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전까지 나는 좆반고 내신 6등급이었으며,
시험시간에는 시험지를 펼치지 않고 OMR 카드만 보면서 마킹을 하는 버러지였으며,
시험 전날에는 3~4등급권의 애매한 친구들을 꼬셔서 롤을 즐김으로써
그 친구들을 5등급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이 내 삶의 낙이었다
.
그렇게 살다가 고3이 되기 전
하나둘씩 인강 패스를 사는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샀고
이게 내 수험생활의 시작이었다
한 달 19만 원짜리 스터디 카페에서 나는 하루 순폰 시간 6시간을 찍던 머저리였고
친구는 끼리끼리 사귄다더니 내 주변 친구들은 스터디 카페조차 등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되던 중,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스터디 카페에서 드라스틱을 키고
펭태자를 엠페르트로 진화시킨 것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고 나서
미루고 미루던 훈련도감 1강을 듣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내 수험생활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떨어지면 번지듯이,
내 온몸에 박광일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구석구석 뻗어나가면서
"아.. 이 직업이구나.. 나는 이 세상에 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태어났구나.."
라는 생각이 내 뇌를 뒤흔들었다
하늘이 내 깨우침을 치하하듯 천둥번개를 울렸고 그 소리가 스터디 카페 안에 울렸고 동시에 내 심장을 울렸다.
혹자는 사람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때부터 나는 순공 12시간의 전사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휴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그 당시 나의 눈빛은
마치 16세의 나이로 계백에게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 관창을 보는 듯하였고
나는 매일 밤 안암에 있을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
5월 즈음에 첫 등교한 내가 느낀 것은
학생에게는 수시와 정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 자체가 없었으며
교사들의 자존심은 내 생각보다 강하였고
학생을 위한 곳인 줄 알았던 학교에서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다
거기다가 그 당시 생각하는 수준이 지금보다도 어렸던 나는 교사들을 무시하고 내 공부를 감행했었고
돌아오는 결과는 교무실 호출,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엎드려뻗쳐를 당하는 등 나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이 채 되지 않았으며
공부를 처음 시작해서 그랬던지 이상한 공부 방법만 골라서 했던 나는,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던 내 1년은 남들이 보았을 때 실패라는 두 글자로 충분히 요약되는 시간이었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가족의 희생으로 소중한 기회를 한 번 더 얻게 됐으며
비록 유리함수를 그릴 수 있게 된 지 1년이 채 안 된 나에게 수학은 너무나 가혹했지만
올해 내 허약한 몸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시간 최대한의 의지를 모두 연소하며 달려왔다
그렇게 노력해온 나에게 잠깐의 시간이라도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잃지 않도록, 그리고 남은 짧은 시간 동안 나를 다잡을 수 있도록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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