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PD는 취중에도 1주년 사진집을 사가지고 촬영장에 다다랐다. 촬영장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유치리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슈퍼와 뚝 떨어진 집 한 채을 빌려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 PD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한 정적(靜寂)- 태우가 몰카한 뒤의 이준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신영이의 써니찾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 소리는 지겨울 따름이요,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없으니 폐지가 임박한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 PD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PD가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언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 PD는 본진의 대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떨어진 패션장화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몸빼에서 나는 땀내와 거름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G7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 PD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晝夜長川) 촬영만 있으면 제일이야! PD가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촬영하는 eng막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오디오 물리는 소리로 변하였다. 효민이가 들었던 방망이를 내려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라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PD는 소리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강지영 같은 소리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병풍이란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병풍인가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카메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빅송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PD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소리의 뻣뻣한 얼굴에 어릉어릉 적시었다.
문득 김 PD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청춘불패 사진집의 표지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얼굴마담들을 데려다놓았는데 왜 시청률이 오르질 못하니, 왜 오르질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