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연이 있으니 이 사람이 잘못한 걸 봐주라는 그런 내용은 아니라고 봐. 통장님이 혜진이한테 한 말도 혜진이의 이해나 용서를 강요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공진 사람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느낌이었고, 남숙이의 도 넘은 언행에는 화가 나는 동시에 남숙이의 사연에 눈물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바라볼 때 꼭 한 가지 잣대로 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혜진이가 마냥 넘어간 건 아냐. 확실히 이건 불편하다, 다음에도 이러면 신고한다고 짚고 넘어갔으니까.

사실 혜진이도 공진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고, 이해를 받았어.홍반장한테서 댓가 없는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두식이 말마따나 인생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지. 자식의 죽음도 남숙이에게 평생을 넘을 수 없는 벽이고 슬픔을 제외한 감정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을 거야. 원래 성격도 있겠지만 남숙이는 지금 아픈 거야. 아파서 자꾸 제대로 주변을 못 보고 자꾸 못나지는 거야. 딸의 죽음이란 상실은 한 사람을 완전히 고장낼 수 밖에 없잖아.

난 감정에도 노블레스오블리주가 있다고 생각해. 소득 재분배를 하듯이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좀 더 이해해주고 그 사람에게 좀 더 베풀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물론 무조건 그래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발생하는 사건엔 운도 크게 작용하잖아. 그 사람 잘못이 아닌데도 감당 못 할 아픔이 쏟아지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걸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받기까지 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거 아닐까.

남숙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별개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 그둘이 결국 하나의 갈래로 합쳐져서 미운 정이라도 들어가는 관계. 불쌍하니까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죽을만큼 아파도 살아가는 하나의 인생, 이성과 감성 사이의 타협으로 생기는 하나의 관계를 보여주는 느낌이라 나는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