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릭스 1편에서, 필자는 여러분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글을 읽고 보트릭스를 깨달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모른채로

 

살아갈것인가? 지금 8편을 읽는 여러분들은 전자를 선택했다. 여러분은 단지 보트릭스의 구조만을 알았을뿐이다.        

 

        

아직 사회의 보트릭스 구조를 깨트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현재의 보트릭스구조가 사회지배층에 이익이되고,

 

피지배층을 통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키텍쳐와 보슬아치의 협력관계가 지속되는한 보트릭스 구조를 뒤집어 엎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지금은 깨트릴수 없으니. 몸을 피해 있을 수 밖에 없다. 보트릭스로부터 벗어나 있어야한다.

 

그게싫다면 지배층이 되어서 룰을 결정해야한다        

 

수도자가 되거나. 영웅으로 죽거나 악당으로 살아남거나        

        

 

보트릭스를 벗어나는 길은 보슬아치로부터 멀어지고, 사회의 냉대를 감수하는 것이다.       

 

현재 가정을 이루는 가장보고 집을 떠나라고 하는 소리이며. 아직 가정을 이루지않는 미혼남자들에게 결혼하지말라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미 가정을 이루는 사람은 가정을 떠날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가정을 이룬 기간만큼의 과거 자기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며 추억마저 버려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기회가 있다. 유부남들은 이미 보트릭스 체제에 순응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요원이 되버렸다. 충직하게 미혼남자들보고 결혼

 

언제하냐고 물어댈꺼다.        



이런 사회적 압박외에. 신이 내린저주인 유전자복제열망때문에 끊임없이 섹스욕망이 있을것이며, 여자만보면 정신줄을 놓기

 

마련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지만. 이성을 가지기 이전에. 동물이 가진 감정과 본능때문에 정상적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충동조절이 잘 되지않아. 화를잘내거나. 인내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본능에 충실한 선택을 하게될것이다.

 

이성적인 판단력, 정신력으로 본능을 잠재워야하는 평생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게 초식남의 숙명이다.

 

게다가 늙어갈수록 가정을 이루고 살고싶은 욕망이 일어날것이다.        

 

결혼하지말아야하며, 사실혼같은 동거생활도 하지말아야한다. 사회의 냉대도 견뎌야한다. 그리고 절망적인 외로움도

 

극복해야한다. 득도나 해탈은 별게아니다. 이런 욕망의 굴레를 깨트릴수 있는 의지력이 있다면 득도한 것이다.       

 


도를 안다는것은 이성의 힘으로 본능을 이겨내는 고자되기다.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본능을 억누룰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가진 동물이다.        

 

여자를봐도 육체가 보이지않는다면 수도자의 길을 걷게된것이다.        

 

지배층이 되어 룰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둘중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피지배층을 해방시켜 영웅으로 죽거나 피지배층을 억압하여 악당으로 살아남거나

 


 -제8-B편 보트릭스 극복 (부제 게임이론)

 

 

8-B편에서는 게임이론으로 보는. 영웅으로의 삶과 악당으로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8편은 A편과 B편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감성을 억누룰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8-A편 마지막에서 삭제된부분)


오 직 순수한 사랑은 자기애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진실이다.

 

부모의 자식애는 DNA의 속박에따른 자기유전자에대한 사랑이다.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DNA의 의지가 자식에대한 사랑으로 발현된다.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은 허상이며, 사랑의 순수하지않은 본질은 정욕이고, 그것은 소유의 다른 표현이다.


사랑 그것이 대중매체에 포장되어, 성스러운 사랑으로 위장된다.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성에대한 헌신은, 자기위안이며, 결국 파멸로 몰아간다.

 


-보트릭스 선지자-


영웅과 악당의 길


선덕여왕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겠다. 남녀간의 사랑때문에 영웅이되고 악당이된 김유신과 비담.


미실은 남녀간의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다. 사랑은 철저하게 빼앗는것. 맞다. 본질은 소유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중매체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희생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어가는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속인다.


