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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의 분위기는 침통하여 마치 누군가의 인생이 종말을 맞이하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듯하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은 모두 하나같이 낮빛이 어둡고 한숨이 간간히 새어나왔으나

누구도 감히 먼저 입을 열기를 두려워하는것 같았다


그들의 얼굴은 상석에 앉아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조금전 들어온 소식을 들은 후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과

무관하지 않아보였다


무거운 공기속에 여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더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신녀께서는 이 일을 진정 모르고 계셨습니까?"


중년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여인의 맹호와도 같은 강렬한 눈빛이 중년인의 얼굴을 향했다.


"지금 본녀를 의심하고 계신건가요?"


여인의 목소리는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같은 청아하고 맑은 음색이었으나 왠지모르게 심혼이 흔들리는 듯한 마력이 깃들어있었다.

장내에 앉은 다른 인물들도 중년인을 쏘아보며 경솔한 발언에 대한 무언의 책망을 가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눈빛에는 책망이외에도 중년인처럼 무언가 한줄기 의심을 숨기지 않은듯 조심스러운 빛이 내비치고 있었다.


"사태는 칠주야 전과는 비교도 할수없을만큼 어려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신녀께서 저들을 달래주셔야 합니다."


중년인은 장내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지 신녀라고 불리는 여인에게 충언을 서슴지 않았다.


" 자네는 이 사달을 신녀의 말씀 한마디로 잠재울수 있을거라 진심으로 믿고 있는건가?"


중년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긴 수염의 흑의인은 중년인의 생각이 순진하고 어리석다 생각하는지 그의 방책에 이론을 표했으나

중년인을 보고 있어서인지 흑의인이 발언한 직후 신녀의 표독스러운 눈빛이 그를 향했던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하질않나. 이미 저들 무지몽매한 무리들의 요구는 우리 모두에게 향해있는 것을 잊지 마시게."


흑의인은 그 말에 당장 반박하려 입을 열었으나 장내에 있는 인물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듯

더는 발언하지 못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사태는 너무도 위험한지경에 와있습니다. 신녀. 저희들도 신녀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중년인의 말에는 신녀에 대한 의혹과 함께 그래도 신녀에 대한 한줄기 믿음까지 담겨있어서 짐짓 기분이 상한듯한 신녀도

불같이 화를 내어 나무랄 수 없었다.


"나는...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나는 처음 무예계에 발을 들이면서 다른 선후배 고수들의 필적을 연구해왔지요.

 그 중에서도 한가 성을 쓰는 절정고수의 무공은 나를 매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어요. 허나 그뿐이랍니다."


신녀의 말에는 서책을 쓴 자신조차 어째서 한가 성을 쓰는 고수의 무공이 그대로 쓰여있을 수있는 지 그 원인을 알수없어

곤혹스러운 기색이 만연했다. 신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그간의 찬란한 행적이 함께하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을 받는 충의지사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였다.


"신녀의 말씀을 의심하는 무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 저 새외 악적들의 음해에 불과한 것이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신녀의 슬퍼하는 모습에 심동이 일었는지 제법 살집이 두툽한 노인이 신녀를 두둔하고 나섰다.


"대저 악곡을 짓는 악사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독문악곡이라 생각했던 것이 북경에도 있고 항주에도 있다더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다른 무리들도 신녀의 진노를 피하고자 작정한 것인지 전혀다른 계통의 사례까지 언급하며 신녀를 두둔하였으나

장내의 모든 무리가 악곡을 짓는 무리와 자신들의 경우가 천양지차로 다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저도 무척 곤혹스럽답니다. 정말 한씨 성의 고수님이 빙의라도 한 것 일까요? 그간의 제 모든것이 의심스러울 뿐이에요."


의혹을 받는 신녀자신이 자신을 의심스럽다 말하기까지 하니 장내의 심약한 인물들은 그녀가 한가 성의 고수의 독문무공을 훔쳤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녀의 구슬픈 목소리에는 물기가 스며있어서 당장이라고 고운 눈가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릴것만 같아

그녀에 대한 무공도적질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마두로 낙인찍힐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게 다 그 악적놈들이 신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오. 특히나 아해라는 놈이 모든 사달의 주범이 아니오?"


