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 졸업생 칼럼
■남명 조식과 경상국립대를 이어준 김장하 선생 (경남도민일보 10월 4일 자)
글쓴이:김영식 경상국립대 총동문회 이사
조선 중기 실천적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은 단성사직소(을묘사직소)로 유명하다. 당시 부패한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뛰어난 문장력으로 어린 명종 임금과 주위의 섭정으로 나라가 도탄으로 빠진 것을 비판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한 상소문이다.
남명은 또 곽재우 등 제자들에게 무예와 병술에도 게을리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남명 사후 2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영남 3대 의병장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57명의 제자는 경상우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전라도를 지켜냈다.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나라를 지킨 남명의 제자 의병장들이 선조의 그릇된 모함에 역적으로 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300여 년 뒤 일제강점기, 남명 제자들의 의병활동을 안 일본은 남명을 더 잊히게 하였다.
일본은 남명을 연구하는 학자들 입에 재갈을 물렸다.
남명은 조선 후기 철저히 잊혔고 일제강점기 또한 누구 하나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45년 해방 후 초중고 교과서에 동시대 인물인 퇴계나 율곡의 얘기들이 지면을 덮었다. 지폐에도 나왔다.
뾰족한 송곳은 호주머니를 뚫고 나오고, 가슴에 품은 사향이 향기를 발하듯 남명을 살려낸 것은 경상국립대학교이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남명을 연구한 최석기, 김영기 등은 남명을 다룬 논문을 냈다.
TV·유튜브에서 남명의 수자제인 듯 남명 조식 선생의 일대기·정신·업적을 소개해줬다.
김장하 선생은 일찍이 할아버지의 한문학을 배워 사천·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하며 남성문화재단을 이끌었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으로 번 수십억 원을 기부해 경상국립대 남명학 연구에 도움을 줬고, 남명학관 건립에 이바지했다.
김장하 선생은 남명이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구한 의병 제자를 길러냈고, 경의 사상으로 실천 성리학을 일궈냈다고 봤다.
이에 가진 재산을 기부해 경상국립대가 남명학 연구 기초를 다지는 데 물심양면 후원했고 이도 모자라 몇 년 전에 남은 재산 35억 원가량을 경상국립대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진주에 남명이 살아 있다면 믿겠는가. 500년 전 남명을 보고 싶다면 진주에 살아있는 어른 김장하 선생을 보면 된다.
한약방으로 평생 모은 재산을 수백 명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줬고, 형평사 운동과 진주 오광대 탈춤 복원, 여성과 이주민 지원에 적극 동참, 지리산 자연경관 유지 노력, 친일 지도자 행적 연구와 자료편찬 후원 등 남명 조식도 못한 것을, 남명 조식이 놓쳤던 것을 김장하 선생은 평생 놓치지 않고 해냈다.
김장하 선생은 500년 전 남명의 기상을 이어받아 남명을 살려냈고, 남명 정신이 이어지도록 김장하 선생은 지금도 삶에서 보여주고 있다.
최근 진주시가 남성당한약방을 리모델링해 김장하 선생 기념관으로 조성하려 한다.
제대로 만들고 자료들을 잘 보관해야 김장하 기념관에 사람들이 계속 찾아올 것이다.
기념관을 제대로 만들려면 김장하를 잘 아는 김장하 전문가인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과 김장하 다큐를 제작한 MBC경남의 조언도 꼭 받았으면 한다.
경상우도에 500년 안에 남명 조식과 남성 김장하 선생 같은 인물이 또 나올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김장하 선생이 수많은 남명의 후예들이 나올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끝으로 김장하 선생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김영식 경상국립대총동문회 이사
경남도민일보 발언대 칼럼
[발언대]남명 조식과 경상국립대를 이어준 김장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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