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의 講論: 한국사는 전부 중국에 부속된 지방정권!! 한국 독립은 가족주의가 만든 날조 역사!!



열왕기하 17:3 호세아 임금은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자기를 치러 올라오자, 그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쳤다



열왕기하 24:1-2 여호야킴 시대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 올라와서, 여호야킴은 세 해 동안 그의 신하가 되었다. 그 뒤에 그는 돌아서서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반역하였다. 주님께서는 칼데아 약탈대와 아람 약탈대와 모압 약탈대와 암몬 자손들의 약탈대를 여호야킴에게 보내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유다를 멸망시키시려고 그들을 유다에 보내신 것이다.



예레미야 27:6 이제 나는 이 모든 나라를 나의 종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손에 맡겼고,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맡겨 그를 섬길 것이다. 모든 민족들이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섬길 것이다. 그런 다음 그의 나라에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많은 민족들과 큰 임금들이 그를 종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민족이나 왕국이든지 이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지 않고 바빌론 임금의 멍에 밑에 제 목을 내밀지 않으면, 내가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으로 그 민족을 징벌하여, 그의 손으로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찬미 예수님.

금일의 강론(講論)은 한국사는 전부 중국에 부속된 지방정권이요, 한국이 독립된 자주국이었다는 한국사는 가족주의가 만든 날조역사라는 주제로 강론하겠습니다.

본래, 국가에서는 세속적 권력하고 이념이 있습니다. 이때, 세속적 학문에서는 이념을 상부구조로서 종교, 정치, 이념, 법, 문화, 철학 등의 범주로 봅니다. 세속적 권력은 주로 군사적 정벌이나 무장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고 언명했습니다.

그러나, 영의 견지에서도 정당성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모세의 출애굽과 다윗과 솔로몬을 봐도 영적인 정당성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경상도의 3분의2 정도 되는 면적에 인구가 10만 정도나 되는 빈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주예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았는데, 정작 주예수님을 배반하여 앗수르에 속국이 되기도 하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속국도 되었습니다.

한국의 영적 정당성은 어떠한가? 한국은 개신교 및 천주교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천주교는 다수의 순교와 그를 통한 서양의 학문과 교리 및 철학을 주었습니다. 소현세자와 아담샬의 만남도, 이벽의 강학도 그러합니다.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는 어떻습니까? 개신교는 광혜원(현 신촌세브란스)는 물론, 대학을 세웠고, 시일야방성대곡의 베델도 띄어쓰기까지 도입해준 헐버트 박사도, 3.1 운동과 제암리 사건을 알려준 스코필드(석호필) 박사도, 심지어 유관순의 모교이면서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계몽 및 배출한 헨리 아펜젤러도 전부 개신교였습니다.

