비록 어둠 속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목소리의 주인공이 시무룩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큭.. 여긴 어디에yo?"


밥이 일어났다


"앗.. 검은 뽀글머리도 일어났다"


"뽀글머리??"


빠직


밥은 앞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공간


밥은 한 손을 폈다


손 위로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승현은 곧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로마 시대에 나올 법한 거대한 궁궐 같은 곳이었다


긴 복도 같은 게 있었고 그 너머에는 한 소녀가 쇠사슬과 수갑에 온몸이 결박당한 채 파란 눈동자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밥은 조용히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애새끼가 있었군yo.. 근데 왜 사슬에 묶여 있나yo?"


하얀 머리의 소녀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후.. 이건 본좌 안에 존재하는 흑염룡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니라!"


하얀 머리의 소녀가 당당히 외쳤다


"흑염룡? 그게 뭔가yo?"


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다년간의 십덕후의 경험을 쌓은 승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녀석.. 정체가 뭔진 몰라도 상상 이상의 중2병 씹덕후다'


"뭔.. 이상한 소리 하는진 모르겠지만yo, 그 너머에 느껴지는 강렬한 힘.. 믿기진 않지만.. 그대가 바로 수천 년 전 신이자 절대자로 불렸던 스피카군yo?"


"후후후... 그렇다! 드디어 본좌를 알아보는 똑똑한 녀석이 한 명 등장했구나!"


꿀꺽


승현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저딴 게 신..? 절대자..?'


밥은 스피카를 향해 붉은 기운을 내뿜었다


"쇠사슬이 버거워 보이는군yo, 풀어드릴까yo?"


"후후후후, 네깟 모조품 따위의 힘으론 무리다!"


"흡!"


밥은 진닌자마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두 손을 뻗어 염력을 사용했지만 쇠사슬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이 쇠사슬은!"


스피카가 당당히 소리쳤다.


"본좌가 무려 1억 년 동안 설계한 엄청 튼튼한 쇠사슬이다! 심지어 이 몸조차 풀지 못하지!"


'..바보인가'


쇠사슬 일억 년은 둘째 치더라도.. 스피카? 얘는 바보가 맞다 


저딴 게 풀려난다면 세상은 웬 정체 모를 십덕후의 기분에 따라 멸망하고 말 것이다


봉인이 풀리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승현은 그렇게 직감했다


"..곤란하군yo.. 고대 병기를 활용하기 위해선 당신의 힘이 필요한데..yo.."


밥은 약간 시무룩해졌다


"괜찮다! 저기 옆에 있는 레버를 아래로 당겨라! 그럼 본좌의 모든 봉인이 풀린다!"


마침 밥 옆에 있던 대리석 기둥에 레버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아.. 이건가yo?"


밥은 벽에 있던 레버를 아래로 당겼다


쿠구구궁


"아.. 앗, 잠깐만..!"


차마 승현이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봉인이 풀려버렸다


스피카를 감싸고 있던 모든 쇠사슬과 수갑이 풀렸다


'아니아니.. 잠깐만..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봉인 풀기 너무 쉽잖아..


승현은 당황했다


"음! 검은 뽀글머리 고맙다!"


스피카는 뻐근한 듯 자신의 가느다란 손목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좋다! 이 몸을 풀어준 대가는 치러야겠지!"


스피카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와 밥 앞에 멈춰 섰다


"뽀글머리! 손바닥을 보여줘라!"


밥은 스피카를 내려다봤다


"뽀글머리라고 그만 말해줄래yo? 상당히 기분 나쁘거든yo?"


밥은 새침하게 오른쪽 손바닥을 펼쳤다


스피카는 밥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펼쳤다


잠시 후


스피카와 밥의 손바닥 사이에 황금빛 빛줄기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피카는 손을 거뒀다


"방금 본좌가 갖고 있던 관리자 코드를 너에게 넘겨줬다! 이젠 그 장난감이 널 주인으로 인식할 거다!"


밥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손바닥을 천천히 접었다가 폈를 반복했다


"..드디어 손에 넣었군yo.. 고대 병기..이것만 있다면 세계 정복도 꿈은 아니.."


"아? 뽀글머리, 너 세계 정복이 꿈이었나??"


"호호홓, 맞아yo 쑥스럽지만 어릴 때부터 간직해오던 소중한 꿈이에yo"


"아.. 미안하구나 뽀글머리, 사실 본좌는 이제부터 세계 멸망시키러 가야 해서.. 네가 말한 세계는 한... 한 시간 후에 소멸할 거다"


"?? 그게 무슨 소리에yo??"


밥은 순식간에 당황했다


진짜.. 뜬금없는데..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거지?? 한 놈은 쑥스럽게 얼굴 붉혀가며 세계 정복을 말하고 있고, 또 한 녀석은 세계 멸망?


승현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느냐! 이 봉인에서 풀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피카는 답답한 듯 두 손을 허리에 짚었다 


"아니.. 잠깐만yo? 너무 갑작스럽잖아yo?"


밥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겨우 말했다


"앗.. 미안하다.. 사실 본좌는 수십억 년 전 화성의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기술의 정점! 모든 최첨단 기술들의 집약체! 화성이 곧 이 몸이다 이 말이야! 지금부터 수호자로 설계된 본좌를 이번에는 화성 멸망 시스템의 주체로 변경! 시스템 심판의 날을 가동하겠다!"


"그.. 그만둬 미친.."


앗..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렸다


부디 저 스피카라는 절대자가 화내지 말아야 할 텐데..


"? 왜 그만두라는 것이냐?"


다행히 스피카는 화내지 않았다


"그.. 그야 당연히.. 세계가 멸망하면.. 사람들도 사라지고.. 뭔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요.."


스피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수해 보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


저건 정말 순수하게 모르는 거다


왜 세계 멸망을 시키면 안 되는지


승현은 스피카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좋은 기억이나 추억 같은 건 많이 없어도 착한 사람들도 많고, 이제는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까


그런 곳이 사라져버리고 없다면 쓸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죄 없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승현은 결심을 굳히고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스피카의 다음 말에 모든 생각이 멈춰버렸다


"이건 승현, 너의 소원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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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