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차를 ‘말에 대한 이야기’로 읽은 리뷰 보고 정말 공감했었는데,

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한 번 말해보고 싶어서 써 옴




공간은 그릇이 아니라 관계다.

공간이 바뀌면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관계가 바뀌면 그곳은 이미 같은 공간일 수 없다.



< 혜진과 공진 >


혜진에게 서울은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드러내는 솔직함이 약해지는 것이라 학습시킨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옷발과 이에 맞는 신발, 그리고 뾰족뾰족한 가시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따뜻함은 이웃보다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 대한 정직한 진료로, 마음 가는 곳에 보내는 후원금으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혜진이 넘는 선은 고작 그 정도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당연하고 작은 따뜻함마저 서울은 기어코 가만두질 않았다.

혜진은 물러서는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

결코 흔하지 않은,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때가 하필 기일만 남은 엄마의 생일이 아니었다면…

그곳이 함께 했던 것마저 흐릿해진 엄마와의 작은 연결고리, 공진이 아니었다면…


하지만 혜진의 공진행은 시작부터 사고다.

작은 선을 넘었다는 것만으로 하루아침에 무직자가 될 뻔한 혜진에게,

하필 온 동네가 선을 침범해오는 것만 같은 것이다.

서울에서 갓 입성한 혜진의 학습된 뾰족함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공진 모두에게 생중계 되어버린 걸 어쩌랴.

하지만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는 혜진은 실수를 사과하며 위기를 넘기고 공진사람들과 진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사태가 서울시 OO구 OO동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선을 넘어오는 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실수를 저지른들 그걸 ‘누구에게’ 되돌려야 하는지 찾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기도 관계를 맺기도, 회복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곳이니까…


그렇게 혜진은 오히려 비로소 공진에서 자신의 따뜻함을, 솔직함을 내놓아도 될 공간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홍반장이 있다.

홍두식이 아니라 ‘홍반장’ 역시 서울시 OO구 OO동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인물이다.

서울에서 홍반장이 하는 온갖 잡다한 일들은 체계적으로 전문화, 기업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었다면 오히려 홍반장은 다른 이의 일자리를 빼앗는 민폐캐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혜진과 사사건건 부딪힐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여력도, 인력도 부족한 공진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덕분에 혜진은 온갖 자격증을 섭렵한 홍반장을 하루 세 번도 만날 수 있었다.

꼭 애정이 아니었더라도 정이 안 붙을래야 안 붙을 수가 없는 게다.

오늘은 서로 돕다가 내일은 피터지게 싸우고 모레 또 다시 화해하는 게 가능한 곳이 공진이다.

치안이 빈약해서 밤길의 어두움을 걱정하고, 자꾸만 그 앞을 둘러보게 되고, 밝혀주게 되는 곳.

부족한 치안은 온 동네가 합심해서 십시일반 메우는 곳.


그래서


당신의 모습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당신의 진심이, 한발짝 나아가


결국


당신의 마음이, 내게 미소지을 수 있게

당신의 온도가, 나의 마음을 녹일 수 있게 하는


그런 곳이 공진인 것이다.


당신의 감정이, 파도에 떠올라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밀어내보아도


결국 또 만나고 엮이고 코가 꿰어

우정을 넘어선 시선이 자꾸만 머무르게 되는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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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문득


당신의 외로움이, 나에게 기대오고

당신의 존재가, 어둠을 지우게 되고

당신의 자리가, 멀어졌던 내 일상마저 다시 그리고 채우게 되는 곳


그래서 마침내 당신의 사랑이, '우리'에 도달하는 그 순간 순간마다

공진은, 공진사람들과의 관계는 톡톡히 그 힘을 발휘한다.


벅찬 고백과 키스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해 모진 말을 내뱉으며, 그게 실은 상처때문임을 자각하게 했던 바로 그 등대 앞이라는 사실이, 공진이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닐까?


그렇게 혜진은 공진에 점점 더 깊이 물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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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와 두식 >


그런데 정작 공진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동네 온갖 일을 도맡고 있는 홍반장은, 사실은 공진 속 외딴 섬에 홀로 자리잡고 있었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떠돌아야 할 배가, 

바로 그렇게 떠내려가버릴까봐 겁이 나 누군가 수고로이 찾아오기도 힘든 언덕 위에 올려져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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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홍반장으로 불리는 두식이 오롯이 홍두식인 순간은 모두 혼자만의 공간에서뿐이다.


어느 하나 제 손 가지 않은 곳이 없는 집은 자신이 선택한 갈라진 삶의 한 부분만이라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마음을 다스려줄 차와 담금주와 책이 있는 곳이며,

바다와 바닷가는 그 책을 읽고, 고민과 욕심을 잠재우며, 파도를 느끼는 곳이고,

언덕 위 배는 그중에서도 절대 곁을 내어주지 않는 홍두식의 ‘선’이다.


반말과 존댓말이 홍반장과 홍두식을 가르는 바로 그것처럼, 그렇게 공간이 홍반장과 홍두식을 가른다.


그런 두식의 공간이, 선이, 혜진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혜진은 혼자만의 사색에 잠긴 바닷가로 두식을 찾아오고,

혼자만의 휴식을 깨고 두식을 달리게 하며,

누구도 건드린 적 없는 담금주 컬렉션의 핵심을 아작내고,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모습을 내보이게 하며,

자신이 내밀었던 그 온도계를 무기로 특별왕진을 감행한다.


그렇게 두식은 홀로 악몽을 견뎌내던 공간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고,

벅찬 숨을 참으며, 

기어이 개운한 잠에서 깨어 활짝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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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혜진에게 다친 팔에도 잠자리를 내어주고,

내가 읽던 시를 읽어주며,

결국 곁을 떠나지 못하고 웅크린채 하지만 같은 이불을 덮고 따뜻한 잠을 자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너무 아파서 꺼내지 못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살면서 두 번째로 내보이고,

그 위로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있고 싶으면”이란 조건을 붙여서라도 할아버지에게 인사시키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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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제 혼자 한숨 쉬며, 만선의 마음을 접고 있던 등대 앞에서 두식이도 더는 어쩔 수 없이 혜진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직 배는 그 언덕에 홀로 남아있지만,

아마도 곧 혜진과 함께 그 배에 올라 하늘을 보고,

그 배를 바다에 띄워볼까? 이야기 나누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로소 그 배에 물방울이 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짤까지 찌기엔 공력이 모자라서 흑. ㅉㅊㅊ는 공홈과 짤 속 금손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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