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시마즈는 1598년 10월 30일 사천전투에서 7000 명 병력을 이끌고 5만명의 명나라-조선 연합군과 전투해서 3만8천개의 수급을 취함.(즉 뒈진 명조 연합군의 수가 38000명이상)
전설적인 압승이었지만 교환비가 10:1 정도로 났다면 시마즈의 병력은 전투후 많아야 3200명 정도지만, 뭐 그이상 교환비로써 4000명이라고 치자.
그리고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시마즈는 1500명만 이끌고 소극적으로 출진했다가 80명만빼고 다 죽음.
그런데 9년후 1609년 시마즈는 3000명 병력을 이끌고 류쿠왕국(오키나와)를 침공해서 정복에 성공함.
오키나와 침공 시마즈 3000명 병력은 여기 : http://www.archives.pref.okinawa.jp/publication/2014/03/post-168.html
즉 세키가하라에서 시마즈가 끌고 간 1500명은 시마즈의 전병력이 아닌 일부였고, 1420명이 죽었는데 불과 9년후에 3000명 병력을 이끌고 침공했다는것은
노량해전에서 시마즈의 피해가 별로 크지 않았다는것을 증명함.
사천전투후 시마즈 병력 4000명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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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이후 시마즈 병력 4000명에서 약간 모자란 정도? (노량해전에서 시마즈는 미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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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에서 영지 병력의 일부인 1500명만 보냈다가 1420명 죽음. 4000 - 1420 = 잔존 병력 2580명 - @(노량해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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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 영지에서 회복된 장정 인구로, 2580명-@(노량해전 피해) 정도에서 좀더 늘어난 병력 3000명으로 오키나와(류쿠왕국 침공)
뭐 시마즈 본토 영지 방위 병력도 최소한 1000명은 되었겠지. 즉 1609년 당시 시마즈 병력은 4000명+@정도로 추정할수 있음.
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노량해전에서 시마즈가 입은 피해는 미미한것으로 보인다. 시마즈 가문에서 적은 전사자수도 26명의 이름과 그외 정도니까
그리고
무슨 노량해전에서 일본이 총 500척이었다는것도 조센징과 명나라의 뻥튀기고 노량해전 당시 일본군 병력이 얼마였는지는 불명확함.
즉 무슨 이순신 좃군님이 노량해전에서 뒈졌지만 시마즈에게 큰피해를 줬쑵nida라는것도 그냥 국뽕망상으로 보인다.
(참고로 임란당시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30~50미터정도로 허접한데, 즉 이순신 좃군은 사령선에 적군이 30~50미터 이내로 접근하도록 개발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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