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십대

이십대

현재

(1) 운명론

갓하은은 인생 속에 숨겨진 은밀한 질서는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낭만적인 생각이라 하겠고 누군가는 비생산적인 상상력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나는 유신론적 불가지론을 마음에 품고 후자의 입장인 척 신의 존재를 애매하게 두고 있었기에 갯차의 운명 서사가 굉장히 반가웠어

구원이 필요한 시점마다 그들은 같은 시공간과 사건 속에 있었어 그들이 대상을 의식했기에 그 시간과 그 자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시공간이 그들을 한 지점으로 데려와 사건을 마주하게 만든거라고 봤어

작가가 살을 붙인 다양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거둬내어 보면 뼈대만 남겠지? 갯차의 뼈대가 바로 이 운명론이고 운명 서사를 배치함으로서 은유한 것 같아 '운명의 존재를 믿어요'

(2) 자유 의지

흔히들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고들 말하지 인연은 소중하다 역설하면서 말이야 갯차 세계관 속 식혜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식혜만이 쌍방구원 원앤온리가 될 수 있었던 건, 운명론적인 차원에서 다른 인물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체불가 고유성을 부여했기 때문인 것 같아 어떻게 부여된 일인지 추적하다 보니 '인간의 자유 의지'가 두드러져 보이더라고

'운명의 신은 그들을 한 지점으로 데려다 놨고, 인간의 자유의지로 서로를 구원한 것' 그 당시 한 존재에게 가장 필요했던 걸 줬던 게 바로 두식이었고 또 혜진이었지 그런데 아무리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그들을 데려다 놓는다 하더라도 정작 그들이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옷깃이 스친 수많은 인연중의 하나로 책장은 덮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들은 운명 서사 안에서 크고 작게 서로를 구원했어 운명으로 묶인 두식이와 혜진이의 자유 의지 즉 수동과 능동의 조합 이것이 식혜 운명 서사 속 보이는 일관된 패턴이었어

(3) 운명론과 자유의지 조합

운명이란 틀 안에 인간의 자유 의지가 그려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외로움과 슬픔에 대한 동질감, 위로, 공감, 웃음, 동정심, 음식, 생명, 따스함 등등 갖가지 감정과 가치들이 밀도 높게 담겨있어 한 존재가 고달픈 인생에서 좌절하기 직전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게 하는 것들이지

그 작은 구원으로 세상의 끝만 같은 한 때를 넘긴다면 오늘을 살아내고 그렇게 내일이 와 한 때를 넘어선 그 이상의 힘으로 남는거겠지 그렇게 유년시절, 청소년, 이십대를 거쳐 결국 운명의 신이 예정했던 시기에 그들은 공진에서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때 신의 개입을 넘어선 두 주인공의 여전한 자유 의지로 이전보다 더욱 촘촘한 서사를 그려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깊게 스며든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

'운명을 믿고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사랑은 신과 인간 사이 공동 작업의 산물이다'
이게 작가의 운명론이구나 싶네

(*) 요약 : 운명의 신이 그들을 한 곳에 거듭하여 데려왔고 (운명론/수동성) 그때 상대방이 가장 필요로 한 걸 주고 받았던 (자유의지/능동성) 식혜의 운명 서사에 가슴 벅차는 밤

굳이 운명 서사를 넣은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이런저런 의미부여를 하게 됐어 개인적으로 운명 서사에서 아쉬웠던 건 과거의 지나친 순간들을 식혜가 영원히 모르고 살길 바랬는데 확인해 버렸다는 것... 

운명의 신만이 아무도 모르게 미소 짓도록 이들의 과거 서사를 둘에게 영원한 비밀로 남겨두었더라면 좀 더 긴 여운으로 남았을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봤어 인간은 신의 작업을 결코 모르고 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