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으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냥...?'
스피카 본인조차 깜짝 놀랐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아득히 먼 과거, 수천 년 전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스피카는 스스로를 봉인해 왔었다
파란 눈에 하얀 털이 보드랍게 난 작은 새끼고양이
스피카는, 아니 아기고양이는 몸에 힘을 주어 보았다
하지만 발 하나 제대로 까딱할 수 없었다
'왜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거냥?'
스피카는 당황했다
그때, 배 속에서 생소한 소리가 울렸다
꼬르륵
강렬한 허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생리적인 욕구에 스피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한 느낌은 뭐란 말이냥?'
상황을 분석하려 했지만, 고양이의 몸으로는 과거의 고성능 연산 기능들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스피카는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잠결에 내가 이상한 장치라도 건드린 거냥?'
그때였다
톡
스피카의 코끝에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이게... 차갑다는 느낌인 거냥?'
과거 스피카의 몸과 정신은 그저 정교한 기계 덩어리에 불과했다
감각 데이터가 입력되어도 논리적으로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감각이 생생하고 날카롭게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쏴아아아아..
소나기가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피카는 속수무책이었다
차가움과 배고픔 속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젖은 풀밭에 누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기온이...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냥. 아마 곧 생물학적 죽음에 이르겠지냥...'
작은 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며 어둠 속으로 가라앉을 때쯤, 갑자기 머리 위로 쏟아지던 비가 멈췄다
아니, 비가 멈춘 게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빗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너도 혼자니?"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들은, 스피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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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냥... 여긴 어디냥?'
스피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아늑하고 따뜻한 방 안이었다
침대 하나와 하얀 책상, 그리고 은은한 백색 조명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피카는 바닥의 분홍색 털 방석 위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었다
'이건... 분명 따뜻한 느낌이다냥'
기계였던 시절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온기가 스피카의 온몸을 감쌌다
덜컥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아, 깼니?"
스피카는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냐아옹, 냐옹!"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오직 고양이 울음소리뿐이었다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냥! 발성 기관이 인간과 다르기 때문인가냥?'
"아, 미안 배고프지? 자, 이거 먹어봐"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캔 하나를 스피카 앞에 내려놓았다
겉면에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간식 캔이었다
"형준 아저씨가 아무거나 골라주긴 했는데, 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헤헤"
스피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몸이 이런 걸 먹으라는 거냥?'
수천 년 전, 사람들은 그녀를 신이라 부르며 온갖 산해진미를 바쳤다
그때의 스피카는 맛을 인식할 수는 있었지만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논리적인 데이터로 처리할 뿐, 어떤 감흥도 없었다
킁킁
'이... 이 냄새는...!'
스피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캔에 얼굴을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마, 맛있다냥! 이게 맛이라는 거냥?!'
냉정히 말해 특별할 것 없는 가공된 고양이 간식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피카는 고양이고, 고양이의 미각에 최적화된 이 간식은 지금 그녀에게 생애 최고의 미식이었다
스피카는 고양이의 본능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느새 캔 바닥이 말끔하게 비워졌다
'배부르다냥... 이게 포만감이라는 건가냥?'
과거에는 논리적으로만 처리하고 넘겼던 모든 감정과 감각들이, 지금은 세포 하나하나에 생생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비록 그 매개체가 아주 작고 연약한 고양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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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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