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요약: 교복, 로리물은 호기심도 가져선 안된다.
앞으로 20년. ‘성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할 기간이다. ‘야동’ 하나 잘못 다운받아서 성범죄자가 됐다. 1년에 한 번씩, 적어도 스무 번은 경찰서에 가서 신상등록을 해야 한다. 주소나 직장이 바뀔 때에도 그때마다 꼬박꼬박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10년 동안은 취업에도 제한이 걸린다.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해 학원·어린이집 등은 물론 당구장이나 헬스장 등 체육시설, PC방·노래방 같은 곳에서도 일할 수 없다.
김영대씨(24·가명)가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건 2013년 5월이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배포·제공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위반했다는 요지였다. 처음에는 보통의 성인물인 줄 알았다. 부끄럽긴 해도 흔히들 보는 야동을 다운로드한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서에 나가 참고인 조사를 받는 동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경찰이 김씨가 ‘아동 포르노’를 유포한 혐의가 있다며 해당 영상의 스크린샷을 눈앞에 들이민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녀가 함께 있는 장면이었다. 성행위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떠나, 자신이 그 영상 파일을 본 적이 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의 집 IP주소로 파일공유 사이트에 업로드한 기록이 있다며 김씨를 추궁했다. 집에 돌아오니 업로드 폴더에 그 파일이 있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동 포르노’ 유포 혐의로 조사받아
10월 검찰에서 공소장을 받고 11월 첫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출석하기까지 반년 동안 김씨의 매일매일은 지옥이었다. ‘최신 국산 야동 모음’ 같은 제목으로 여러 성인물을 묶어서 압축한 파일을 받은 게 화근인 듯했다. 인터넷에는 김씨와 같은 경험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형을 받은 ‘선배 성범죄자’의 경험담도, 1심에서 변론을 맡은 국선 변호사의 도움도 김씨를 무죄로 만들지는 못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고의성 없는 행위였다는 항변 대신 김씨의 네트워크 IP주소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 파일이 유포된 결과만을 인정했다. 이 결과를 뒤집을 만한 법률적·기술적인 지식이 김씨에겐 없었다. 국선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200만원의 벌금형과 함께 성범죄자 재범방지교육 40시간을 이수할 것을 명령받았다.
벌금보다 무서운 것은 20년의 신상등록과 10년의 취업제한이다. 항소를 했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200만원의 벌금보다 더 비싼 변호사 수임료를 내고 관련사건 전문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은 없었다. 김씨는 가능한 한 최대로 법을 공부해 혼자서 항소장을 써냈다. 올해 1월 항소는 기각됐다. 당장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어떻게 잡을지가 막막해졌다. “1년 반이 넘도록 머릿속에서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메아리치는 것처럼 마구 떠올라서…. 가만히 쉬는 것도 못해요.” 김씨는 꿈속에서 만나는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에 몸서리를 치며 잠이 깰 때도 있다. “가족도 이 일은 모르지만, 주위 사람들한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밖에 나갈 엄두도 이젠 안 나요….”
단순배포자 검거로 경찰 실적 올려
‘아청법’은 이름 그대로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과 성추행, 성매수 등의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보다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에서 양형기준도 점차 강화된 바 있다. 문제는 실제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아닌, 영상이나 그림 등으로 표현된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을 단순 다운·업로드했을 때의 처벌이 과도하다는 데 있다. 아청법을 위반해 유죄로 형이 확정될 경우 대체로 예외 없이 신상등록과 취업제한이라는 부가처분을 함께 받는 현실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마사토끼’라는 필명의 웹툰 작가로 유명한 양찬호씨(30)도 아청법을 위반해 벌금형과 함께 ‘성범죄자 신상등록’ 처분을 받았다. 양씨는 자신이 아청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을 당시부터 재판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만화로 그렸다. 양씨 역시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을 배포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양씨가 파일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다운로드한 파일 중에 외국 청소년이 나온 음란물 사진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경찰 조사과정에서도, 법원의 재판과정에서도 양씨는 파일을 받았다는 ‘결과’는 순순히 인정했다. 애초에 검색해서 찾으려 했던 파일은 그런 내용이 담긴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항변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뒤늦게 확인해 보니 아청법 조사 경험자들 사이에서 ‘진아청’(나오는 사람이 실제 아동·청소년인 음란물)으로 유명한 파일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로 표현된 ‘가아청’(표현되는 대상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거나, 성인이 아동·청소년 역할을 한 음란물)을 찾으려고 했지만 전혀 의도치 않은 파일을 착각해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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