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군에서 출격해서 패수(청천강)를 건넌 한漢나라 철기군이 고조선을 멸망시킴. 
고조선 망한 지역에 낙랑군 현토군 진번군 임둔군 설치 

낙랑군은 평안도 평양

진번군은 황해도~한강 유역

임둔군은 함경도~강원도 

현토군은 함경도 함흥 옥저 지역~ 고구려 지역.
고구려를 현縣으로 만들어 지배했음.


세월이 좀 흐르고 오랑캐 맥이 반란일으키고 지랄해서 진번군 임둔군을 낙랑군에 통합시켜서 
오랑캐 맥의 저항을 무력화시켜버림.

현토군은 고구려 현縣 지역으로 수도를 옮김. 

낙랑군이 백두대간 동쪽에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영동7현을 설치하여서 함경도 강원도를 낙랑군의 영토로 확고히 
먹음.

한漢나라가 망하고 신新나라가 세워졌다가 신新이 고구려 왕 '추'를 잡아서 목을 벰. 
그러나 고구려의 거센 저항으로 현토군 고구려현이 깨부셔짐. 이때 신新 제국은 민중 대반란으로 혼란 상태여서 
제대로 대처를 못함.   현토군은 고구려의 서북쪽 무순 지역으로 후퇴함.
낙랑군에서도 토착인 호족 '왕조'가 자칭 낙랑 조선 대장군이라 하며 반란을 일으킴.


후한 광무제가 낙랑태수 왕준을 요동으로부터 보내자 낙랑군의 호족 왕씨들이 왕굉을 필두로 모여서 
왕조를 죽이고  새로 부임해온 낙랑태수를 맞이함.
그리고 광무제는 낙랑군의 동부도위를 철폐하고 영동 7현을 전부 제후국으로 만들어줌.
근데 고구려가 영동 7제후국 공격해서 지 꼬붕으로 만듬. (옥저낙랑최씨 불이예국의 항복)

고구려는 북옥저,남옥저,동옥저 , 동예를 복속시킨 후 강력한 그 힘을 바탕으로 태조왕 궁이 중앙집권에 성공해서 
고구려 5부족은 5개의 부서로 정리됨. 
현토군은 고구려와 현토군의 사이에 고구려 족장들이 좋아하는 한나라의 모자인 '책'을 받아가는 교역창구인
'책구루'라는 성城을 지어서 고구려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화하려고함.
하지만 고구려 태조왕 궁은 평화적인 방법에 응하는 척하면서 식칼을 몰래 삭삭삭 갈음.

식칼을 다 갈은 고구려 태조왕 궁은 요동군 현토군을 다 털어버림. 그가 요동군 현토군을 털게된 비결은 
선비족 오환족과 손을 잡고 한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임.
하지만 부여가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뒤통수를 쳐서 고구려는 요동 현토를 먹지못하고 
또 다시 현토군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속국으로 전락함.

삼국지 시대에 요동태수 공손씨가 요동국을 세우고 낙랑군을 접수후 옛 진번군 일대(황해도~한강)를 대방군으로 바꿈. 
그리고 고구려를 쳐서 졸본을 먹고 국내성도 털어서 고구려 왕 이이모(산상왕)는 환도산의 산성으로 들어가
새로 다시 나라를 세움. 

위나라 명제 조예 천자가 기습하여 낙랑군 대방군을 먹고 사마중달을 보내 요동군을 접수함. 
이때 고구려 동천왕 위궁이 개마무사 5천 보병 2만 정도를 거느리고 요동군의 서안평현을 기습해 테러함.
분노한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이 1만 병사를 거느리고 나머지 장수들도 각자 군대를 거느리고 
고구려 군대를 학살하고 3차례 전쟁을 한 끝에 고구려는 패망해 항복하고 고구려 동천왕은 자살함. 
거지가 되버린 고구려인들을 열심히 관구검이 먹여 살림. 

고구려에 복속되어있던 옥저,예도 관구검의 부하인 낙랑태수 유무 대방태수 궁준에게 정벌당해 항복함. 

