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3일 첫 방송 이후 1년 2개월 간 많은 이로 하여금 금요일 밤을 설레며 기다리게 했던 KBS 예능프로그램 <청춘불패>는 2010년 12월 24일 쉰여덟 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마침내 종영되었다.

아이돌과 농촌이라는 자칫 어울리지 않는 소재로 1년 2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리고 <청춘불패>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지난 쉰여덟 번의 추억을 더듬으며 <청춘불패>가 남긴 의의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연재형식으로 올렸던 글을 모두 모은 것이다.

 


 

1. 청춘불패의 탄생배경

 

<무한도전>이 대성공을 거두며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부상한 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의 시대가 도래했다.

예능프로그램에 있어서 리얼리티의 중요성은 진작 인식되어 왔으나 그것이 주류로 자리 잡게 한 것은 무한도전 한 개의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무한도전> 역시 시작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집단 MC체제라는 유행에 편승하면서 출연진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웃음을 쥐어짜내게 하는 것에 그쳤던 무한도전은 2006년 슈퍼모델 편을 통해 환골탈태한다.

출연진의 인간적인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됨으로써 작가진이 작위적인 상황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기존의 굴레에서 탈피해 연출되지 않은 상황이 감동과 웃음으로 승화되는 일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예능프로그램에 있어서 리얼리티가 가장 효율적으로 접목된 사례였다.

기존의 경우 웃음을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상 완전한 리얼리티는 무리수가 될 여지가 있었고, 이것은 연출진으로 하여금 예능과 리얼리티 사이에서 해매는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출연진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열정을 가지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내보냄으로써 그 웃음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였다.

당시 무한도전은 ‘남들 보다 조금은 못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모토로 삼았는데 사실 국내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당시 출연진들은 결코 ‘남보다 못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토가 공감을 가지게 했던 것은 결정적으로 그들이 끝없이 고뇌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부각함으로써 가능했다.

 

스타들임에도 그들 역시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서 갖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는데 그런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공감은 곧 열광으로 바뀌었고 무한도전은 하나의 ‘아이돌’이 될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예능프로그램들은 무한도전의 이러한 연출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것은 굳이 작위적인 연출을 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출연진 스스로 웃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가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었다.

 

이런 개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MC로 하여금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역량을 요구받도록 했는데 그것은 리더십이다.

출연자가 전문화된 예능프로그램의 연출진에게 특정 상황을 지도받지 않고도 시청자에게 웃음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인 MC는 다른 출연자들로 하여금 예능요소를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했고 이것은 원맨쇼 기량에 능했던 이경규, 신동엽, 김용만 등의 기존 강자들이 유재석과 강호동에게 밀려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 보다 다른 이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현재 국민 예능프로그램으로 우뚝 선 <1박2일>은 <무한도전>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무한도전> 보다는 덜 세련되었지만 더 친숙한 콘셉트로 남녀노소에게 거부감 없는 웃음을 주는 것이 특징인 <1박2일>의 성공은 시사 하는바가 크다.

<무한도전>이 아이돌화 되면서 한때 예능프로그램계에 있어서 하나의 진보적 가치로 통했던 <무한도전>의 콘셉트가 대중으로 하여금 무(無)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겨났다.

무비판이 특징인 문화는 폐쇄성을 가지기 마련인데 <무한도전>은 이것에서 탈피하기 위해 끝없이 자기개발을 해갔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부 열광적인 팬들은 외부의 비판 뿐 아니라 <무한도전>의 자기비판마저도 쉽게 용납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1박2일>은 <무한도전>이 가진 이런 한계를 수용함으로써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으나 착실하게 보다 대중적인 예능프로그램을 지향하였고 이것은 넓은 연령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하였다.

<무한도전>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으나 기존 예능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가치도 지켜나가면서 <1박2일>은 장기간 대중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성공은 수많은 예능프로그램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

후발주자들은 그들의 성공요소를 그대로 따르되 단순한 아류작에 머물지 않도록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것을 고민하였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청춘불패>도 탄생하게 되었다.


 

 

2. 영리한 예능, 착한 예능

 

<청춘불패>는 영리한 예능처럼 보인다.

한창 광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걸그룹을 전면에 내세워 못해도 본전은 취할 것이란 평가를 얻었다.

해당 걸그룹의 팬들이 고정 시청자가 될 것이란 의견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평가는 꼭 믿을 것은 못 된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국민 걸그룹 소녀시대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을 몇 개 방영했으나 시청률은 모두 고전을 면치 못 했다.

<청춘불패>는 여러 개의 걸그룹이 동시에 등장하는 변수가 있긴 했으나 단지 아이돌 스타의 입지에 기대어 흥행을 노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아이돌 스타들은 증명된 예능인이 아니기에 초반에는 잠깐 화제를 모을지 모르나 재미 자체가 떨어지면 갈수록 프로그램의 힘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청춘불패>는 심야시간에 배치되어 걸그룹의 팬층 대다수를 차지하는 10대들의 시청이 용이하지 못 하다.

