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중국역사다.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이어져있엇다.





예맥족이 세운게 고구려부족국이다.


한무제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 멸망시키고 평양에 낙랑군 설치했다. (한서 조선전)


기원전 107년 함흥에 현토군 설치하고 고구려 부족국을 현縣으로 만들어 현토군에 소속시켰다.(후한서 고구려전)

그러다가 오랑캐 맥貊이 반란일으키고 테러질해서 할수없이 고구려현을 현토군의 수도로 삼았다.(삼국지 동이전)


서기전후 신新제국 왕망 때 고구려 왕은 제후 후侯로 고쳐부르게하고 고구려 왕 추모는 '추'라는 1글자 이름으로 축약시켰다

이게 신제국 천자 왕망이 실시한 정책이다. 

신제국 천자 왕망은 흉노를 정벌하기위해 현토군 고구려현에서 징병을 실시한다.

징병당해 끌려간 고구려 노예들은 흉노로 가기위해 만리장성 넘엇다가 다시 만리장성을 넘어서 요서로 도망가서 약탈질을 일삼았다.


신제국 천자 왕망이 이 무슨 짓이냐하고 화낫더니 주州 군郡 현縣이 전부 고구려 제후 '추'가 사주시킨거다라고 했다.

왕망의 신하 엄우는 흉노하고 싸우고 나라 안이 어수선한데 고구려 제후 추의 잘못을 용서해야한다며 변호하고 안그러면 부여와 고구려가 함께 들고일어나 

독립운동을 할수잇다고 설파했지만 왕망은 씹고 고구려후 추의 목을 베어오라고 시킨다.

그리고 고구려후 추가 엄우에게 유인당해서 고구려에 있던 진시황 만리장성에서 고구려후 추의 목을 따고 수도 장안으로 택배로 보냈다.

왕망은 기뻐하며 고高구려를 하下구려라 부르게햇다. 열받은 고구려는 현토군 고구려현을 때려부순다. 

(후한서 삼국지 고구려전 내용 , 후한서 왕망전 내용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하지만 그후로도 고구려는 현토군에 소속되어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 천자는 고구려가 중국 관모 관복 악기 받고싶다고 사정하니 

종래 고구려 부족장이 현토군 고구려현으로 와서 현령에게 관모 의복 악기를 받게했던 제도는 폐지하고

현토군과 고구려 사이에 책구루라는 성을 세워서 거기에 고구려 부족장 혹은 왕이 와서 중국 관모 관복 악기를 받아 가지고가게했다.


고구려는 한漢나라 문화에 심취해서 갑주 의복 건축도 한나라를 따라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한나라에 개겼다.


그러면서 힘을 길러 현토군에게 개기고 복종하고 개기고 복종하고를 밥먹듯 일삼았다. 

그러나 고구려는 힘이 너무 약해서 낙랑군 대방군(평양 황해도)으로는 테러 암살.  요동군 현토군을 대상으로는 약탈 전투 학살을 일삼았다.

그리고 튀어서 험준한 산악지형에 쌓아진 성城을 방어했다.

그러다가 위나라 b급 무장 관구검에게 잘못 걸려 개마무사 5천이 전멸하고 나라가 잠시 멸망당하고만다. 

그리고 얼마동안(3세기 중엽부터 4세기 초반까지) 철저한 중국의 속국이 된다.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이어져있었다.








고조선 멸망 후 평양에 낙랑군 설치. 함흥~고구려부족국 지역에 현토군 고구려현 설치 .






이 지도는 현토군의 고구려현을 축출한 고구려의 대중對中 항쟁 당시 지도



김진명같은 국뽕 말에 속지마라 고구려의 진짜 역사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지경에서부터 힘들게 끙야 끙야 하며 대중항쟁하면서 

기엇다 개겻다 발렷다 기엇다 개겻다 발렷다를 반복하다가 광개토란 능력자를 갑자기 배출해서 다 쓸어죽여버림. 












"부여夫餘 註 027  는 장성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현도玄菟에서 천 리쯤 떨어져 있다.

남쪽은 고구려高句驪와, 동쪽은 읍루挹婁와, 註 029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삼국지 부여전


"고구려高句麗 註 058  는 요동遼東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朝鮮(=낙랑군 조선현=평양) 註 059  

예맥濊貊과, 동쪽은 옥저沃沮와, 북쪽은 부여夫餘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환도丸都 註 060  의 아래에 도읍 하였는데" -삼국지 고구려전



"진秦나라가 천하天下를 통일한 뒤, 몽염蒙恬을 시켜서 장성長城을 쌓게 하여 요동遼東에까지 이르렀다.....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진한辰韓의] 노인들은 대대代代로 전傳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나라의 고역苦役(만리장성 공사)를 피하여 한국韓國으로 왔는데, 마한馬韓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낙랑樂浪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東方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아阿라 하였으니, 낙랑인樂浪人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삼국지 한전



"한韓 註 151  은 대방帶方 註 152  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한韓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註 153  둘째는 진한辰韓, 註 154  세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이다. ...

[한韓은] 한漢나라 때에는 낙랑군樂浪郡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朝謁하였다. ....

 [후한後漢의] 환제 桓帝·영제 靈帝 末期에는 한韓과 예濊 註 167  가 강성하여 [한漢의] 군郡·현縣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군현郡縣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韓國으로 유입되었다. 註 168

건안建安 연간(A.D.196~220; 百濟 肖古王 31~仇首王 7)에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帶方郡으로 만들고, 공손모公孫模·장창張敞 등을 파견하여 한漢의 유민遺民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한韓·예濊에 있던]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倭와 한韓은 드디어 대방帶方에 복속되었다."-삼국지 한전


"조선朝鮮 註 003  왕王 만滿 註 004  은 옛날 연燕나라 사람이다. 처음 연燕나라의 전성기全盛期로부터 註 005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朝鮮 註 006  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 註 007  를 쌓았다. 진秦이 연燕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遼東 註 008  외요外徼 註 009  에 소속시켰는데, 한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註 010  다시 요동의 옛 요새 註 011  를 수리하고  패수浿水 註 012  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燕에 복속시켰다.

 연왕燕王 노관盧綰 註 013  이 [한漢을] 배반하고 흉노匈奴로 들어가자 만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인千餘人을 모아 북상투에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동遼東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秦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鄣 註 014  에 살았다. 점차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의 만이蠻夷 및 옛 연燕·제齊의 망명자亡命者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王이 되었으며, 註 015 왕험王險 註 016  에 도읍을 정하였다."-사기 조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