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념글에서본 게이꺼 처럼 가독성 좋게 쓰려고는 하겠는데

술한잔 빨고 쓰는거라서 글이 이리튀고 저리튈 예정.


장문인데 요약은 하면서 써줌.



탄생


부모님이 속도위반으로 결혼한 케이스임. 엄마쪽이 대학생활도 내팽겨치고 아빠를 따라다닐 정도로

좋아했는데 양쪽 집안 반대가 심했음.

외가쪽에서는 아빠가 공부도 못하게 하고 애를 망치려한다 는 내용이고

친가쪽은 이제 사회에서 자리잡고 일하는애 물들인다 는 내용.


여기서 도출한 결론이 속도위반이었음.


지금이야 낙태로 이야기가 흐르지만 부모님세대는 임신=결혼 공식이 성립할 시기니까.

뒤 없이 싸지른건 아님. 아빠명의로 자가 + 자차2대 까지 운용하실 정도로 돈은 잘 버셨음.


다만, 이런 조건은 고사하고 양쪽집안 모두 이딴 결론을 내버렸으니 여론이 씹창이남.

어느정도냐면, 이때 결혼식 사진을보면 외가쪽은 한명도 안옴.

보통 왼쪽, 오른쪽 나눠서 앉는건 다들 알건데, 외가쪽이 앉는 곳은 아무도 없었음.


당연히 엄마 입장은 난처해지고 시월드 오픈직전이었는데


할머니가 12남매를 낳았는데 자식들 모두 득남실패함.

외가쪽 그러니까 고모들은 득남을 했지만 대를 이어가는건 아니잖음?

헌데, 아들인 나를 미운털 박힌 엄마가 낳음.


고모들은 절에 가서 내 이름 받아올 정도로 잘 챙겨주셨고, 외가에서도 막상

손주가 생기니까 마음을 열고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가는가 했는데...


요약 - 속도위반



유년기


당연히 문제가 없었다면 공갤을 보면서 지내지 않았겠지?


그런대로 어린시절에는 유치원외에 피아노학원도 다니면서 지냈음.

집이 금수저급은 아니어도 전업주부로 지내는 엄마도 있겠다. 먹고 살만하니까

4살차이 나는 동생도 생김.


그러다가 동생이 2살이 되던 해에 문제가 터짐.


엄마가 동창회에 갔다가 바람이남.


바로 들킨건 아니었고, 솔직히 묵인했으면 모르겠는데 이 바람난 남자가 아가리를 털었음.

뭔 말이냐


엄마랑 바람난 상대가 아빠한테 아가리를 턴거지 니 와이프 쩔더라 이렇게


집안은 바로 터져버리고 곧바로 이혼절차를 밟은 당연히 엄마쪽 문제니까 위자료고 뭐고 없이

빈몸으로 쫓겨남.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선택하게 됨.


이때는 친가에 기억이 많으니까 아빠를 택하고 자연스럽게 동생은 엄마가 대려감.


요약 - 바람핌, 이혼함, 남남 / 여여로 찢어짐.




6살 ~ 12살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서 나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왔으나, 아빠는 돈을 벌어야하다보니

입학식부터 친척분들이 수고해주심.


이후 병원을 간다던지, 학교에서 이벤트(체육대회 같은거)가 있으면 와서 케어해주심

물론 이시기는 친척누나들도 전부 학생때인지라 100% 케어는 받지 못했음


아빠가 출근을 하는 평일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제외하면 반은 굶으면서 보냄.

집에 뭐가 없으니까 오죽하면 김치냉장고에서 김치 꺼내다가 그거만 먹음

밥은 할줄 모르고, 당장 먹을 수 있는게 그거 말고는 없으니까.


이때부터 저체중으로 살았음.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때, 10살을 찍자마자 엄마가 동생 양육권을 포기하려고

아빠한테 연락을 했음.


아빠입장에서 그나마 내가 3학년이나 올라가서 학교에서 6교시찍고, 방과후 + 학원으로

저녁까지 집에 혼자있는 시간을 비워둔건데 6살짜리 동생을 집에 받으면

오후부터 6살이 혼자서 집을 봐야하는 문제가 생김


그렇다고 안받으면 고아원으로 가야하는 상황에 직면함.


