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파가 터질 것 같다. 아니, 이미 터졌는데 아드레날린이 억지로 꿰매놓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젠킨스 말릭스. 21살. 슈퍼지구 무장병력, 자랑스러운 SEAF의 소총수. 그리고 지금, 개머리판에 땀으로 미끄러지는 제식 소총을 부여잡고

진흙탕을 구르며 달리고 있다. 분대원들과 함께.


아니, 정정하자. 이젠 이걸 ‘분대’라고 부르기엔 양심이 찔린다.


선임 하사였던 마커스는 15분 전에 톱날을 단 버서커 무리에게 산 채로 다져져 프랜차이즈 햄버거 패티 꼴이 되었고, 무전병 크리스는 헬다이버가

‘아군 오인’으로 던져버린 380mm 궤도 포격에 휘말려 유전자 단위로 산산조각 난 지 약 3분 전이다.


처음 행성 강하를 했을 때 우리는 분명 ‘사단’이었다. 위풍당당하던 사단은 전면전 개시 2시간 만에 갈려나가 ‘연대’가 되었고. 연대는 산개

작전 중 포위당해 ‘대대’로 쪼그라들었으며. 대대는 궤도 방어탑에 꼬라박았다가 ‘중대’가 되었다. 그 중대마저 방금 전 오토마톤의 매복에

걸려 ‘소대’로 나뉘더니, 내가 속한 소대는 금방 이 꼴로 박살이 났다.


어릴 적 징집 포스터나 홀로그램 영화에서 보던 영웅적인 병사들은 30kg짜리 군장과 방탄복을 입고도 전력 질주를 하며 웃던데. 씨발, 전부

슈퍼지구 진리부의 좆같은 뻥카였다. 지금 나는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멈추면? 진짜로 죽는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전방! 데바스테이터! 교전 개시!!"


앞장서서 헐떡이던 게더 상병의 쇳소리 섞인 악에 즉각 산개하며 총구를 겨눈다. 흙먼지 너머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육중한 장갑, 어깨에 달린

두툼한 미사일 포드.


로켓 데바스테이터. 빌어먹을.


"사격! 쏴, 쏘라고!!"


남은 5명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긴다. 타타타타탕-! 조악한 구경의 제식 소총탄이 놈의 장갑에 부딪혀 불꽃을 튀긴다. 기스나 났을까?


"머리! 머리를 노려! 빨간 불빛을 쏘라고 병신들아!" "놈이 자세를 낮춘다! 쏜다, 저 새끼 쏜다!!"


어깨의 포드가 열리고 로켓이 점화되려는 찰나.


"민주주의의 좆이나 까잡숴라, 이 양철 깡통 새끼야!!"


게더가 무반동 소총을 어깨에 고정하고 먼저 로켓을 쑤셔 넣었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파음과 함께 데바스테이터의 상반신이 폭발에 휘말렸다. 육중한 고철 덩어리가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뒤로 크게 휘청이더니, 이내 쿵-

하고 진흙 바닥에 쓰러졌다.


"해냈… 잡았다! 씨발, 잡았다고!" "이동한다! 빨리! 대피 지점까지 300미터다! 뛰어!"


살았다. 이번엔 살았다. 안도감에 숨을 들이켜며 다시 다리를 움직이려던 순간.


철컥.


"어?"


내 총이 기침을 했다. 탄창이 덜 끼워졌나? 아니, 약실에 흙이 꼈다.


"자, 잠깐! 나, 나 탄이 걸렸어! 젠장!"


나는 욕을 씹어삼키며 멍청한 제식 소총의 노리쇠를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제발, 제발 좀! 동료들의 뒷모습이 멀어진다. 다급하게 발을 떼려던

찰나,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박살난 오토마톤의 잔해에 발목이 걸렸다.


"악!"


우당탕- 볼품없이 안면부터 진흙탕에 처박혔다. 입안으로 비릿한 피 맛과 흙먼지가 밀려 들어왔다. 코피가 터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두두두두두두두두-!


"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악-!!"


"……?"


고개를 든 나는,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숨을 멈췄다. 경악조차 할 수 없었다.


진흙탕에 처박혀 죽은 줄 알았던 오토마톤 보병, MG 레이더 한 기가 반파된 몸을 질질 끌며 일어나 등 뒤에서 기관총을 갈겨댄 것이다.


게더 상병의 상반신이 토마토 통조림처럼 터져 나갔다. 그 옆에 있던 일병은 다리가 잘려나가며 비명을 질렀고, 남은 두 명은 등을 벌집처럼 꿰뚫린

채 고꾸라졌다. 단 2초. 2초 만에 내 마지막 남은 전우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철커덕. 위이잉-.


