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풀어놓을 데가 없어서 혼자 좀 주절거리다 갈게
  
식혜에 미쳐서 하루종일 현망진창으로 살다가 천천히 복습하는데 새삼 지피디가 눈에 들어와서... 첫사랑을 그렇게 고백도 못해보고 퍼주기만 하다가 끝내놓고 십여년이 넘어서 우연히 혜진이를 마주쳤을때의 지피디는 얼마나 놀랐을까.  

지피디 본인 입으로도 그랬듯 정말 운명이라 생각했겠지. 그리고 진짜 치열하게 고민했을거임. 혜진일 좋아하는 마음이 그 때 그 시절 못 이뤄진 첫사랑에 대한 미련 혹은 아쉬움에서 비롯된건지 아니면 지금의 혜진이를 정말로 다시 좋아하게 되어버린건지...그래서 혜진이한테 고백할때도 지피디가 직접 이부분을 얘기하더라고. 혹시나 혜진이가 자기 고백에 대해서 저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지피디는 오히려 그때보다마음이 더 깊어졌다고 해.  

그리고 고백 후...사실 고백도 고백이지만 혜진이가 홍반장이랑 마음 확인하고 지피디 만났을 때가 더 인상적이었음. 일하다가도 혜진이가 만나자고 하니까 바로 달려오는거 보고 탄식을 했다...정말 진심인거구나 싶어서. 심지어 만나자고 불러낸 혜진이보다 먼저 도착함. 먼저 도착해서 주문까지 해놓고 혜진이를 기다리는 동안 지피디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너무 슬퍼짐.

혜진이 카페에 들어왔을때 앉아서 하는 말중에

"지금 기분이 성적표 확인하기 전이랑 비슷해. 떨리기도 하고. 뭐..늦게 본다고 결과가 바뀌는건 아닌데. 펼쳐보기가 무섭기도 하고. "

라는 말을 한단말이야. 자기도 다 알고 있다는거임. 지피디는 이미 전부터 홍반장과 혜진이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다 읽은 상태임. 그러니 사실 혜진이가 하려는 말이 뭔지도 알고 있었겠지. 아마 이건 고백할때도 마찬가지였을듯. 하지만 짐작하고 혼자 미리 마음 다잡은거랑 별개로 혜진이 입에서 거절의 말을 듣는건 지피디한테는 또 다른 무게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피디는 혜진이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실없는 말도 해보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도 하다가 어떤 결과든 깨끗이 받아들인다고 함.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는걸 아주 잘 알고있다는듯이...

그리고 혜진이가 말하는거 가만히 듣고있다가 겨우 꺼낸 지피디 첫마디가 “다행이다.” 였잖아. 난 진짜 여기에서 숨이 막혔어. 이게 고백했는데 까이는 입장에서 나올 말은 절대 아닌데도...지피디는 자기가 까인 것보다 혜진이가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만큼 성장할 수 있게 된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임.

그리고 혜진이 본인조차 그때의 나는 초라했다고 말하는데 그걸 그 시절을 곁에 있어준 지피디가 하나도 초라하지 않았다고, 존재 자체로 빛이 났다고 말해줌. 있는 그대로의 윤혜진을 좋아했다고 말해주기까지 하지.

서른이 넘은 혜진이가 지금껏 그때의 자기를 초라하다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게된 지피디는 자기의 진심을 말하는 것으로 혜진이가 가지고 있던 그 생각을 깨부숴줌. 이제 혜진이는 그 시절을 떠올려도 마냥 초라하고 쓰라리게 느끼진 않을거야. 그렇게 지피디는 끝까지 혜진이를 생각하고 본인보다 더 위해준거임. 지피디는 자기가 차일걸 다 알면서도 자기 감정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혜진이와의 관계를 잘 매듭지을 수 있도록 행동한거라고 생각해.

그래놓고 뒤에서는 일이고 뭐고 손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애타는 마음을 남들한텐 티도 안 내고 혼자서 술 퍼마시고 병원까지 갔다가 끙끙 앓아눕지. 그래도 혜진이 만나면 괜찮은 척 밥 맛있는걸로 챙겨먹으라면서 웃어보이고...두식이가 질투하니까 미워하긴 커녕 들어주고 그게 얼마나 배부른 일인지 아냐면서 조언까지 해줌.

굳이 혜진이랑 두식이 빼놓고 생각해봐도 잘나가는 피디라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없고 공진 할머님들도 먹을것부터 시작해서 살뜰하게 챙김. 그냥 사람이 정말정말 좋은 사람이야 지성현은... 짧게 아파하다가 좋은 인연 만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