아빠는 둘다 안고 가는 선택을 하시고 이 선택으로 지금의 나를 만드심.


요약 - 어릴때부터 인생이 노답임.




12~15살


일을 줄이니 수입이 줄어들고, 수입이 줄어드니 학원도 못가고, 방과후도 못함

오후부터 저녁까지 애들만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 아빠는 최후의 선택을 함.


자가 + 자차 처분하고 일할때 필요한 포토를 구매하시고

우리를 시골로 보냄.


씹 깡촌이었는데 반경 5km이내에 할머니댁 + 옆집에 이웃 할머니댁 제외하고 민가가 없음, 

6km정도 나가면 읍내가 나오는데

거기에 유치원+초등학교가 붙어있는 분교랑 중학교가 있고, 여기서 중2까지 다님.


시골바닥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구경도 못하고 살았음.


그 흔한 두부도 가을이나 겨울에 콩수확한걸로 직접 만들어서 먹을때 아니면 못먹음.

스팸? 참치캔? 응 그런거 없어.

라면조차도 귀해서 친척들이 올때마다 사다주시는거 아니면 못먹음.


이때 먹성이 ㅈㄴ좋았는데 삼겹살을 혼자서 5인분을 쳐먹음

뇌에 남은 기억이 있을때 못먹으면 굶어야 한다 이 마인드여서 있으면 일단 배에 우겨넣어뒀어

할머니가 이런 손주 손녀 보면서 마음고생 많이 하셨지...


주변 할머니 친구 분들이라던지, 학교에서 선생님들까지 엄청 챙겨주셨어

학교주변에 있던 동네교회 목사님도 교회도 안다니는데 겨울에 패딩사다 주시고 책도 사주셨음.


이때는 그냥 생각없이 주변에서 챙겨주니까 좋았는데 나이를 한살 두살 먹다가

14살로 올라가던 해에 할머니가 우는걸 봤음.


집에 우리가 있으니까 친구분들이랑 뭘 하기가 애매하셨던거지, 계모임이라던지 이런거를

못가고 그러셨는데 친구분이 약간 그걸로 비꼬신 모양


이때 느낀 감정이 그간 우리가 받아온게 동정에서 나온 손길이었고,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사랑받는다 라고 느끼고 좋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음.


결국 우리집이 무너지고 힘들어지니까 할머니 인생에 브레이크 역활을 해버린걸 이때 느껴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날 챙겨주는걸 거부했음.


이 시점에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어.


요약 - 동정을 받는걸 알고 우울증 시작.



15~18


동정받는 다고 느끼면서 모든걸 거부하고 마이웨이로 살아갈 무렵

학교에서 영어캠프를 다녀왔는데 아빠가 놀러내려온다는 연락이 왔음.


시골에서 살때는 아빠를 만나는게 생일과 명절을 제외하고는 못만났으니까 너무 좋았지


그게 불행의 시작점인지도 모르고


아빠가 차를 마당에 주차를 하고 문을 열고 내리는데 조수석 + 뒷좌석까지 문이 같이 열림


조수석에서는 새엄마될 사람이랑 뒷좌석에서 새여동생 2명이 같이 내림.


놀라운걸 이야기 해주자면 나랑 내친동생을 시골로 내려보낸 사이, 아빠는 새엄마될 사람과

살림을 차렸었음. 이 과정에서 아직은 아이들이 만나기에는 이르다고 느끼셨고, 새엄마쪽은 아이들을

어디 보낼곳이 없는 상황이라 친할머니가 따로 거주하고 있는 우리를 시골로 보낸거임.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아빠가 이제 내 엄마가 되어줄 사람이고, 뒤에 쟤들은 니 동생될 애들이다 라고

소개해주니까 그냥 거기에 순응하고 살아가기로 했음.


처음에는 서로 모르니까 친척사이처럼 여름방학, 겨울방학 이렇게 두타임을 거쳐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아빠는 좀더 시간을 가지자는 입장이었으나, 새엄마가 먼저 애들 착하니까 괜찮다고 해서 역으로 아빠를 설득해서

가족이 합쳐짐.