MG 레이더는 내 동료들을 전부 고기반죽으로 만든 후, 아주 기계적인 동작으로 탄통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당연하지, 이 새끼는 기계니까.)


놈은 완벽한 효율로 재장전을 끝내고, 붉은색 렌즈를 천천히 돌려 바닥에 엎어진 나를 겨눴다.


"자, 잠깐-!"


끝났다. 엄마, 미안해요. 입대 지원서에 도장 찍을 때 말릴 걸 그랬죠.


그렇게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슈슈슈슈슉-!


하늘에서 떨어진 6줄기의 푸른색 고출력 레이저 빔이 내 앞의 레이더를 말 그대로 '증발'시켜버렸다. 녹아내린 슬래그(Slag)가 내 뺨으로

후드득 튀었다.


"어…?"


방금 뭐지? 나는 멍청하게 고개를 돌렸다.


검고 노란 장갑. 펄럭이는 망토. 헬다이버였다. 슈퍼지구의 영웅. 전장의 지배자.


그는 방금 막 궤도에서 강하한 듯 무기를 든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등에는 기이하게 빛나는 워프팩(Warp Pack)을 메고서.


"자, 잠시만요! 헬다이버 님! 저 좀, 저 좀 살려—"


내가 반색하며 손을 뻗으려는 찰나. 놈은 내 생사 따위는, 아니 내 존재 자체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파란색 직육면체

쪼가리(레어 샘플) 하나를 쓱 줍더니.


파앗-!


어디론가 미친 듯한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뛰어간 게 아니다. 워프팩의 공간 도약을 이용해, 말 그대로 내 시야에서 '삭제'되듯 워프해버린 것이다. 마치 맵을 스피드런하는 미친 게이머

새끼처럼.


"……씨발."


정적이 찾아왔다. 아니, 정적은 아니지. 멀리서 터지는 폭격음, 레이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


나는 이 마굴에 혼자 남았다. 아군 없음. 무전기 없음. 들고 있는 건 탄이 걸린 고철 덩어리 소총 하나.


"흐으윽… 흑…."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울면서 진흙탕을 박박 기어 포복하기 시작했다. 일어서면 죽는다. 이건 본능이 외치는 경고였다.


삐빅- 삐비빅- [슈퍼지구를 파괴하라- 인류를 멸종시켜라-]


사방에서 오토마톤 특유의 기계음과 소름 끼치는 이진법 찬송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놈들의 순찰대가 근처를 지나가는 모양이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은 동료의 시체 밑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게더 상병의 내장이 내 헬멧을 적셨지만 역겨울 틈도 없었다.


콰아아앙!! 투투투투- 퍼엉!


어디선가 계속 총소리와 폭발음이 들려온다. 아까 그 미친 스피드런 헬다이버가 깽판을 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헬다이버의 에너지 무기 발사음이 몇

번 들리더니, 다행히 오토마톤들의 기계음이 그쪽으로 몰려가며 근방에선 잦아들었다.


"씨발… 씨발… 진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총의 노리쇠를 다시 당겼다. 툭, 하고 걸려 있던 탄피가 빠져나왔다. 장전된 탄창 확인. 남은 탄환 18발.


이건 영웅담이 아니다. 슈퍼지구의 프로파간다 선전물은 더더욱 아니다. 이건 좆도 없는 엑스트라 병사 젠킨스 말릭스가, 지옥보다 더한 이 행성에서

기어코 살아남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짐승 같은 이야기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병의 시체에서 피 묻은 수통을 떼어내 허리춤에 차고, 앞을 향해 벌레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저 망할 헬다이버 새끼가 가는 방향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거였다. 저 미친놈들 근처에 있다간

오토마톤한테 죽기 전에 아군 오폭에 찢겨 죽을 게 뻔했으니까.


삐비빅-


바로 내 오른쪽 3미터 앞, 불탄 나무둥치 너머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정찰병 커미사르(Commissar) 봇이었다. 놈의 기계 팔에 달린

플레어건이 하늘을 향해 치켜들려 있었다.


숨을 참았다. 지금 저 새끼가 증원을 부르면 난 끝이다.


‘쏘지 마. 제발, 제발 쏘지 마.’


속으로 성모 마리아와 민주주의의 수호신을 번갈아 찾으며 눈을 까뒤집은 순간.


[목표 확인- 인류의 벌레-]


놈의 시야가 정확히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


"아, 좆됐다."


나는 포복 상태 그대로 총구를 치켜들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슈우우우우우욱—!!


하늘에서 익숙하고도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건 500kg 폭탄이 대기를 찢고 낙하하는 소리.


그리고 그 폭탄의 궤적은, 정확히 나와 커미사르 봇의 대가리 한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이 씨발 헬다이버 개새끼들아아아아!!!"


나의 절규와 함께, 세상이 눈부신 섬광으로 하얗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