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문제가 주어졌고, 내가 이렇게 풀기로 결심한 거야' (2-1)


혜진이는 문제가 주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두식이는 혼자서 문제를 풀어 본다.

......



'홍반장'

'어!' ↗

'우리 그 날 밤에 말야,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

'어, 없었는데?' ↔

'진짜?'

'음' ↘


소년같이 웃고 있던 두식이의 얼굴에 미소가 옅어지고, 

대답 소리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나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볼께.' 

급한 일이 생겼더라도 우산없이 혼자서 가진 않을 터.


혜진이 대신 우산을 잡고 있는 두식이의 표정은 

슬픔 지수 99%다.


.....


집에 온 혜진이는 그 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불도 안 켜고 씻지도 않고 옷도 그대로다.

공진에 온 후 지금까지 혜진이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미쳤어. 윤혜진. 하..'

...


'아무리 술김이라지만 천하의 윤혜진이 먼저 키스를 했다구?'

찐친 미선이도 놀라서 물어본다.

'홍반장은 뭐래?'


'몰라. 분명 기억하는 거 같은데 모르는 척 하더라.'


혜진이는 남 일 얘기하듯 대답했는데,

미선이는 그것 때문에 기분이 다운된 거라고 놀린다.

아니라고 정색을 했지만, 이내 생각에 잠긴다. 

(진짜 그거 때문인가?..)


'니가 누구때문에 이렇게까지 동요한 게 오랫만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너 홍반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혜진이는 대답을 못하고 정신차리려는 듯 식탁을 치고 일어난다. 

그리곤 자신이 처신을 잘못한 거라며

절대 앞으로 홍반장이랑 엮어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벌써 뚝딱거리는 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혜진이는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다.

홍반장은 자기와는 쇼셜 포지션이 다른 사람이고,

자기는 공진을 떠날 사람이라서

애초에 생각해 본다는 것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홍반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대답은 커녕

정신을 더욱 못 차릴 수 밖에.


혜진이는 문제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문제가 주어졌다는 걸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집에 돌아온 두식이는 말끔히 씻고 옷도 갈아입고 

평소처럼 책을 읽는다. 

오늘은 시집이다.


읽다 보니, 제목이 '키스'다. 


/ 바로 그 사람일까요?


첫 키스는 진흙과 햇빛과 장미의 맛. 키스가 우연과 무중

력의 일임을 알았더라면 인생엣 모호함과 회의가 얕아졌

겠지요. ...............................................우리는 키

스가 남용되는 오늘의 사태를 우려합니다. 이 나라가 키스

의 젖과 꿀이 흐르는 민주주의의 땅이 되려면 키스 허가제

...... /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책을 덮는다. 

심란하다.. 

방 안을 서성이다 비가 그친 걸 알고 우산을 말리러 나가 본다.


'하아.......'

우산을 보니 더 심란해진다.


'하아..'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아무래도 친구로 지내야겠지..)


'쯛. 하..'

방으로 들어가는 두식이의 뒷모습은 확신이 없어 보인다.



두식이는 혼자서 답을 정한다.

같이 풀어야 하는데 혼자서 풀려니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