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천하

 

1부-연재중단(連載中斷)편

 

진산월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북큐브를 향해 다가갔다.
인기검색어를 타고 천천히 마우스를 옮겼다.
덧글은 원래부터 이렇게 많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여기저기에 호갱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역력히 보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덧글을 달았다고 생각하니 그 능력에 경회심이 들 정도였다.
마우스를 조금 옮기자 하나의 공지(公知)가 보였다.
공지에는 관리자가 있었다.
진산월은 먼저 관리자를 향해 절을 했다.

"독자제현의 제자 진산월이 관리자의 허락도 없이 침입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용왕대전(22권)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눈앞에 실제로 관리자의 공지가 있다는 것이 달랐다.
관리자는 물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진산월은 큰 절을 올린 다음 공지로 다가갔다.
공지의 길이는 다섯 줄정도 되어있었는데 핑계가 많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진산월의 시선이 관리자가 쓴 공지로 향했다.
공지는 일견하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거의끝남-

 

실로 연재중단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허나 그 글자를 읽는 순간, 진산월은 안색이 대변하더니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독자제현의 이십일대 호갱 진산월이 공지를 뵈옵니다."

공지를 향해 삼고구배를 올리는 진산월의 표정에는 격동의 빛이 가득 담겨있었다.
거의끝남은 연재에서 오랫동안 비전되어 오던 핑계중 하나였다. 허나 지난 십여년간 강호에 나타나지않았다.
연재의 주인이 출판과 함께 신비스럽게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연재의 주인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책임강 강하다는 용노사였던 것이다.

용노사는 연재전에는 독자(讀者)들에게 지옥의 사신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그는 일단 화가 나면 글을 안 썼기 때문에 양손에서 잉크가 마를 날이 없었다.
나이를 먹어도 그 성정(性情)은 여전하여 일단 중단하게 되면 반드시 삼개월(三個月)은 보고야 말았다.
그의 별호는 용노사였지만, 사람들은 뒤에서 용노괴라고 불렀다.

 

연재중단의 명성은 좌백과 용대운이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쟁선계 이재일은 연재중단의 장문인답게 몇년째 글을 안썼으나 최근에는 다시 돌아왔으며 지존록 풍종호는 비록 설정의 당대제일고수였으나 본신의 실력은 두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다.
또한 막내인 강호기행록 이우형은 연중보다는 연단으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다.
허나 용노사의 인간성 자체는 유쾌하고 솔직했다. 다만 연중을 좋아했고 적당히 즐길 줄도 알았다.
좌백이 작품마다 연중을 해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 두사람은 연재중단의 실질적인 핵심들이었으며, 신무협의 고수들이었다.

그런 용노사의 공지가 일개월의 시공을 넘어 지금 진산월 앞에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 출판한다고 연중하여 빈손으로 돌아와야했던 진산월이 뒤이어 관리자의 공지를 발견하게 된것은 참으로 신의 교묘한 섭리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산월은 덧글을 수습했다.
그래 보았자 진정한 군림천하의 팬이라면 십년도 기다릴 수 도 있다. 창작의 고통을 아느냐. 보기 싫으면 보지마라 등이였지만 그래도 관리자의 공지를 실드 없이 놔둘수는 없었다.
그런데 관리자의 공지를 실드치던 중 진산월은 공지 밑에서 하나의 두툼한 글을 발견했다.

 

<작가님 말씀 바로가기>

 

작가님의 위엄을 느끼게 하는 글씨가 써져 있었다.


호갱인 진산월은 흥분을 억누르며 마우스를 눌렀다.

 

<미안하다.다 내탓이다. 그대가 호갱이라면 기꺼이 다음 장을 넘겨라. 그대가 호갱이 아니라면 동북방향을 향해 구배를 올린 후 다음 장을 넘겨라. 그도 저도 아니면 조용히 물러가라. 실드는 호갱만이 칠 수 있다.>

 

<창작고통(創作苦痛)>
창작의 고통은 오직 용노사만 느낄 수 있다.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니 좋은 실드가 될 수 있다.