마한 신분고국이 낙랑군 대방군에게 예속된 속국 신세를 벗어나기위해 마한인들을 선동하여 
낙랑군 대방군을 공격하지만 위나라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 결국 마한 전부가 멸망당함. 
마한은 전부 대방군에게 멸망당해 대방군 땅이 됨.

전라북,남도는 마한에서 독립해서 신미新彌제국諸國 즉 침미다례가 됨. 이들은 동그라미 모양 네모 모양 사다리꼴 모양 고분을 사용하고
대형 옹관을 관짝으로 사용했는데. 고분 주위에 도랑을 파고 왜倭계 하니와들을 부장했는데. 전라도에 살던 왜倭 세력임. 

서기 312~313년에 고구려가 낙랑군 대방군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낙랑군 대방군은 여전히 유지시켜서 고구려의 괴뢰국 신세가
되어버림.  고구려는 요동군 현토군을 신나게 털으며 세력을 확장해나감.

그러자 요서의 모용선비(요서 삼연三燕 라마동고분) 는 요동군 ,현토군을 도와서 고구려에 대항하며
고구려의 공격으로부터 피난해온 낙랑인 대방인들을 요서에 정착시킨 후 
요서군과 진晉제국의 평주平州 군현郡縣(창려군 요동군 낙랑군 대방군 현토군) 줄여서 진평군晉平郡과 
백제 ~ 김해의 임나任那를 잇는 새로운 무역 체계를 계획함. 
그런 목적 하에서 모용선비의 부하인 부여씨족이 바다를 건너 백제를 정벌해 자기 나라로 삼음. 
모용선비족 아라사등은 김해에 와서 구야한국과 염사읍을 복속시킨 후 임나任那라는 나라를 세워서 
열도 기나이 긴키 오사카의 YAMATO 정권과 교역 루트를 뚫음.
열도 왜국은 임나에게 통형동기 창과 파형동기 부착 방패를 줌. 임나는 그 대가로 변한인들이 돈으로 쓰는 철덩어리들을 보내줌. 
열도의 왜국의 지배계급 중엔 '미마와 쿠시'라는 계급이 있는데. 
모용선비족 아라사등은 이 계급이 되길 자청해서 국호도 '미마나 쿠시'라고 함. 이는 한자로 적으면 '임나 구지'임.

'임나 구지'의 고고학 유적지는 김해 대성동 고분인데. 김해 대성동 고분 언덕의 수장묘는 북방민족의 풍습 등이 고고학적 근거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북방민족의 순장도 나타나며 북방민족이 즐겨 쓰는 동복도 출토됨. 
그뿐 아니라 왜국의 수장이 사용하는 통형동기 창 , 파형동기 부착 방패도 출토되고 
모용선비의 복발주 북방계 투구 , 신라인들이 쓰는 조끼같은 갑옷인 종장판갑을 입었음. 

4세기 전반 신라의 왕 파사이사금은 로마,사산조로부터 유리병을 수입하는데. 김해 대성동 세력으로부터 오는
모용선비,남중국 진晉의 서역 유리병들을 하사받음. 
파사이사금은 진한 연맹들의 다툼을 김해 대성동에게 중재를 요청할 정도로 당시 대성동의 힘이 강했음.

김해 대성동 세력 즉 임나任那는 4세기 중~후반에 세력을 크게 확장해나가서 
요서의 진평군과 왜국 사이를 잇는 해상교역루트를 독점하려고했음.
이에 분노한 포상팔국 즉 전라도의 침미다례 고해진과 경상도의 소국 가라7국들과 포상팔국 동맹을 형성하고 침미다례(신미新彌 여러 나라) 고해진국이 선봉에 서서 임나를 공격함. 
안라安羅 , 신라新羅의 도움으로 포상팔국 동맹이 격퇴됨. 
하지만 신라가 임나를 부용국으로 삼으려하자 임나는 신라에게 왕자를 인질로 보내서 신라를 기만시킨 후 
왜국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함. 임나가 갑옷 투구 무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왜국은 임나의 갑옷 투구 무기를 착용하고 
탁순국과 함께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의 석우로조분이사금(우류조부리지간) 정권을 멸망시킴. 
신라 수도 서라벌에서 석우로의 아내가 반란을 일으켜 서라벌에 설치된 왜국 대사관 YAMATO부府 MIYAKE官家를 파괴하고
왜국 대사를 죽임. 왜군이 다시 정벌오자 신라인들 스스로 석우로의 아내의 목을 자르고 항복함. 

