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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강하 전의 하늘




함대는 궤도 위를 유영하는 철의 신전 같았다.
강철로 지어진 그 함선들은

빛을 받으며 성스럽게 빛났지만, 그곳에 신은 없었다.
오직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슈퍼 어스는 완벽합니다. 민주주의는 신성한 의무죠. 의심은 반역입니다.”

매일 정각, 확성기가 외우듯 읊는 문구는 기도이자 세례였다.

에단은 드롭포드 내부의 금속 의자에 묶여 있었다.




금속 벽에 기대 앉은 병사들.
모두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다.



루이스 일병이 헬멧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알잖아? 지난 작전에서 포드 세 대가 잘못 계산돼서 용암 호수에 빠졌다더라.

본부는 그걸 ‘전략적 열탕 점령 작전’이라고 발표했지.”


병사들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알 수 없는 침묵과 떨림이 감돌았다.

강하 직전, 확성기에서 자동음성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귀하의 생존 확률은 38%로 예상됩니다.

               이는 전 주 대비 5% 향상된 수치입니다.”


에단은 자신도 모르게 웃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웃음 속에는 두려움이, 입술 아래에는 질문이 숨어 있었다.


‘우린 정말 자유를 위해 죽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계산된 수치 속 숫자일 뿐인가?’

드롭포드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철과 불꽃, 금속 냄새와 압축 공기가 뒤섞이며, 병사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행성의 검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루이스 일병이  피식 웃었다.


“첫 강하는 언제나 가장 달콤하지.

살아남으면 두 번째부턴 그냥 썩은 고기 취급이야.”


모건 중사가 담배를 물며 말했다.

“웃기지 마라. 넌 첫 강하 때 포드 뚜껑 열자마자 토했잖아.

 그것도 헬멧 안에다 말이지”


“아, 그거? 민주주의가 내 위장을 거쳐 새로 태어난 거였죠.”


병사들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알 수 없는 떨림이 감돌았다.



칼라 병장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구호를 읊었다.



“민주주의는, 영원하다.”

모두가 따라 외쳤다.


“민주주의는, 영원하다.”

에단도 따라 복창 했지만, 목소리 끝에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의문이 실려 있었다.











제1장 ― 첫 불꽃

드롭포드가 지표면을 찢고 내려왔다.
착지 충격.


곧바로 문이 열리자, 앞은 검은 파도 같은 테르미니드였다.

총성이 울렸다. 귀를 찢는 폭발음이 뒤섞였다.
에단의 첫 전투는 혼란 그 자체였다.


“사격 개시!” 모건의 목소리.
총열이 붉게 달아오르고, 하늘은 포격의 섬광으로 물들었다.


루이스가 좌표를 불렀다.
“화력 지원, G-5! 민주주의의 불벼락을 내려!”

있는 힘껏 소리치며 머리넘어로 스트라젬을 던졌다


잠시 후, 공기를찢는 소리와 함께

주황구름이 피어나는곳에 불덩이가 떨어졌다.









그러나  착오였다.



아군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있던

화염방사기와 가스백을 차고있던 옆분대 베테랑 두명이

그대로 불꽃에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모건중사가 리버레이터를 내팽겨치고 루이스의 바이저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 이런 좆같은, 뭘한거야 씨발롬아!"


불행중 다행인지 한명은 등뒤에 메고있던 가스백이 폭발하며 그대로 산화했지만

다른 한명은 전장의 폭발음도 벌레들의 단말마도 묻힐정도로

끔찍한 비명으로 바이저헬멧을 가득채웠다.


이내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비명이 멎었고

분대원들은 검게타오르는 버그들의 잔해들과

아무것도 남지않은 포격현장을 초점없이 바라보았다.


루이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봐라, 민주주의 앞에서는 모두 평등해, 친구도 적도 똑같이 태워버리니까.”


모건중사가 주저앉은채 중얼대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리버레이터를 다시 주워들었다


"카라, 저새끼 스트라젬 모두회수해"



에단은 비틀거리며 다시 굴에서 나오던 버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벌레들의 내장이 튀었다.

피와 불길, 철과 살점이 뒤엉킨 광경.
그 순간, 그는 자신의 공포가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은 포탄처럼 쏟아졌다.

전우들은 하나씩 이름을 잃고, 피와 고깃덩어리로 변해갔다.