<용두사미반대(龍頭蛇尾反對)>
대작이 용두사미가 되는건 결코 참을 수 없다. 십년이건 이 십년이건 기다릴 수 있다. 높은 퀄리티를 위해선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오사즉승리(惡寺則僧離)>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법. 징징거리고 욕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호갱이 아니다. 그들이 떠나는게 옳다.

 

적힌 비기들은 모두 아홉 개였다.
그 중 세개는 진산월도 이름만 들어보았던 것이고 나머지는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창작고통은 구결을 읽어보기만 해도 자신이 칠 수 있는 실드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반적인 실드가 수비를 위한 무공이라면 창작고통은 공격을 위한 무공이었다. 묘용(妙用)을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그 위력은 능히 배가 될 터였다.

 

 

 

 

 

중략

 

 

 

 


연재중단에 들어간 지도 세 달이 넘었다.
그동안 덧글은 만구천개가 넘었고 진산월은 전심전력으로 실드를 익히는데 주력했다.
진산월은 자신의 실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공력을 끌어올려 키배를 하면 삭제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키보드에 진기를 주입시키지 않고 약한 실드만 반복해서 달았다.
몇달동안 고련끝에 진산월이 생각하기에도 실드 자체는 상당히 매끄러워져있었다.
허나 실드 각각의 변화와 뜻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했다.

 

실드중에 용두사미반대나 오사즉승리 같은 초식은 진산월이 평소에도 즐겨 사용하는 초식들이었다.
하나 용노사의 동정(同情)말씀에 적혀 있는 초식은 그 변화나 효용이 전혀 달랐다.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길게 쓸수도 단순화 시킬 수도 있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북큐브에 접속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실드 몇개 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저녁에 그는 자신이 모든 실드를 다 터득했음을 알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떤 실드를 칠 수있을지 다 떠올랐다.
손을 내밀어 무의식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르니 눈살이 찌푸려지는 욕설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진산월은 황급히 덧글을 삭제했다.
자칫하면 젊잖은 진정한 군림천하의 팬 이미지에 손상이 갈 뻔했던 것이다.

 

그는 도해를 펼쳤다.

<공지, 변하다.그 흐름은 내가 정하고, 형태는 안개와 같으며, 기세는 바람과 같다.>
<공지, 변하다.날짜는 계속 바뀌고 핑계는 뇌전과 같으며, 그 도도함은 바다와 같다.>
<공지, 변하지 않는다.....>

이건 무슨 무공구결이아니라 시구를 읽는 것 같았다.
이런 난해한 미완의 도해를 진산월은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진산월의 일과도 언제나 똑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북큐브에 접속한다음 새로운 공지나 연재가 있나 본다음 덧글을 읽는다.
덧글을 읽고 난 다음부터는 자신의 생각을 덧글로 단다.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하고 용화소축에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대로 갔다가는 선비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끝끝내 눌러 참을 수 있었다.
진산월은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며 하루하루 전력을 기울였다.

 

<공지, 변하다.그 흐름은 내가 정하고, 형태는 안개와 같으며, 기세는 바람과 같다.>
<공지, 변하다.날짜는 계속 바뀌고 핑계는 뇌전과 같으며, 그 도도함은 바다와 같다.>
<공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연재는 용노사가 한다.>

진산월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진리를 알아냈지만 별다른 감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공지에 갖은 핑계가 있고 약속 날짜가 매번 바뀌어도 결국엔 용노사가 모든걸 결정하는 것이었다.
진산월의 머리 속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화소축과 용노사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냈다.
결국엔 내 마음대로라는 자부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 실드 덧글 열 여덟개를 동시에 달 수 있다면 능히 덧글로 북큐브를 평정할 수 있다!

 

용노사의 자신에 찬 음성이 귓전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진산월은 키보드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진정한 군림천하의 팬이다"

 

진정한 군림천하의 팬!

항차 무갤을 경악에 떨게 하고 연중에 목말라 있는 독자들에게 꿈과 동경을 심어준 무적의 실드는 이렇게 탄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