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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신보 Arirang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앤서니 판타노입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바쁜 음악 덕후, 'beat the repeat 타노’가 돌아왔습니다.(* 앤토니 판타노 > 비트를 계속 돌리는 타노 말장난) 오늘 리뷰할 앨범은 방1탄소년단(BTS)의 새 앨범 Arirang입니다. K-팝의 제왕, BTS가 10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제 기억이 맞다면 이들이 그룹으로서 제대로 화력을 뿜어냈던 건 2020년 Map of the Soul: 7과 그 무렵 나왔던 결과물들이 마지막이었죠. 물론 그사이 그룹이나 솔로 활동이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멤버들의 군 복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식기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2010년 결성 이후 이 정도로 긴 공백기는 처음이었을 겁니다.


사실 타이밍이 좀 아쉽긴 해요. K-팝이 서구 음악 시장에서 본격적인 상업적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BTS는 그 길을 닦으며 뒤따라오는 아티스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상징적인 그룹이고요. 요즘 영화와 사운드트랙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K-팝 데몬 헌터스> 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불과 몇 년 사이에 K-팝은 알고리즘 피드에 새로 뜨는 반짝이고 신기한 존재에서, 이제는 차트 어디에나 존재하는 익숙한 거물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BTS가 다시 시동을 걸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 시점이다 보니, 뭔가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한 때이긴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찌감치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참여한 래퍼와 프로듀서 면면만 봐도 알 수 있죠. 디플로(Diplo), 제이펙마피아(JPEGMAFIA), 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It), Y2K, 플룸(Flume) 같은 이름들을 보면 훨씬 힙한 사운드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좀 더 얼터너티브하거나, 적어도 이들이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온 힙합과 EDM에 더 진심으로 다가간 느낌이랄까요. 심지어 테임 임팔라(Tame Impala)의 케빈 파커가 'Merry Go Round’의 작곡에 참여했는데, 신시사이저 매치만 들어봐도 테임 임팔라의 Currents 앨범이 딱 떠오르는 구성입니다. 마지막 곡 크래딧에는 티조 터치다운(Teezo Touchdown)의 이름도 보이네요.


확실히 이번 앨범에서 BTS는 서구 음악 시장의 색깔을 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여러 사운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섞어놓은 결과물이 아니라, K-팝 특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본토의 맛을 내려고 한 흔적이 보여요. 요컨대, 팬들에게 '진짜배기’를 보여주려고 작정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결과물이 참 묘합니다. 너무 이질적이에요. 자신들이 따라 하려는 그 스타일이 얼마나 어설픈지 전혀 모르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Hooligan’ 같은 곡을 보면 현악기 촙(chop) 사운드나 금속성 샘플을 깔아서 거칠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잡으려 애씁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들리는 비트 위 “하하” 거리는 웃음소리는 뜬금없이 조커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오글거리고, 랩 플로우는 놀라울 정도로 지루합니다. RM은 과거 BTS 앨범이나 솔로 작업물에서 훨씬 열정적이고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적이 있잖아요. 이게 문제예요. BTS 멤버들이 랩을 할 줄 모르는 게 아닌데, 적어도 이번 앨범의 소위 ‘빡센’ 곡들에선 자신들을 전혀 밀어붙이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They Don’t Know About Us’ 같은 곡은 2010년대 중반에나 유행했을 법한 답답한 팝-트랩 장르인데, 지금 듣기엔 너무 뒤처진 감이 있죠.


그리고 아까 말한 마지막 트랙은… 오토튠을 떡칠한 보컬 화음이 정말 귀를 괴롭히는 수준입니다. '청각적 낙태’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예요. 역사상 최악의 팝 송라이팅 세션 결과물이거나, 실험실에서 탈출한 애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의 실패한 보컬 실험 같아요. 물론 K-팝이 원래 다양한 장르와 문화적 트렌드를 비빔밥처럼 섞는 장르라는 건 알지만, 이번 앨범처럼 영어 가사와 AAVE(흑인 영어) 비중을 높이면서도 사운드는 구닥다리인 곡들이 많아지면, 이건 예술적 표현이라기보다 잘 다듬어진 '공산품’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앨범 도입부에서 "What you need, twin(어이 친구, 뭐가 필요해)"이라고 하는 부분은… 솔직히 말해서 참 민망하더군요.

*Twin은 미국 흑인 영어에서 진짜 친한 친구끼리 쓰는 말임. 한국으로 치면 랄부친구. 최소한 서로 N-word로 불러도 되는 사이에서 쓰이는 슬랭임. 


곡이 진행된다고 해서 귀가 좀 편해지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Aliens’나 제이펙마피아가 참여한 ‘Fire’ 같은 곡들을 보세요. 인스트루멘털은 거창하고 비트도 큼직하고 그룹 보컬도 빵빵하게 터지는데, 정작 알맹이인 작사작곡이 없어요. 전체를 묶어줄 임팩트 있는 한 줄이 없다는 겁니다. "Aliens, aliens"라거나, “Everything big it’s fire, everything big it’s fire… she want to dance on fire.” 이게 훅이라니, 참 나… 훅이 이렇다니요.


그나마 'Swim’이 앨범 전체에서 처음으로 인정할 만한, 깔끔하고 세련된 팝 트랙입니다. 이상한 기교나 무리수도 없고요. BTS의 평소 기준으론 좀 평범할지 몰라도, 적어도 듣기엔 편합니다. 아까 언급한 'Merry Go Round’는 테임 임팔라의 중반기 사운드뿐만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아날로그 신스 위주의 노스탤지어 팝 느낌이 강한데, 솔직히 이런 스타일은 이미 시장에 널리고 널렸거든요. BTS만의 특별함이 느껴지진 않습니다.


'Normal’은 앨범의 발라드 흐름을 이어가는 드라마틱한 곡입니다. 사랑과 명성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We call this normal(우린 이걸 평범하다고 부르지)"라며 읊조리는데, 좀 과한 면은 있어도 앨범 통틀어 진정성이 가장 잘 느껴지는 대목이긴 합니다. 하지만 'Like Animals’는 무거운 기타 코드와 읊조리는 보컬이 뜬금없이 트웨니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 분위기를 풍깁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사운드는 이미 차고 넘쳐요. 굳이 BTS까지 보탤 필요는 없다는 거죠. 자신들이 영감을 받은 사운드를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 채, 어설프게 따라 하기만 한 또 다른 대목일 뿐입니다.


결국 제가 이 앨범에 대해 느끼는 핵심은 이겁니다. 이들이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이후 가장 어색하고 특징 없는 앨범이라는 거예요. BTS가 처음 주목받았을 때는 확실히 그들만의 고유한 사운드와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선 자신들의 것으로 채 소화하지 못한 특정 스타일과 영향력을 무리하게 끌어오다 보니, 오히려 창의성의 한계만 드러낸 꼴이 됐어요. 이전에는 팝, 랩, 일렉트로닉을 종합 선물 세트처럼 섞어 내놓았기에 그 장르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 Arirang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시대착오적입니다.


제 점수는요, 10점 만점에 강한 2점에서 3점 사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