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모든 기억이 났다


승현은 조용히 스피카를 보았다


스피카 때문인가


스피카는 승현을 보며 그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본좌가 고양이의 몸에 갇혀 있을 때, 그저 차갑고 쓸모없다 여겨왔던 감정이라는 것들을 비로소 직접 느끼게 됐다냥 본좌는 이제 더 이상 차가운 기계가 아니다냥"


스피카는 승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승현 비록 우리의 만남이 운명적인 우연이었다고는 하나 네가 본좌에게 얼마나 큰 것을 주었는지 이제 알겠느냥?"


승현은 스피카의 손을 뿌리쳤다


"스피카 멈춰줘"


"무엇을 말이냥"


"세계 멸망 같은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하자"


스피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현 이건 너의 소원이지 않았느냥? 본좌는 그저 너에게 받은 것에 보답을 해주고 있을 뿐,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아니 그런게 아니야"


승현의 눈이 스피카랑 마주쳤다


파란 눈동자


"난 세계 멸망.. 그래 한 때는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그런 걸 바랬던 적도 있었지"


"바로 그거다냥 벌써 그 마음을 잊어버린거냥?"


옆에서 지켜보던 밥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갑사기 냥냥 거리기 시작한거 같은데 혹시 드디어 미쳐버린건가yo..?'


"난 이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찰나의 정적


"..승현 그게 무슨 소리냥"


"우리는 친구고 가족이지 않느냥"


"영원히 함께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느냥"


스피카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10년


스피카가 감정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겪어야 했었던 혼자만의 길고 길었던 시간들


본래라면 스피카에게 찰나의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감정을 느꼈던 스피카에게 그것은 저주이자 독


스피카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천천히 오염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했냥.."


승현을 향한 병적인 집착


스피카는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 새 소림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연화, 파피로, 대왕노사도 그곳에 있었다


"요 마이 프렌드 오랜만이네?"


파피로가 승현의 어깨를 툭쳤다


스피카가 손가락을 튕겼다


파피로가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어.. 파피로?"


승현의 손이 허공에 갈곳을 잃었다


"이.. 이게 무슨.." 


대왕노사는 당황했다


순식간에 파피로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이런 경우는 듣도보도 못한..."


그때 대왕노사의 눈에 하얀머리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머리.. 파란 눈..? 설마.. 당신이"


"대왕노사님! 파피로가 갑자기 사라졌.."


노사의 옆에 있던 연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


스피카는 또 한 번 손을 튕겼다


순식간에 대왕노사가 사라졌다


"노사님?..."


연화는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연화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얀 머리의 소녀가 연화를 보고 있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 보이는 파란 눈동자


무미건조한 시선


스피카는 당황해하는 연화를 향해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게 연화도 사라져 버렸다


"..어? 연화?.."


"뭐야.. 다들 어디갔어.."


"나랑 장난치고 있는거지? 그렇지?"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현실감각을 상실한 승현의 곁으로 스피카가 조용히 와서 손을 잡았다


"소중한 건 전부 사라졌느냥?"


"아니면.."


"아직도 남아 있느냥?"


"미친.. 손가락만으로 존재를 소멸시켜버렸어yo.."


밥은 두려움과 경외심이 담긴 눈으로 스피카를 보았다


"과연.. 저게 과거 신으로 불렸던 존재인가yo.. 지금은 신이 아니라 그저 괴물이겠지만yo.."


치지직


"아아 스피카님 들리십니까? 일단 복귀 축하드립니다"


"아 들린다냥 계속 말해라냥"


고요한 정막을 깨고 허공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기계처럼 딱딱했지만 마치 사람을 흉내라도 내는 듯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심판의 날 곧 시작하겠습니다 지구 상공 곳곳에 금성인 인형 100기를 배치해놨습니다"


"명령한 내려주시면 언제든 바로 심판의 날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래냥 꾸물거릴 필요없다냥 바로 심판의 날을.."


그때였다


슈우웅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



순식간이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스피카의 배를 꿰뚫었다


"어?"


스피카의 배에서 피가 흘렀다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생긴 작은 방심


그 틈을 누군가가 정확히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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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