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지구 표준시 21:30

화성 정지궤도

다목적 우주정거장 그림니르


진리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냉동수면은 무척이나 안전한 기술이고 천 명 가운데 한둘 정도만 가벼운 경련이나 마비, 단기적인 기억손실, 심부전, 뇌출혈 등의 심각하지 않은(?) 부작용을 경험할 뿐이라고 한다. 


물론 극히 이례적인 확률로 거부반응을 일으켜 사망하는 불운한 사례가 발생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행기나 자동차보다도 안전하기에 무시할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진리부의 선전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는 둘째치고... 식민지 외곽의 최전선으로 향하는 슈퍼 구축함에 장전되기 직전 실행되는 최종 검사에서 냉동된 헬다이버들의 생명반응이 완전 소실되는 경우는 의외로 자주 발생한다.


그래,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만삭에 가까울 정도로 배가 부풀어오른 여성 헬다이버의 시신에서 눈을 돌렸다.


절차대로 진행된다면 스테이션 하부층에 위치한 시체소각장에서 처리될 것이다. 


...


슈퍼지구의 D등급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가지 일들로부터 눈 감고 입 다물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의료구역 CCTV의 저장장치와 출입기록을 수정해서 보안부의 관심을 끌 만한 건수를 제거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아서 다행이다. 전자기록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더 어려웠으니까. 옆사람을 찔러서 시민 등급이 올라간다면 없던 말도 지어낼 놈들이 수두룩하니.


지난달에 새로 착임한 군의관이 가끔 술에 꽐라가 되어 있던데 저런 걸 맨정신으로 본다면 뭐 그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숙소로 돌아온 후 잠시 멀거니 천장을 올려다 보던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사실 오래 살려면 저런 일에 관심 갖지 않는 편이 좋다.


시벌, 그렇다고 내가 똑똑한 짓만 했으면 여기서 행정병으로 썩고 있지는 않았겠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네트워크 콘솔을 열고 내 전용 AI 도우미를 불러왔다. 


"스키터, 도움이 필요해."


- 예, 대기중입니다.


"지난 3년간 냉동수면 거부반응으로 사망한 헬다이버가 몇 명이 되는지 찾아줄래?"


- 확인했습니다... XXXX명입니다.


"사망자 중에서 몇 퍼센트나 여자야?"


- 92.5%입니다


과연 그 중에서 진짜로 거부반응 때문에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명단과 사진을 불러와서 확인해보니 이상하게 미인 비율이 높았다.


"...허, 냉동수면이 진짜 안전하긴 한가 보군."


진리부에서 거짓말을 안 할 때도 있다는게 더 놀랍구만. 여기서 조금 더 조사를 한 다음 언론사에 제보를 해 볼까 아니면 치안부나 정보부 쪽에 투서를 넣어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결국 모르는 척 하는게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지난번에도 어떤 높으신 분들의 애새끼일 놈들이 멀쩡한 아녀자들에게 마약 먹이고 단체로 내돌렸는데 동영상까지 확인하고도 검사나 판사나 '우리는 눈이 멀고 귀가 먹어서 누가 누군지 모루겟소요'하고 죄다 무죄 때려서 풀려나는 꼬라지를 보니 이번 일도 공식적인 경로로는 어떻게든 썩 잘 풀릴 것 같지가 않다. 


괜히 무서운 아저씨들에게 끌려가서 면담 좀 한 다음 자유 캠프로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조용히 없던 사람이 되겠지.


...


콘솔을 닫고 잠이나 자려던 나는 문득 사악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저거 나도 할 수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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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다음은 니가 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