백제는 왜倭 세력이 한반도 남부에서 크게 세력을 확장해가자 이에 두려움을 느껴 백제의 근초고 근구수가 스스로 
전라도에 옴. 그들은 왜국 장수들과 맹세를 하는데. 왜국을 평생 귀국貴國으로 모시기로 근초고 근구수가 맹서함.  
그리고 그 징표물로 칠지도, 칠자경을 제작하여 왜국에 바침.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침략과 마한인들의 반란에 시달렸음. 그래서 한반도 남부의 왜倭 세력을 모시는 형편으로 전락해버림. 

백제를 떠난 모용선비족 내물 메르겐(마립간)이 신라에 와서 신라에 자신의 왕조를 세우고 백제와 동맹을 맺음. 

그러자 왜군이 바다를 건너서 신라를 쳐서 왜국의 신민臣民으로 복속시킴. 

왜군은 백제로 가서 진사왕을 죽이고 아신왕을 백제의 왕으로 옹립시킴. 
아신왕은 숙부 진사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기위해, 백제의 호족 진씨眞氏 가문(하타씨)은 진사왕의 중앙집권정책에 
대항하기위해 왜倭 세력을 백제 안으로 끌어들였음. 
고구려는 백제가 왜倭의 신민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백제에서 왜倭 세력을 몰아내기위해 남침을 결정함. 
백제는 처절하게 격파당하고 수많은 백제 왕족,귀족,백성들이 담덕에게 북쪽 고구려로 납치당했음.

결국 아신왕은 복수를 위해 왜倭에게 왕자 전지를 인질로 바치면서까지 왜倭의 도움을 간절히 바랬음.

왜倭는 군사를 파견. 친고구려 정책을 하는 신라 수도 서라벌을 공격해 점령함. 
신라의 내물 메르겐 왕은 급히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함.
고구려 5만 대군이 서라벌로 와서 왜군을 격퇴하고 추격해 임나가라의 종발성 즉 부산 동래 복천동 고분을 정복하고
임나의 수도 염성(김해 대성동)까지 함락시키지만
안라安羅가 임나를 도와 고구려 5만 대군을 격퇴시킴.

모용선비가 마침 고구려의 땅을 침범해 신성 목저성을 뺏아가서 고구려 5만 대군은 황급히 북으로 돌아감.

전쟁터가 되어버린 백제를 탈출한 수많은 백제인들,가라인들이 임나任那를 거쳐 열도의 오사카로 망명옴.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를 탈출한 수많은 기술자 길드들과 백성들을 환영했고 그들은 오사카에 거주하며 
다양한 기술자 길드들을 조직해 개관농경법을 가르치고 투구 갑옷 무기 농기구를 철鐵로 제작해 바치고 
한자를 가르치고 심지어 승마술까지 가르치면서 야마토 정권의 엄청난 급격한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 

야마토 정권은 강해진 국력 덕택에 대형 전방후원분 왕릉을 축조하게됨.(오진릉, 닌토쿠릉)
야마토는 왜군을 중심으로 정벌군을 편성. 백제의 패잔병들을 규합시키고 고구려의 황해도 대방을 단독으로 공격하는
용맹무쌍한 군사 작전을 펼쳐 평양까지 위협했음. 

고구려는 모용선비와 싸우느라 바빴음. 
결국 신라 왕은 왕자 미사흔과 파진찬 모마리질지(박제상)를 야마토에 인질로 바치고 고구려에도 왕자를 인질로 바치며 
굴욕적인 처지로 전락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