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1, 12화 보면서 혜진이가 짠했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너무나도 들떠 하는 혜진이 모습이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충만케 해 줄 사람을 기다려 왔던 것 같아서


(리뷰 때문에 지금부터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셀털 미리 양해를 구할게 불편하다면 뒤로 가기)

나 갯또는 혜진이와 비슷한 또래고 지피디 말처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치열하게 산 덕분에

지금은 혜진이처럼 비싼 목걸이를 척척 사는 정도는 아니지만 남들이 보기엔 (정말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근데 있잖아 너무 너무 치열했던 20대

수많은 지적과 비판을 들어오면 자아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경쟁하고 그랬던 나는,

현실 연애에 많이 서툴렀어 가슴 아프게 놓친 첫사랑을 후회하면서 20대를 보내기도 했고.

사실 결혼도 하고 싶고 그랬었는데 너무 많이 바쁘기도 했고

주변에 아무리 봐도 괜찮은 사람,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은 시시덥잖은 만남이 이어지고 나이를 들수록 더해 갔지


그래도 목표지향적인 나는 누군갈 날 온전히 사랑해 줄 사람을 은밀히 기다리면서

내 마음의 정원을 몰래 몰래 가꾸어왔어 꿈꾸어 왔던 그 사람을 만난다면 이만큼의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누군갈 만나면 이만한 사랑을 줄 거라고, 과거의 첫사랑에게 철없이 굴었던 나를 끊임 없이 반성하면서

그런 소원으로 책상 앞에서 혼자 외로운 밤을 버틸 떄가 많았다


그러다 혜진이와 비슷한 시기, 혹은 좀 더 일찍 '나도 어쩔 수 없다'라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어

마음 정리하려고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혜진이 고백처럼 어쩔 수 없는 마음이란 걸 알았을 떄

현실적인 계산은 모두 내려 놓았고 그렇게 시작한 사랑은 정말 내 모습이 철없는 철부지 같았어

열여덟의 연애를 30대에 하게 된 거지


그래서 나는 혜진이 보면서 너무 너무 공감했어

나도 진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인데 계산이 모두 소용없는 연애를 하게 된 이후에는 감정이 주체가 안 되더라고

혜진이가 홍반장 옷 사러 쇼핑 간 것부터 버킷리스트 작성한 것까지 정말 똑같아서 좀 소름끼쳤어

이걸 쓴 작가도 혜진이의 그 철부지 같은 사랑 표현이, 어린아이 같고 열 열덟같은 열정이

길고 긴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에 기반된 걸 아는 사람일 것 같아서

짠하기도 했고 디게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엄마 없이 자라면서 탄탄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애정 가득한 지원 받는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달려왔을 혜진이의

분수처럼 터진 마음이 너무 너무 공감이 되더라

그래서 작가가 혜진이의 마음을 어둠으로 홍반장을 빛으로 묘사한 게 아닐까 싶어

혜진이는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 오랫동안 외롭고 고단했을 시간을 보냈을 거니깐


한없이 사랑 받고 사랑 줄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가꾸어 왔을 혜진이의 정원에, 홍반장이 들어 온 날

고슴도치 같은 현실적 감각을 가진 혜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만 보여주고 싶었던 보송보송한 뱃살을 보여주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인 거지


나이는 정말 중요하지 않더라

우린 모두 본능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맹목적인 사랑을 바라는 고독한 존재고

그런 존재를 우연히 만났을 때 그리고 그 우연이 사랑으로 귀결되었을 때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질 몰라 당황하는 사소한 존재들이더라


내 마음엔 다시 암전으로 가득차지만

혜진이의 정원엔 두식으로 인해 빛이 가득하길, 그리고 그 빛이 매일처럼 환하게 빛나주길.

그래서 많은 갯또들의 마음도 반사된 그 빛으로 물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