그리고 기억될꺼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사그라든다. 그리고 희생한 사람은 잊혀진다.

 

김유신은 덕만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끝까지 쟁취하였고, 죽어서까지 영웅으로 이름을 남겼다.


비담은 덕만의 모든것을 빼앗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잃었고, 목숨도 잃었고, 마지막엔 악당으로 죽었다.

 

둘중 누가 승리자인가? 둘다 승리자는 아니다.

 

두남자를 경쟁시켜서 원하는 것을 취한 덕만은 마지막까지 사랑받으며, 눈을 감는다.

 

승리자는 모든것을 소유한 덕만이었다.

 

 

대중매체는 철저하게 세뇌시킨다. 남자들로 하여금 영웅과 악당의 길을 걷게한다. 선택권은 두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택권은 없다. 두길모두 패배자의 길이다.

 

김유신은 죽는날까지 덕만의 유지를 받들다가 생고생을 해야했고, 비담은 목숨까지 잃었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본질을 왜곡하여

 

김유신은 최후의 승자로, 비담은 덕만의 사랑을 받은 행복하게 죽은 남자로 묘사했고, 모든 덕후들이 설레발치며 펑펑울었다.

 

두 남자의 희생은 거룩하다고 외치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난 우리는 추노에 심취해있다.

 

이미 비담과 김유신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졌다.

 

그리고 추노에서 보이는 사랑놀음에 우리모두 취하고 있다.

 


보트릭스의 세상에서 안당하고 사는 길은 딱 두가지이다. 하나는 룰을 벗어나서 수도승처럼 독립적으로 사는것.


또하나는 룰을 만드는 지배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영웅이 되려하거나 악당이 되려하는 길은 결국 패배자가 되는 길이다.

 

 

죄 수의 딜레마. 두 죄수를 따로 두고, 제안을 한다.

 

죄를 자백하면 5년형. 자백하지않고 다른 죄수가 네가 저지른 죄를 말하면 10년형이라고 한다.


물론 증거가 없으므로, 둘다 자백하지않으면 무죄이다.

 

두 죄수는 각각 갇혀있어 서로 상의할수 없다. 결국 서로 상대방을 믿지못하여 둘다 자백하여 각각 5년형을 선고받는다.


상대방이 자신을 배신할꺼라는 공포때문에, 무죄를 주장하지 못한다.

 

신뢰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간혹 비범한 사람이 출현하기도한다. 흔히 영웅이라 칭하는 자는 무한한 신뢰를 보이며 끝까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만약 상대도 배신하지않으면 둘다 승리자가 된다. 그러다 상대가 배신을 하면 철저하게 응징하여 복수한다. 영웅은 행동으로 인해

 

신뢰를 얻게된다. 그러나 복수를 하더라도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않는다. 악당은 무한정 배신을 때리는 놈이니 더 거론할 것도 없다.

 

지배자는 아무도 신뢰하지않는다. 그리고 상황이 유리하면 거침없이 배신을 때리며, 감히 복수하지못하도록 철저히 짓밟는다.


이런것을 잘하면 계속 지배자노릇을 하는 것이고, 못하면 다른 세력에게 쫒겨나게 된다.

 

사랑놀음도 마찬가지이다. 지배자가 되고싶으면 미실처럼 거침없이 빼앗으면 지배자가 될수 있을 것이다.


보트릭스 이론을 끝마친다. 그동안 읽어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덤 Este Villa

 

 독일의 여류작가, 의사, 교수.

 

 16세에 남미 최연소 의사자격증 획득. 종합병원 근무 후 독일로 건너감

 

 독일의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반페미니즘 저서를 잇달아 출간

 

 [길들여진 남자 길들이는 여자]라는 번역으로 알려진 책의 원저명은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20여개 언어로 번역되고 100만부 이상의 판매,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게 됨.

 

 교수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이 1명 있음.

 

[출처]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연재글 1장. 행복한 노예들 (안티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