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놀자, 나랑" 

두식이가 혜진이 못 알아듣게 자기만의 언어로 한 비밀 고백인 것 같음 이 고백을 아는 세상 속 유일한 존재는 소나기 뿐

횟집에서 수학 네 문제 다 풀어낸 두식이가 일기예보에 없던 소나기라는 변수를 만나서 잠시 일탈한 것 같았어 우산이 있는데도 안 쓰고

갑자기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소나기의 성질에 기대어 비가 내릴 동안만 유효할 두식이의 은밀한 고백으로 들렸어 비가 그치면 함께 사라질 마음 속의 문장

혜진이는 그때 '불상사, 소셜 포지션' 이라는 단어들로 둘의 현상을 규정하면서 두식이에게 선 긋기가 한창이었고, 두식이도 해결되지 않은 자기만의 문제들이 있어 체념에 머무른 상태였기에 두식이는 이참에 곧 사라져버릴 소나기에 의지해 본 게 아닐까

소나기가 만들어 준 안전하고 덧없는 한뼘의 낙원에서 각자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문제들은 잠시 뒤로 제쳐두고 서로에게만 온전히 몰입한 순간같아 바람 오스트처럼 가난하게 사랑만 하는 거 그렇게 하니 좋은 게 좋은 거고 다른 거 없이 그게 전부인 아이들처럼

근데 가장 좋았던 건, 이 5화의 소나기가 두식이를 가엾게 여겨서 없었던 일이 되지 않도록 한 것 같다는 거

소나기는 그날의 두식이 마음을 잊지 않고 내내 머금고 있다가 필요한 타이밍인 10화에 등장해서 대지 위에 뿌려준 것 같았음 내가 기억하는 두식이의 사랑을 들려줄테니 혜진이 온몸 흠뻑 젖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