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기대고 있는 벽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으며 평화로운 거리가 언제라도 살1인과 공포의 사건현장이 될 수 있으며 믿음직했던 친구가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이 상대성의 세계에서 우리는 지속될 수 없는, 그러나 그 수명은 조금은 더 긴 무언가를 만들고 복제하면서 살아간다. 지속가능한 세상이라는 것 따위는 망상이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다.
상대성은 개인과 집단, 사회 또는 역사의 누적 지식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흔히 집단지성이라고도 말하는 것과 개인의 지식에는 외견상 규모의 차이가 있다.
여기서도 상대성을 벗어나려는 근본적인 유혹이 있다. 다수라는 가짜 절대성.
절대좌표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절대성에 대한 열망은 광신으로의 타락을 예고한다. 반대로 상대성을 절대화하는 경우 우리는 비관과 절망, 또는 나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다수 세상을 지배하고 지배했던 자들은 이 상대성을 초과한 혹은 초월한 절대적인 어떤 것을 설득시킴으로써 그것을 실현했다. 그 설득이 그저 말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동의와 강제.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세계는 환각이다.
그런 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모든 이들은 대부분 사이비다.
유토피아는 글자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여러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마음이 답답하다. 사필귀정이라고는 해도 정해진 분기에 도달하는 과정은 마치 연재소설의 횟수를 질질 늘리는 케이스나 쓸데없는 에피소드를 늘리며 메인스토리 진행을 지연하는 케이스가 있을 수 있다.
마치 인생이야기를 언제 태어나 몇년을 살다 언제 죽었다 식으로 묘비명 쓰듯 할 수 있지만 시시콜콜한 대하소설 한편으로 길게 늘어쓸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길게 늘어지는 이유는 대개 개연성, 명분 축적을 위한 것이다. 혹은 경로를 바꾸거나.
또는 예정된 결말의 회피.
그 무엇이든 종말까지 좀 더 많은 시간, 또는 선택지들이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조급해하지 말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절대>라는 것은 없다. 포기하지도 말자. 예정된 종말이라는 <절대>도 없다.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곳, 마찬가지로 지금 이순간도 잠시 거쳐가는 시간이고 장소이다. 그리고 그 <잠시>가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다. 그 이전도 이후도 우리에겐 지나간 것이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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