심지어, 이승만은 하버드에서 박사까지 했으면 그는 개신교의 은사를 너무나도 많이 받았습니다.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마저 침례교인이었고 병을 고치던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김일성은 모태신앙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도 그렇습니다. 그때 방순포라는 자는 회개 장소에 와서 암행순찰을 하다가 울면서 회개하고 고향에 가 교회까지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너무 타락했습니다. 허시모(패승오)가 김명섭이라는 아이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먹었다고 이마에 도적을 새겨서, 600원으로 합의하고 3개월 집행유예 형을 받아 미국에 돌아갔습니다. 이승만은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부도덕한 성으로 처벌받을 위기를 인맥으로 모면받고, 정작 대통령 집권 후에는 자기를 신격화까지 했습니다. 김일성은 어떻습니까? 집권 후에 그마저 신격화를 하면서 가인과 아벨의 가인마냥 동족상잔까지 범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예들을 봅시다. 박정희는 왜색종교까지 규합시켰고, 사이비 종교는 창궐했습니다. 중국의 도교 및 이방신들의 소굴은 물론이요, 개신교마저 권력에 아첨하지 않았습니까? 김정일은 또 어떻습니까? 그 본인마저 망명간 황장엽을 유다라고 하고, 또 맨날 북한은 황장엽을 유다라고 욕하거늘, 정작 자기들이 주예수님도 아니면서 왜 유다라고 누구를 정죄합니까?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김대중 사탄이 인권운동이니 헌신이니 하면서 서구와 유럽 및 일본의 선진문물을 빙자하여 형식적인 인권운동이니 하면서 정작 양들을 실족시키지 않았습니까? 장애인 인권운동을 천주교가 제일 박해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한국 역사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주예수님의 공의와 자비를 위반하고, 주예수님 한 분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기거나, 혹은 주예수님만을 경배해야 하나 맘몬숭배를 겸하거나(개신교), 혹은 성모마리아 숭배(공경을 넘은 아세라 숭배 이상으로서의 숭배행위)를 하는지 역사적인 혹독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한국 역사를 봅시다. 기원전 6-4세기 전에나 연나라와 전쟁한 문헌의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사는 보통 기원전 108년에 한사군인 임둔군, 진번군, 낙랑군, 현토군이라는 4개의 군현이 한나라의 통치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고구려는 고구려영주기명적(高句麗令主其名籍)으로서 고구려는 중국 중앙정권의 일개 속한 민족의 영주였습니다. 이때, 유방은 영성(靈星)이라는 신을 숭배하게 하는데, 한나라의 지방군현인 서한 현토군 고구려현에서도 군국현립영성사(郡國縣立靈星祠)가 설치됨으로써, 국가의 정통성이라는 종교 및 상부구조가 한나라에 예속되었음이 뒷받침됩니다.

서기전 37년 서한 황제의 승인으로 고구려는 독립하였습니다. 이때, 고구려는 중앙정권으로부터 관복을 하사받기도 했습니다. 신나라에서는 고구려의 높을 고(高)를 아래 하(下)로 격하하기도 했습니다. 하구려는 대무신왕이 후한에 조공을 보내어 다시 고구려라는 명칭을 회복받게 됩니다. 중앙정권에서는 고구려후(高句麗侯)라는 관직을 제수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호태왕이 있는데, 그는 후연에서 평주목요동대방이국왕을 제수받았습니다. 그는 중국과의 내전을 통해 고구려의 위치는 부상시켰습니다. 장수왕의 경우에는 말년에 표기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고구려는 관직상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대장군, 산관, 훈관, 동이중장랑 등의 관직을 중앙정권에서 제수받았습니다. 이때, 개부(開府)는 막부를 설치하고 막료를 임명할 권한이고, 의동삼사(儀同三司)는 중국의 재상인 삼공(三公, 태위, 사도, 사공)과 의를 같이한다는 뜻으로서의 존중을 의미했습니다.

중국 남북조 대에 고구려왕은 고구려왕의 책봉시에 그 국가의 호칭과 출현, 변화가 고려에서 고구려로 개칭됩니다.

고려의 최초사용의 고려 명칭은 송나라 이무제 대명칠년(463년), 칠월을해, 징동대장군고려왕고련진호차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徵東大將軍高麗王高璉進號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宋书》卷六《孝武帝纪》)

고구려는 5세기말에 고려로 개칭한 후, 고구려에서 일층 고려로의 개칭을 병용하던 시기에서 수당시기에 나아가 역사서적 중에 고구려는 명칭이 두번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독립성향이 강해지자, 중앙정권인 수나라에서는 고구려 왕에게 관직을 제수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당나라 시기에는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은 중국 지방관인 신라의 봉상정경 평양군 개국공(奉常正卿·平壤郡開國)인 김법민이 고구려를 멸하였습니다. 그 결과, 고구려는 멸망하고, 그곳에 안동도호부가 설치되었습니다. 백제는 계림도독부가 설치됩니다. 신라는 김법민이 계림도둑부의 도독인 계림도독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삼국은 중국지방행정관원인 계림도독이 통치하는 중국의 지방정권이 됩니다.