 

<청춘불패>의 경쟁력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청춘불패>는 아이돌 스타만으로 이끌어가는 형식만 색다르지 사실 검증된 예능프로그램들의 콘텐츠를 짜집기 한 것에 불과하다.

<1박2일>에서 빌려온 자급자족 자생(自生)방식과 <패밀리가 떴다>의 농촌체험, <무한도전>이 선보인 장기프로젝트 방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청춘불패가 선배 예능프로그램들과 차별화 된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정착(定着)\'이다.

 

<1박2일>은 여행 중 잠깐 스쳐지나간 인연들도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인연으로 곧잘 포장하곤 하였는데 이것은 시청자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적인 인연이 아니기에 감동의 지속성 또한 순간에 머문다.

<패밀리가 떴다>는 언뜻 집을 빌려준 노부부를 포함해 그 마을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 처럼 보이나 이것 또한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단발적인 이벤트성 감동에 그치고 만다.

반면 <청춘불패>는 \'홍천군 남면 유치리\'라는 특정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지속적인 공감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것은 예능프로그램의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부각되는 \'공익성\'을 보완한다.

 

원래 예능프로그램의 절대적 가치는 \'재미\'이다.

이 유일한 가치는 지상파 방송의 경우 보편적인 도덕성이 요구되기에 일부 침해를 받기도 한다.

음담패설이나 욕설 등 과도한 비윤리적 행위는 지상파에서 표현될 수 없다.

이런 제한적인 최소한의 윤리만 지켜지면 예능프로그램은 모든 가치를 \'재미\' 하나에 둘 수 있다.

 

그런데 <이경규가 간다>나 <러브 하우스> 등은 오히려 공익성을 극대화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재미\' 뿐 아니라 예능의 새로운 조건으로 \'감동\'을 장착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한껏 높인 것이다.

예능프로그램에 있어서 공익성이 하나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 공식은 하나의 소재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소재를 매번 내놓는 프로그램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1박2일>의 원래 취지인 국내 아름다운 명소소개나 <무한도전>의 여자복싱, 봅슬레이, 여자핸드볼 편처럼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소재를 널리 알리고 흥미를 복돋아 준 것 등이 이에 속한다.

물론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출연진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노력, <1박2일>이 가지는 출연진 간의 진실된 단합과 같은 무형의 공익성도 마찬가지다.

 

<청춘불패>는 아이돌 스타들의 농촌활동으로 보다 농촌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그것이 한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이루어져 지역민과의 공감 가능한 교감을 불러일으키게 함으로써 공익성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이 공익성은 다른 문제점을 다소 가릴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청춘불패>가 편집을 꼼꼼히 하지 못해 방송에 그대로 나간 일부 성적 농담이나 출연자의 부적절한 행동, 또 자칫 민망할 수 있는 과도한 노출이 큰 논란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이 그것이다.

시청자들이 공익성에 집중하여 다른 논란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경우다.

 

또한 애초에 기본 기획이 공익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이기에 전문 예능인에 비해 예능감이 부족한 아이돌 스타들이 웃음을 다소 적게 생산해내도 시청자들로부터 일부 용납하게 한다.

물론 예능프로그램의 최대 가치는 웃음을 주는 것이기에 이것이 완전한 변명거리는 되지 못 하지만 일부 사안은 어느 정도 수긍 가능하다는 말이다.

 


 

3. 리액션, 그리고 소통

 

그간 많은 예능프로그램들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 왔다.

그러나 일부 ‘기획된 감동’의 경우 오히려 감동의 폭을 좁게 만들기도 했다.

<청춘불패>는 감동을 인위적인 연출로 표현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밝고 발랄한 느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불패의 감동이 가식 없이 진실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예능인들은 일종의 연기자다.

연출진이 제시한 상황에 맞춰 울고 웃어야하며 분노하거나 즐거워해야한다.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해야 하며 감정의 표현에 솔직해야한다.

이것은 ‘리액션(Reaction)’이라고 명명된다.

극단적인 반응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감정에 있어서 시청자와 출연진 간의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그러나 종종 리액션은 ‘오버(Over)’가 되기도 한다.

과장된 반응이나 몸짓은 시청자로 하여금 그것이 의도된 연출임을 눈치 채게 하고, 이것은 오히려 공감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능숙하게 리액션을 하지 못하면 아예 리액션을 배제한 채 담백하게 행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박2일>에서 보여준 김C의 캐릭터처럼.

오히려 그편이 진실하게 보인다.

   

<청춘불패>의 출연자들 대부분은 전문 예능인이 아니기에 리액션에 능숙한 편은 아니다.

