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만


팔다리가 잘린 것처럼, 하나의 가능성이 완전히 잘려버리는 상실 있잖아.


두식이는 말할 것도 없고, 혜진이처럼 엄마가 돌아가시거나, 오윤형님처럼 와이프가 죽거나, 남숙씨 처럼 자녀가 죽거나


혹은 그 정도까진 아니라도 감리씨처럼 가족이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런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아픔과 고독의 기운, 조심스러움이 있어. 


그걸 겪지 않았거나 겪었어도 무감한 사람들은 절대 그걸 공감하지 못하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 속에서 저 사람은 진짜 아파본 적은 없구나 하고 알게 되는거 있잖아.


그런 상황에서 사실 주변에 있는 인간도 크게 도움이 안된다. 


타인은 내 아픔을 나만큼 절절히 이해하고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지가 않거든.


그런 상황에서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사람은 종교의 힘에 기대는 경우도 많지. 절대자의 이해를 구하면서.


혹은 통장님처럼 바라볼 이준이가 있다면 그것이 사는 힘이 되기도 하고. 



난 그래서 어지간한 드라마를 보면 도식에 맞춰 이야기를 기워나가는 중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이 개연성 부족으로 이어져서 많이 그만두고,


주로 눈요기 거리가 많은 드라마나 인간의 저열한 본성을 파헤치는 드라마를 많이 본 편인데. 



갯차보면서 상실의 아픔과 고독을 작가님이 넘 잘 헤아려주고


배우들이 표현을 잘해줘서, 정말 많은 위로를 받는다.



판타지물인걸 잘 알지. 사실 외로운 사람들끼리는 벽도 높고 각자의 세계가 깊어서 서로 스며들기 어렵거든. 홀로지낸 시간 때문에 대인관계 기술도 떨어지고. 


두식이 혜진이는 그래도 지능이 높고 문제 해결력이 있어서 어려움들을 극복해나갈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자기 감정을 스스로 규명하는 것 조차 어려워하기 때문에 관계의 진전이라는 건 더 어렵고.  


또, 두본 혜본처럼 힐링되는 얼굴 아니고 현실인간 대부분은 거울 속의 나처럼 오징어라서, 육체적으로 어우러지기는 커녕 얼굴 바라보고 있기도 쉽지 않아 ㅋㅋ



그래도 자신의 외롭고 어두운 마음 속을 밝혀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 존재를 모든 감각으로 느끼며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고


한편으로는 좋은 것은 언제나 날 떠나간다는 불안감도 있는데


12화 마지막에서 이 모든 감정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돌려보며 계속 울고 있다. 


반대로 애타게 붙들고 있어도 내게 사랑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알게된 화정이 영국에게 처절하게 소리지르던 씬에서도 너무 가슴아팠고.





타 게시판 가면 갯차 재미없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거기에 굳이 내 아픔을 드러내면서까지 이렇게 좋은 드라마라고 말할 용기는 없고,


글솜씨가 부족해서 갯러들처럼 잘쓰지 못해서 안타깝다만


이해의 기쁨이 있는 이 곳에 익명의 힘을 빌어 마음을 털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