이후, 신라를 계승한 고려는 6대왕인 왕치(王治)가 송나라에서 광록대부 검교태보 사지절현토주제군사 현토주도독 충대순군사 상주국(光祿大夫 檢校太保 使持節玄菟州諸軍事 玄菟州都督 充大順軍使 上柱國)로 책봉을 받습니다.

고려의 17대 국왕 왕해(王楷)는 1142년 금나라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책봉을 받습니다.

이후,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의 영향으로 고려의 국왕은 시호의 접두사에 忠을 붙이기까지했습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대명제국의 속국으로서,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는 당시 중국의 책봉을 받지 못해 권지국사(權知國事)로서의 지위였습니다. 10년 후인 1401년 대명제국의 승인으로 조선국왕의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임진왜란 시기의 이순신은 대명제국의 황제 만력제에게 생전에 유명수사제독(大明水軍都督)으로서 책봉을 받기도 했습니다.

명나라가 쇄락하자, 조선의 16대 국왕 이종(李倧)은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로서 대청제국 황제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1876년에는 당시 조선의 왕 이형(李㷗)은 일본국과 체결한 강화도 조약이라는 조약 체결로, 조약 내용상 독립국임을 언명한 구절에 의거 독립국 군주가 됩니다.

이후, 조선의 왕 이형은 1882년 청나라와 체결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 의거, 청나라 북양대신과 동등한 권능을 조약상 부여받았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 시에 대조선국 군주인 이형은 청나라의 요청으로 미국에 조선이 중국의 속방임을 확인하는 속방조회문을 송부합니다(大朝鮮國大君主 爲照會事 窃照朝鮮素爲中國屬邦).

이후, 이형은 러시아 공사관에 아관파천을 거쳐, 1905년 제2차한일협약(第二次韓日協約)에 의거 외교권이 일본정부에 귀속되었고, 통감부에서 한국의 외교 및 중요한 내정에 대하여 통치하는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재정 및 경찰사무마저 일본에게 귀속됩니다. 군대는 전부 해산됩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에 의거, 대한제국 황제 이형은 대일본제국 천황에게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양어하고, 합병하는데 승낙하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러한 지경에 독립운동마저 천주교 및 개신교에서 그렇게 해 줬고, 국가승인마저 가톨릭 바티칸 시국이 해주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도, 미국도 6.25때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주예수님을 배반합니까? 왜, 나라에 이방신(예: 일본, 중국의 이방신)들이 설쳐대교 독립을 빙자하여 한국을 제국화하려고 합니까? 왜 자기의로 제국을 만듭니까? 결과는 느부카드네자르를 통한 주예수님의 심판 및 잇수르의 속국과 같은 결과에 처할 뿐입니다.

여러분, 모두 회개하고, 주예수님 한 분만을 보십시오. 봅시다, 광무제가 서기 30년 9월 15일(율리우스력, 양력) 및 서기 30년 7월 29일(율리우스력, 음력)에, 또 서기 31년 3월 11일(율리우스력, 양력) 및 서기 31년 1월 29일(율리우스력, 음력)에, 또 서기 40년 3월 1일(율리우스력, 양력) 및 서기 40년 1월 29일(율리우스력, 음력)하고, 서기 46년 5월 23일(율리우스력, 양력) 및 서기 46년 3월 29일(율리우스력, 음력)에 월삭이라는 태양-달-지구의 배열이라는 조건 없이 불가능한 일식이 주예수님의 대속 후에 현실화되었습니다. 관상수시하고 유교의 숙명론마저 무너졌습니다. 체계로서의 유교도, 성리학도, 심지어 한국의 토속 신화 및 종교가 그러합니다. 잠담파라는 천문학자가 천인붕이라고 선언하고, 경방역을 만든 경방이라는 천문학자는 임금의 폭력과 해악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했습니다. 유불선도 종교통합도 이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과, 마태복음 10장 29-30절상 참새 한 마리마저 주예수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어서 회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도 나라지만, 그보다 개인들마저 심판받을 뿐입니다.

2025년 10월 1일


주예수그리스도님의종;철인왕 김승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