<청춘불패>가 스스로 ‘半리얼’이라고 밝힌 것만 봐도 출연자들의 행동이 리얼리티 순도 100%의 그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위적인 연출이 일부 포함되어 있음이 표시가 난다.

그러나 <청춘불패>는 방영내내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지적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이것은 연출은 가공되었지만 감동은 가공되지 않은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청춘불패>의 방송분량 중 상당부분은 유치리 주민들이 채운다.

그들은 방송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자연스럽다.

그것은 그들이 하는 것은 ‘방송’이 아니라 <청춘불패> 출연진과 하는 ‘소통’이기 때문이다.

방송은 출연진과 주민들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에서 그친다.

출연진은 주민들의 생활공간 안에 직접 들어가며, 그렇기에 주민들은 가공되지 않은 소통을 출연진과 하게 된다.

 

김순이 할머니와 나르샤가 보여주는 교감, 이왕구 씨와 로드리(이기욱)가 노촌장(노주현)을 비롯한 <청춘불패> 출연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 등은 인위적인 연출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통이기에 방송이 가지는 특유의 작위적인 설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성질로 기존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었다.

 

개인의 소통에 있어서는 방송 특유의 연기가 필요 없다.

그렇기에 이때 생기는 리액션은 방송 용어 리액션이 아니라 진짜 리액션(반응)이 되는 것이다.

출연진 간의 잦은 포옹이나 눈물이 가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소통에서 기반한다.

영리한 설정으로 보였던 <청춘불패>의 기획은 진실성으로 승화한다.

 

방송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4. 농촌활동으로써의 가치

 

‘농활’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혹자들은 농활을 ‘농촌체험활동’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사실 농활은 ‘농촌활동’ 또는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줄임말이다.

한때 농촌을 근대화 한다는 의미에서 ‘농촌계몽운동’으로 불렸으나 이 말이 계층차별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농민학생연대활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농활은 학생운동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며 대학생들이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업이나 일부 언론은 농활을 ‘농촌봉사활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농활의 의미는 단순히 농번기에 부족한 일손을 돕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농활은 우리 농촌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피고, 농민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며, 또 이것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궁극적으로 현시대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다방면에서 타개하기 위해 연대를 하는 자리다.

그래서 농활은 ‘함께’라는 모토가 아주 중요하다.

농민과의 교감 없이 일손만 돕는 ‘끼리’문화가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의견을 나누며 고민하는 ‘함께’문화가 진정한 농활을 만든다.

 

<청춘불패>는 기본적으로 이 ‘함께’문화를 지향한다.

유치리 주민들의 농사일을 거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밭을 일구고 논을 매며 농민의 일원이 된다.

스스로 돈을 대출해 농작물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자신의 일’로 인지하기에 이른다.

그로인해 출연진들은 매순간 농사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며. 이것은 자신이 거둔 결실이 가치를 가지게 되기까지 어떤 노력에 기반을 두는지 깨닫게 되는 작업이 된다.

유치리 주민들과의 교감이 단지 친목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동료애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예능프로그램들이 그간의 농촌소재를 ‘농촌체험’에 대한 활용으로 그친 것과 차별화 된다.

<청춘불패>에 있어서 농사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일다.

 

<청춘불패> G7 멤버 구하라는 농기계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시험도 치르게 되는데, 결국 성과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나 의의 자체만으로도 이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농기계 면허취득 시도는 지속 가능한 농촌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물론 <청춘불패> 출연진들이 직업의 하나로 농사일을 삼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농사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농민에 대한 진정한 교감을 이루어낸다.

 

농활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좀 더 밝게 바꾸고자 하는 목적은 가지고 있지만 농촌활동이 당장 농촌 자체에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일손을 조금 거들었다고 해서 농촌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농촌은 그대로다.

그러나 농활에 임하는 이들은 변한다.

농민의 삶과 고민이 자신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절박함을 깨닫는 일은 개인의 성숙을 이끌어낸다.

<청춘불패> 또한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진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 자체도 능숙해지지만 농작물이나 가축에 대한 반응도 점점 변한다.

돈을 지불하고 쉽게 사먹던 농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그 속에 농민들의 고뇌가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이해하면서 성숙해가는 것이다.

어쩌면 <청춘불패>가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이 ‘성장’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농활은 도시와 농촌 사이를 잇는 하나의 연결고리다.

<청춘불패> 또한 농촌에 무지했던 아이돌 스타들과 농촌을 잇는 가교역할을 함으로써 그들이 농촌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애정을 가지도록 한다.

이때 가지는 ‘이해’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평소 해보지 못 했던 일을 체험함으로써 인생의 경험을 하나 쌓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을 제대로 깨닫고 이해하여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시청자들 또한 <청춘불패>를 통하여 우리 농촌에 대해 조금이라도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는 간접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청춘불패>의 원래 기획에서 필연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공익성’을 보완하며, 결국 <청춘불패>가 농활로써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