에단은 죽은 자들의 얼굴을 기억하려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탄약을 장전하는 행위, 벌레를 쏘아죽이는 행위,

불타는 둥지를 밟고 지나가는 행위는 모두 하나의 움직임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마음은 돌처럼 굳고, 피와 살의 냄새에도 더 이상 구역질을 느끼지 않았다.



검은 연기와 불꽃 속에서, 분대는 살아남은 자들의 무게를 느끼며 굴을 빠져나왔다.
누군가의 손이, 아직 뜨거운 철제 잔해 위를 더듬고 지나갔다.







루이스는 바이저를 닦으며 피식 웃었다.
“살아남았다고? 하, 우리가 ‘민주주의의 소금’을 뿌렸을 뿐이지.

고기만 남았네.”


모건은 연기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담배를 다시 붙였다.
“까불지 마라. 오늘 살아있다고 자랑하는 놈들은 내일 없을 수도 있다.”


카라 병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전장을 한 번 휘둘러 바라본 후,

말없이 펠리컨으로 향하는 통로를 가리켰다.
병사들은 서로를 살피며, 말없이 줄을 서서 이동했다.





에단은 뒤를 돌아보았다.
불타고 부서진 둥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전우들

펠리컨 금속 통로를 따라 걸으며,

에단은 여전히 머릿속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민주주의자유… 이건 단순한 계산 속 숫자일 뿐인 거 아닌가…?


“멈춰, 에단.”
카라 병장이 한 걸음 다가서며, 눈을 빛냈다.


“그런 의심, 그런 망설임은 사치야. 자유는 지켜져야 해.

슈퍼지구는 완벽하고, 우리는 그 뜻을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그 안에는 순수한 신념이 빛났다.

에단은 고개를 숙였지만, 그 믿음의 무게가 온몸을 압박했다.


루이스가 옆에서 킥킥 웃었다.

“오, 카라가 또 마 모드네. 자유를 위해 죽으라고?
나 같으면 그냥 ‘오늘도 살아남았다!’ 하고 축배나 들겠다만.”


그 경박함이 어찌된 일인지, 에단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위안을 남겼다.


모건은 뒤에서 리버레이터를 메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 젠장맞을 웃음도 이제는 처절하게 들리는군…

총성, 폭발, 살점, 그리고 믿음 속 웃음. 그래도 오늘 우리분대는 살아남았다.”









에단은 창밖으로 어두운 행성을 바라보았다.
폭발 속에서 살아남았고, 친구와 동료는 사라졌지만, 그 모든 것이

슈퍼지구를 위해야 한다는 카라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카라가 손을 들어 에단을 붙잡았다.
“계속 혼자 의심한다면, 넌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거야.
자유는 신념이고, 신념은 명령보다 강하다. 이해했어?”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따라갔지만, 마음속 의심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루이스가 바이저를 툭 치며 농담을 던졌다.


“에단, 이 운좋은새끼… 살아남았으니 이제 불타는 벌레 구경은 충분하지 않나?

다음엔 좀 더 재밌는 일로 죽어보자고.”


모건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까불지 마라, 루이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


함선 내부로 들어서며, 에단은 잠시 숨을 고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카라의 신념과 루이스의 농담, 모건의 무거운 숨결이 뒤섞인 채, 그들은 다시 철의 신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또 다른 어둠과 맞서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제2장 ― 잿빛 속의 기도

포격은 이미 끝나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연기로 덮여 있었고, 흙냄새와 불타는 살의 악취가 진동했다.
분대의 드롭포드는 늦게 착륙했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마을이 아니라, 거대한 화장터였다.

불에 그을린 포대 자루, 찢어진 슈퍼지구 보급 상자, 녹아내린 드릴과 절단기.


그 사이사이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하나같이,

살아남기 위해 슈퍼지구 자산을 사용하려 했던 흔적을 쥔 채 죽어 있었다.


모건이 주워 든 건 반쯤 녹아내린 전동 드릴이었다.

그 옆엔 아직 타다 남은 아이의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씨발, 우린 전투하러 온 게 아니라, 무덤을 순찰하러 온 거군.”



루이스가 코웃음을 쳤다.
“봐라, 이래서 규칙이 있는 거야.
민주주의는 매뉴얼대로 쓰지 않으면 폭발한다고.
죽어도 잘못은 걔네들이 한 거지.”


