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덕으로서 가끔 하는 일 중 하나는 잘 된 드라마들 해외 반응 보러 돌아다니는 건데, 앞구르기 하며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던 건 우리 드라마 해외 반응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무척이나 열광적이었다는 거임

방영 내내 그리고 종영한지 한 달이 다 되가도록 넷플 순위권을 지키고 있는 수치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해외 시청자들의 정서에도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음

어느 시점에나 아시아권에서 인기 많은 한드는 꼭 있지만
그냥 그 시점에 잘 봤다 하고 지나가는 드라마가 있고 시청자들 마음 속에서 유독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드라마가 있을텐데
내가 긴 시간 여기저기 눈팅해보고 확신하는 점은 우리 드라마는 후자쪽이라는 거임
  
올해 최고의 드라마, 최고의 로코 같은 최상급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고 식혜 커플 케미에 대한 감탄은 만장일치고 시즌2 요청이 많고
드라마 끝나고도 오랫동안 앓는 사람이 많고
또 눈에 띄는 건 공진이라는 공간과 공진즈 자체에 외국인들도 깊은 친밀감과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는 거
드라마 보고 드라마 속 장소에 실제 가보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기 쉽지 않은데 포항에 대한 해외 관심이 높은 걸 보니 그것도 해냄

한 마디로 말해 우리 갯또들이 이 드라마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 주접을 해외팬들에게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는 거지
위 첫 짤 팬아트도 해외팬 인별에서 허락받고 가져온 거
(Cr:carissairene)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얼핏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우리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통한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어떤 외국인 댓글을 하나 봤어
Simplicity(단순함)와 Sophistication(세련됨)
이 두 마디로 정의 내렸던데, 난 여기에 이 드라마의 모든 미덕이 숨어있다고 생각함
  

우선 단순함 혹은 평범함
12화 미술관 씬에서 홍반장이 “거창한 것보다 심플하고 소박한 그림이 좋더라 평범한 걸로 본질을 꿰뚫기가 어렵거든” 라고 얘기하는데,
이건 갯차라는 드라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이기도 한 거 같아
  
사실 갯차는 다소 센 서사가 들어갔던 15화를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공진 사람들 홍반장 혜진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지
ㄷㅂㅈ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작가님조차 그런 소위 ‘슴슴한’ 이야기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던 것 같고
  
하지만 아이돌 준이가 극찬하는 감리 할머니의 손맛 깃든 집밥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거 하나 없는 소박하고 진실된 이야기 만으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게 오히려 이 드라마를 높이 사야 할 지점이라고 봐
  
부모 자식 관계, 가족, 삶과 죽음, 죄책감과 용서 같은 보편적인 소재가 공감을 일으키고, 이준이 보라부터 감리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마을 이웃들이 각자 단단하게 자기 스토리를 갖고 존재감을 드러낸 게 국적과 나이를 막론하고 시청층의 저변을 넓힌 거 같기도 함
댓글들 보다보면 드라마를 즐겁게 봤다고 하는 고령 시청자들의 코멘트들도 꽤 많이 보이고
해외 드덕들 리뷰 보면 “심플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층적인” 혹은 “‘삶에 대한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많은 않은 통찰이 있는” 드라마라는 평가도 많았어
  
또 한 가지 이 드라마의 미덕은 ‘세련됨’
아까 그 표현을 빌려왔지만 여기서는 서사를 풀어내는 정교하고 섬세한 방식을 통틀어서 얘기해보고자 함
  
웰메이드 로코를 만나기란 다른 장르에서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로코를 그닥 즐겨보진 않는데
그랬던 내가 제대로 갯차에 치여버린 건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클리셰라고 하면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섬세하게 끌고 간 역량 자체가 뛰어났다고 보기 때문임


연기 얘기부터 시작해보면 혜본 두본 대체불가 두 배우가 드라마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아주면서 각자 혜진이와 홍반장 캐릭터화를 잘 해낸 게 첫번째
이건 두 배우의 연기 연륜과 탁월한 연기합을 통해 구현된 부분인 거 같고
홍반장 혜진이 모두 사실 캐릭터 상의 핸디캡도 많은데 (사실상 무직 홍반장의 반말 설정 vs 혜진이의 극 초반 깍쟁이 설정)
이걸 전혀 거부감 없이 사랑스럽게 전달한 건 두 본체 특유의 선한 기운과 매력이 커버쳐준 부분이라고 봄
  