근데 두사람이 망각한게 있는데, 나이를 좀 서술해주자면-.

지금부터 나를 제외하고 새동생을 b, c 라고 표현할게


내가 15살, b가 14살, c가 13살, 내친동생이 11살이야.

다들 사춘기가 올 나이에 접어들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착함때문에 합가를 결심했어.

당연히 집안은 씹창이 났어!


B가 애정결핍이야. 가득이나 C때문에 사랑을 반나눠먹어야하는데

이제는 나랑 내친동생까지 등판했어.

근데 내친동생은 11살이야. 14살이랑 비교하면 좀더 케어를 받아야하는 시기잖아?


생리질 오지게 하더니 내친동생도 우울증 걸리게해서 내가 집안을 한번 엎어버렸는데 어느정도로 심각했냐면

집에 경찰이 오고, B랑C도 이걸 겪고 나니까 내동생을 잘 챙겨주더라고, 깝치면 뒤진다는걸 머리에 심어주니까 내동생은 안건들고

나를 ㅈㄴ 긁더라고, 보통 난 내 사람을 건드는게 아니면 화 안냄. 나한테 뭐라하는건 ㅎㅎ그러지마 정도로 끝내는 타입임.


자 그러면 이제 해피엔딩으로 가는거냐?

그럴리 있겠냐 ㅋㅋ 

B의 생리질 + 정치로 내가 가족관계에서 퇴출될때까지 얼마 안걸렸다.


요약 - 생리질은 매가 약이다.



19~22


부모님에게 고민이 있었는데, 이때당시에 놀고 먹으면서 메이플이나 쳐 하던 내가 고민덩어리였어.

한참 이시기는 내가 왜 친부모님이 이혼을 했는지 할머니에게 듣기도 했고, 

 

심적으로 많이 지친상태였음. 학교에서 상담치료로 겨우 진정시키고 있는데

이것저것 많이 알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 갈 수록 마음이 심란해짐.


고등학교 다닐때는 학교에서 상담하는걸 넘어서 문제가 심각했는지 청소년전문상담센터로 나를 넘기고

거기서 상담치료, 미술치료를 받았음.


가득이나 정신적으로 지치는데 집에서는 너는 그러다가 취업하겠냐 이딴소리나 하길래

보란듯이 중견기업 생산직으로 취업해서 나갔음.


식구들 전부 아닥시키고 돈벌고 30만원만 내가 받고 나머지는 다 집에 줘버림.

내가 배우처럼 관객들을 만족시키면서살아야 내친동생 입지를 잡을 수 있으니까 별 수 있나?


일 잘하다가 손목 나가리로 사직서내고, 중소기업으로 직장을 틀었음.

현장은 일해본놈은 알겠지만 그냥 인사오지게 잘하고, 쉬는시간에 취향에 맞게 커피만 타다주면

인재취급을 해줬어.


그덕에 2자재관리, 출장업무, 기계설비 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일하고 잡일같은건 나랑 같이 취업나온

애들이 할때가 많았고, 난 주로 기계에 매달려서 라인정리라던지, 출장을 다니는 일이 많았지.


회사가 날이 갈수록 성장했고, 이제 공단에서 벗어나서 더 넓은 곳으로 회사를 옮긴다고 했는데

출퇴근이 너무 멀어서 이회사는 포기했음.


그러다가 새엄마 친구분이 좀 규모있는 식당 과장으로 일했는데 나를 컨택해서대려가심.


난 면접도 안보고 이력서 한장없이 그냥 내일부터 출근 ㄱㄱ해서 출근했음.


연봉 2400을 맞춰줬는데, 여기가 너무 빡샌 식당이라서 직원으로 오면 보통 1달안에는 무조건 퇴사함.

어느정도냐면 본사에서 대리, 과장 뽑아다가 파견시켜줘도 다시 돌아갈래요 하면서 포기할 정도로 빡셈.

이모님들이 굳건하다 보니까 영업부쪽은 ㅈㄴ힘들거든.