카라는 루이스를 흘겨보며 섬뜩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변명할 수 없다. 슈퍼 어스의 자산을 무단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그 순간 그들은 자유를 버린 거야.
숙청은 정의였고, 지금 이 잿더미야말로 우리가 옳았다는 증거다.”


그녀의 눈은 흔들림 하나 없이 불타는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속에서 성스러운 계시라도 읽는 듯했다.

에단은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순간 에단은 진흙아래 묻혀있던

액정이 부숴진 단말기를 발견했다.


그곳엔 상공의 행성자위대에게 필사적으로 전송하려 했던 

구조메세지가 수십번은 찍혀있었다.

"그들은 버그들을 막으려고 한것 뿐이야."


긴 침묵.

카라는 뭔가를 말하려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말았고

루이스역시 농담한마디 없이 군화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격으로 무너진 지하실 입구에서, 두 팔로 서로를 감싼 가족의 시신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와 체념으로 얼어붙은 채였고, 팔 아래에는 슈퍼지구 배급용 물통이 하나 끼어 있었다.

에단의 속이 뒤틀렸다.


‘이게 정말 자유를 지키는 길이라고?

아니면 두려움이 만든 도살일 뿐인가?’







확성기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민주주의는 영원하다. 반역은 숙청되었다. 자유는 승리했다.”


폐허 위에 메아리친 그 구호는, 더 이상 누구의 기도도 아니었다.
단지 죽은 자들을 비웃는 잔향 같았다.





제3막 ― 잿더미 속의 발견







폐허는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포격으로 무너진 마을 한가운데, 콘크리트 더미 아래서 매캐한 연기가 아직도 기어나오고 있었다.


분대는 명령대로 잔여 자산을 회수하고, 무기고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모건이 어두운 지하 벙커로 먼저 들어섰다.


철문은 반쯤 녹아내려 있었고, 안쪽은 축축한 먼지 냄새와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전등은 모두 꺼졌지만, 손전등 불빛에 녹슨 철제 선반과 무기 상자가 드러났다.


루이스가 발로 상자를 걷어차며 말했다.

“봐라, 탄창은 비워져 있고, 총은 전부 열쇠도 없이 꺼내 썼네.

슈퍼 어스의 은혜를, 꼭 도둑질처럼 받아먹었군.”


카라가 날카롭게 말을 잘랐다.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벌을 받았다. 끝났다. 더 말할 가치 없어.”


에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눈길은 벙커 깊숙한 곳, 기묘하게 보존된 장치를 향했다.




벽 한쪽이 갈라져 있었고, 그 뒤에 은빛의 수면 캡슐이 서 있었다.
겉면은 오래된 흙과 곰팡이로 덮여 있었으나, 패널의 붉은 불빛이 아직 살아 있었다.






100년은 묻혀 있었을 법한 장비가, 마치 갓 사용된 것처럼.


모건이 담배를 입가에서 떼며 낮게 욕을 내뱉었다.

“…씨발, 이건 군용 냉동 캡슐이다. 이 행성에 이런 게 있을 리가 없는데.”


루이스가 신기한 듯 손전등을 비추며 킥킥거렸다.
“혹시 전설 속 ‘얼어붙은 영웅’ 아냐?

열어보면, 뭐랄까… 민주주의에 절인 미라라도 튀어나오겠지.”


“닥쳐.”
카라가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접근하지 마. 검증되지 않은 장비는 위험하다.”

그러나 이미 에단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패널에 남아 있는 희미한 군번과 낡은 슈퍼 어스 문장.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는 표시등이었다.


순간, 저편에서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압축된 공기가 터지며, 캡슐의 잠금 장치가 풀렸다.


스팀과 함께 덮개가 열리자, 안에서 중무장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눈을 떴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고, 눈빛은 아직 전투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번뜩였다.

그는 반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첫 마디는, 
현재가 아닌 100년 전의 전장을 향한 외침이었다.

“좌익선을 지켜라! 오토마톤이 돌파한다! 탄약, 탄약을 가져와!”


분대원들이 동시에 무기를 들었다.
루이스는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민주주의 귀신이네, 씨발.”


모건이 차갑게 내뱉었다.
“루이스, 입 다물어. 저게 뭐든 지금 우리랑 같은 편인지는 알 수 없어.”


에단은 손가락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남자의 눈빛에서 묘한 힘을 보았다.
세기의 무덤 속에서 깨어난 전사 ― 이제 그들은 그와 마주해야 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