공진즈들(+지피디 등 베짱이 쪽 캐릭들) 얘기도 빼놓을 수 없지
드라마에 생명력을 더해줌과 동시에 갯차 특유의 차별화된 따뜻한 정서를 만들어내는 데 크게 일조함
연극배우 출신 배우분들이 많아서인지 연기가 생동감 넘치고 찰져서 매 장면 보는 재미도 있었어
혜진이 부모님 왔을 때 다같이 발연기하는 씬이나 갯마을 베짱이에 누가 출연할지를 놓고 한여름밤 평상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씬, 실제 갯마을 베짱이 촬영씬 같은 건 웬만한 코미디 프로보다 더 즐겁게 봤고
드라마 시리즈에도 베스트 앙상블상이 있다면 반드시 공진즈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함
  
또 경음악이 센스 있게 들어가서 재미가 배가되고 OST도 적절하고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잘 모르던 시절 제일 처음 시선을 잡아 끈 것이 개안되는 듯한 시원한 공진 풍경이었어서 공진의 판타지적 요소를 극대화시켜주는 영상미 또한 너무 좋았어
시골 배경임에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그리고 로맨스에 최적화된 깔끔한 연출도 이번에 처음 제대로 본 유블리님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게 해준 부분임
  
마지막으로 갓하은 작가님 찬양을 좀 해야겠는데
글빨도 로맨스를 전개시키는 페이스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다 좋았고
은근한 복선이나 데칼처럼 작가님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놓은 극적 장치들도 인상적이었어
  
예를 들어 공진 바닷가를 떠올리면 혜진이 두식이가 처음 만나던 순간의 서핑보드 만큼의 거리와, 중간에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서 서로의 마음이 엇갈릴 때 우산 속에서의 거리와, 마지막회에서 서로 프로포즈를 한 뒤 밀착되어 장난치는 모습이 차례로 눈 앞에 펼쳐지듯이
같은 장소에서도 두 주인공 감정 상태와 변화된 관계에 따라 상황이 변주되어 나타나는 포인트가 많았어
이런 보석 같은 장면들은 작감배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있어 가능했을테고

또 하나 예를 들자면 드라마의 처음과 끝
왜 하필 식혜커플이 웨딩 드레스와 예복 차림으로 함께 뛰어가는 모습으로 전체 회차를 마무리했을까 생각해봤는데, 1화를 다시 보니 이것도 1화 초반부랑 정확하게 조응되네
  
1화 맨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새벽녘 공진 언덕 위 배 풍경에서 시작해서 서울 도심으로 화면이 전환되고 그 후에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인물은 한강 다리 위에서 조깅하는 혜진인데,
2등을 용납하지 않는 혜진이는 다른 조깅하는 무리들을 앞서 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반면에 16화 마지막에서 혜진이와 두식이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보폭을 맞춰 함께 달리고,
늦은 오후 공진 언덕 위 배 풍경으로 드라마가 끝을 맺지

1화 때의 모습과 달리 혜진이에게는 더 이상 누구보다 앞서 달리는 건 중요하지 않고 그저 두식이와 함께 손잡고 달려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한데, 열여섯 회차를 거쳐오면서 혜진이 캐릭터가 겪게 된 변화가 잘 표현됐다고 봐
이건 1화에서 항해하는 배 위에 홀로 서서 첫 등장을 한 두식이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ㄷㅂㅈ을 읽다가 작가님이 공진의 속뜻을 “‘행복을 찾아 함께(共) 나아가(進)길 바란다”라고 풀이해주신 걸 보면서, 왜 드라마의 처음과 끝이 달리는 장면으로 설정됐는지가 다시 한 번 명확해졌어
드라마 마지막 장면 속 혜진이와 두식이의 함께 달리는 모습이 공진 그 자체이고,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는 셈

이런 식의 변주를 활용한 서사 구조가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드라마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으로 활용된 게 갯차의 뛰어난 점 중 하나라고 봐
  

이렇게 전반적인 만듦새가 좋았고,
특유의 밝고 따뜻한 기운이 장면 장면마다 인장처럼 새겨졌기에
드라마 끝난지가 한 달이 다 되가는데도 갯차를 못 잊고 지박령처럼 갤에서 서성이게 되는 거 같아
  
뜬금없이 이런 긴 글을 끄적이게 된 이유는 이 드라마의 좋았던 점을 한번쯤 정리해보고 잊지 못 할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준 제작진 배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어딘가에든 적어보고 싶었기 때문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갖고 있는 한
12화 백화점씬의 귀여운 여인 대사에서처럼 우리 드라마도 몇십년이 지나도 회자될 만한 클래식으로 오랫동안 기억되리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