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이어져있었다.






"부여夫餘 註 027  는 장성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현도玄菟에서 천 리쯤 떨어져 있다.

남쪽은 고구려高句驪와, 동쪽은 읍루挹婁와, 註 029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삼국지 부여전


"고구려高句麗 註 058  는 요동遼東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朝鮮(=낙랑군 조선현=평양) 註 059  

예맥濊貊과, 동쪽은 옥저沃沮와, 북쪽은 부여夫餘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환도丸都 註 060  의 아래에 도읍 하였는데" -삼국지 고구려전



"진秦나라가 천하天下를 통일한 뒤, 몽염蒙恬을 시켜서 장성長城을 쌓게 하여 요동遼東에까지 이르렀다.....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진한辰韓의] 노인들은 대대代代로 전傳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나라의 고역苦役(만리장성 공사)를 피하여 한국韓國으로 왔는데, 마한馬韓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낙랑樂浪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東方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아阿라 하였으니, 낙랑인樂浪人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삼국지 한전



"한韓 註 151  은 대방帶方 註 152  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한韓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註 153  둘째는 진한辰韓, 註 154  세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이다. ...

[한韓은] 한漢나라 때에는 낙랑군樂浪郡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朝謁하였다. ....

 [후한後漢의] 환제 桓帝·영제 靈帝 末期에는 한韓과 예濊 註 167  가 강성하여 [한漢의] 군郡·현縣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군현郡縣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韓國으로 유입되었다. 註 168

건안建安 연간(A.D.196~220; 百濟 肖古王 31~仇首王 7)에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帶方郡으로 만들고, 공손모公孫模·장창張敞 등을 파견하여 한漢의 유민遺民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한韓·예濊에 있던]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倭와 한韓은 드디어 대방帶方에 복속되었다."-삼국지 한전


"조선朝鮮 註 003  왕王 만滿 註 004  은 옛날 연燕나라 사람이다. 처음 연燕나라의 전성기全盛期로부터 註 005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朝鮮 註 006  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 註 007  를 쌓았다. 진秦이 연燕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遼東 註 008  외요外徼 註 009  에 소속시켰는데, 한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註 010  다시 요동의 옛 요새 註 011  를 수리하고  패수浿水 註 012  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燕에 복속시켰다.

 연왕燕王 노관盧綰 註 013  이 [한漢을] 배반하고 흉노匈奴로 들어가자 만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인千餘人을 모아 북상투에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동遼東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秦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鄣 註 014  에 살았다. 점차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의 만이蠻夷 및 옛 연燕·제齊의 망명자亡命者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王이 되었으며, 註 015 왕험王險 註 016  에 도읍을 정하였다."-사기 조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