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뭐냐 할리우드 영화같은 데 보면 참전용사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정신이 나가있고 촛점 없는 눈으로 돌아다니고 그러잖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사람 불쑥 튀어나오면 놀라서 총부터 꺼내들고 제압하려고 든다거나


독립기념일에 터지는 폭죽을 보며 멍하니 서있다가 갑자기 흐느끼면서 주저앉는 그런 거


서부전선에 갔다와보니까 나도 그렇게 되더라




달려드는 버그를 향해 가만히 서서 기관총을 쏘는 동안


등 뒤에서 소리없이 로켓포가 날아올 일도 없고


하늘에서 떨어진 헐크가 저벅저벅 걸어와 화염방사기로 날 구워버릴 일도 없는데


나중엔가 정신을 차려보면 저만치 달려가는 전우의 옆에서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가 된 트루퍼나 데바스테이터를 찾고 있었어


어느샌가 나도 사람이 아닌, 전쟁이라는 괴물의 일부가 되어버린 거야




전우를 겨누고 있는 스트라이더의 등을 조준해 쓰러트리고


울부짖는 야수처럼 기어오는 탱크를 향해 젬을 던지고


포효하듯 쏘아보내는 미사일을 피해 몸을 던지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각성제를 꽂는 스스로를 떠올리면서


나는 우주선 안에서도 그 크릭의 검붉은 덤불 그림자에 잠겨서 발버둥치고 있던 거였어




그래서 난 다시 지도를 연다


내가 죽이고, 또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고철덩어리들을 향해서


그것이 언제, 누군가의 이름을 달고서 내 앞에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운명처럼 안배된 죽음이 내게 찾아올 때까지




한가지 확실한 건, 난 죽어서 천국에 갈 게 분명해


내 삶의 전부를 지옥에서 보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