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 첫날, 3레벨 사관생도의 제복에 묻은 흙먼지는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거창한 전략도, 원대한 포부도 없었다. 그저 떠밀리듯 들어선 전장은 자비 없는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가장 낮은 난이도라던 전장을 클리어 할수 있다고 생각한건 기만이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저그의 물결
그리고 저 멀리서 차가운 광린을 내뿜으며 전진하는 포로토스(?)들
오토마타의 기계적인 발자국 소리가 심장을 조여왔다.
무력했다. 손에 든 소총은 한낱 장난감 같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비명을 삼키는 것뿐이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희망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탄창은 바닥을 드러내어 빈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고, 상처를 달래줄 치료제마저 메말랐다.
보급은 이미 전부 소모 한지 오래였다. 무너진 담벼락 뒤, 시민 NPC들의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나의 마지막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여기까지인가.."
진흙탕에 처박힌 고개를 들지 못할 때, 곁을 지나가던 이름 모를 노병이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것은 예언이자, 생존을 향한 단 하나의 열쇠였다.
"게이야 망호를 파다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갤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 뉴비 더이상은 못버틴다 살려다오 "
생존을 향한 갈망이 손가락 끝에 실려 은하계의 심연으로 타전되었다.
구조 신호가 우주를 가로지른 지 단 5초. 칠흑 같은 밤하늘이 찢어지며 세 줄기 빛이 지상으로 꽂혔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레벨 150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가슴에 새긴, 전쟁 그 자체를 탐닉하는 ‘썩은물’들이었다.
그들이 발을 디디는 순간 지면이 진동했고, 공포에 질려있던 나의 망막 위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재앙이 아닌 은혜였다.
궤도상에서 투하된 무수한 병기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구름 사이로 거대한 배틀크루저의 함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난 신의 눈동자 같은 배틀크루저의 레이저가 지상을 훑자, 나를 압사시키려던 강철의 군단은 한 줌의 재로 화했다.
나는 그저 그들의 뒤를 쫓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소총이 무색하게, 그들의 손끝에서는 불꽃의 성가가 연주되었다.
궤도 폭격은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되어 절망을 태워버렸고, 전장은 어느새 경외감 가득한 무대로 변해 있었다.
피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압도적인 힘이 선사하는 구원의 숭고함을.
강화된 적들의 목을 꺾으며 전진하는 세 명의 뒷모습은 태양보다 눈부셨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공포의 끝에서 마주한 안도감이었고,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에 대한 감사였다.
지옥 같던 전장은 이제 그들이 그리는 찬란한 승리의 화폭이 되어 있었다.
절망은 그렇게, 궤도에서 내려온 신들의 자비 아래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민주주의 만세
ㅋㅋㅋㅋ
라이라이차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