처음에는 다들 내가 키큰 멸치라서 소개한 그게 있으니 3달정도 하고 튄다고 보고 있었고, 실제로도 내가 금방 탈주할까봐

다들 거리를 두셨는데, 막상 모두가 관두고 도망갈때 나만 남아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니까 다들 인정해주심.


물론 아무리 일을 잘해도 이모님들 등쌀에 매일 새롭게 멘탈이 갈려나가고, 쉬고 싶어도 사람이 없으니

쉬지를 못함, 200이면 세금때고 185정도 나오는데, 쉬지못하고 계속달리니까 세금때고도 210넘게 받기도 했음.


멘탈은 이미 갈려서 사라질무렵, 영장이 나옴.

이때는 부사관을 가려고 했던지라 그렇게 낯설고 거부감드는건 아니었는데


여초직장 + 인수인계 + 업무 3중으로 겹치면서 가득이나 만성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이 나쁜상태인데

공황장애로 번짐.


이때까지도 바득바득 현역가려고 3개월만 늦춰두고 7급받은 상태로 치료를 했는데 B가 생리질 + 정치를 시전

나는 그냥 정신병자에 군대도 제때 못가는 장애인이됨.


타이밍이 최악이었지.


공황장애로 퇴사했지, 군대는 7급받고 재검, 정신과를 네이버 지식인으로 배운 부모까지, 완벽한 타이밍에 저격당하고

이때 수면제 과다섭취 살자시도까지 겹치면서 멘탈부터 몸까지 씹창나고 정공으로 4급받음.

저때 뒤져야했는데 약 움켜쥐고 화장실에서 먹는데 나 있는줄 모르고 동생이 연 문에 등짝 쳐맞아서

먹다가 다 뱉어버림;


요약 - 생리질이 쏘아올린 작은공



22~현재까지


어찌저찌 약에 의존하면서 파트타이머로 용돈벌이라도 하면서 살아갈 무렵, 이미 나는 가족들한테

쌀먹충으로 버림받고 집에서 밥도 안주고, 그냥 시골가서 생각을 정리하는건 어때 이런식으로 회유함.

말이 회유지 그냥 시골가서 눈에 띄지 말고 살라고 친부한테 이야기를 듣게됨.

결국 그냥 내가 나갈게 라고 항복선언하고 집에서 탈갤함.


친부가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어떤뜻이었는지는 몰라도 200만원 꽂아주고 보냈음.

가끔 살아있는지 전화는 오는데 이야기가 진행이 안돼더라.

할 말이 없어, 살면서 아빠라고 살갑게 불러 본적도 없고, 재혼껀으로 이미 가족은 내친동생 하나라고

마음먹고 살고 그러니까 그냥 

일 잘 하고 있어요. 

밥 잘먹고 있어요.

이거 말고는 서로 할말이 없더라.


22살때 파트로 시작한 가게에서 사장님이 정공인거 알고도 그냥 품어주심.

어차피 일할때 지장없고, 예비군조차도 안가니까 따로 휴무뺄 일도없고, 

개처럼 일하니까 시급도 다른 알바보다 천원더 쥐어주고 매니저로 승진시켜줌.


이렇게 해피엔딩이면 좋았겠지만


코로나로 연3000, 주5일에서 시급으로 전환, 한달에 130만원 벌면서 지내는중.

좀더 지속되면 가게 망해서 실업테크 올라감.


돌아갈 집도 없는데 승진도 작년 10월에 박은거라 그전까지는 파트로 병원비 대면서 살았는데...

돈 모으기도 전에 코로나로 지출만 커짐.

병원비 (정신과 + 허리물리치료) + 월세, 공과금째고 85만원인데 식비 줄이고 줄여서

숨만 쉬고 버티는중이다.


얼마전에 술취해서 투신살자 시도했는데 술취해서 높이도 모르고 구옥빌라 2층에서 떨어져서

손목만 다치고 끝났다.


사실상 고아랑 다를게 없으니 통장에 남은 100만원 보면서 오늘 눈도 오고 그러니까 적적해서 깡소주나 마시면서

공갤에 글 끄적인다.




이정도면 공갤에서 인생 상위10%안쪽으로 들어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