긴 수염 흑의인은 조금전까지 신녀에게 의혹을 눈빛을 던졌으나 이미 신녀의 말에 감화되었는지 모든 일의 시작점인 새외악적에게

분노를 향했다.

아해라는 악적은 한가 고수를 추종하는 젊은 무인이어서 무려 한가 고수의 무공서를 오십여회나 읽었다는 무지막지한 놈이었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할 필요는 없소. 중요한 것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여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느냐 하는 것이지."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백의경장의 청년의 발언에 장내의 모든 인물이 공감한 것인지 악적무리에 대한 성토회는 마감하고 말았다.


"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 서상회(書箱會)에 의혹의 눈길이 향하고 있다는 것이오. 일단 신녀의 이름으로 공지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발언의 내용은 응당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으니 이론을 표하는 자는 없었느나 이미 칠주야나 지나서 공지를 하려니

서상회의 존엄한 체면이 상당히 깍여나갈것은 자명한 일이라 침통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공지는 어떤 내용으로 해야 좋겠소? 저 무리들은 이미 신녀가 무공절도범이라 단언하고 있소이다."


"신녀께서도 빙의가 된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이니 신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순리라보오.

 신녀는 자신의 독문무공을 펼치신것 뿐이거늘 모든 것은 우연이지 않소?"



'흥 그것을 과연 그들이 믿어주겠는가? 듣고 있는 나조차 어처구니가 없거늘...'


장내에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 다수의 인물들의 속마음이 여과없이 들리는 듯한 숨소리가 이어졌으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것으로 되겠소? 신녀의 성명으로 모든일이 사그러든다면 좋겠으나 저 악적놈들은 우리 서상회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소.

 우리가 칠주야나 허비하는 동안 저들은 신녀의 무공도적질을 확정하고 신녀의 무공을 구입한 모든 금전을 돌려내라 하고 있단 말이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사태를 주시하던 홍의인은 자신들이 피땀흘려 일으킨 서상회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발언은 간접적으로 신녀의 무공도적질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으나

장내에 모인 모든 인물들은 신녀의 추종자라기 보다는 서상회의 간부들이었으니 신녀의 범죄행위보다는 자신들의 손해가 더 중요했다.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가는 엄청난 손해를 볼거요. 당장 신녀의 낙월소검법이 은자 삼만냥인데 구입한 자들의 숫자는 기천에 이르오.

 이를 전부 보상했다가는 우리 서상회는 헌책을 사들일 여력조차 남지 않을 것이오."


그말에 다들 공감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볼 방도조차 찾을 수 없자 침울한 정적만이 장내를 휘돌았다.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신녀의 해명은 반드시 있어야하오. 저들은 이미 서상회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단말이오."


"신녀의 해명공지부터 해야겠습니다. 최대한 솔직하고 심금을 울리는 내용으로 작성한다면 신도들이 목숨을 걸고 악적들을 막아줄것이오."


중년인의 기대는 이미 뿌리부터 허물어져 신녀의 충실한 신도들조차 신녀를 떠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였으나

어디에나 올바른 상황판단력이 부족한 인물들은 있으므로 아주 정신나간 소리는 아닌지라 반박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것도 미봉책이오. 신녀의 해명과 유감표명만으로는 저들의 거센 분노를 달랠수없을 거요."


냉정한 얼굴의 백의인이 그렇게 말하고 나자 다시 장내는 침묵이 지배하고 말았다. 사실 어떤 해결책을 들고온다하더라도

악적무리들을 설득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신녀의 무공도적질은 다른 파렴치한 일부 무공서 저자들의 흉내내기에 그치지 않고 한가고수의 진신무공과 완벽하게 같았기에

악적들의 분노는 다른 어떤 저자들의 의혹이 있었을 때보다 거셀수밖에 없던것이다.


장내에 침묵이 퍼지다 못해 숨소리조차 막혀나가고 있을때

서상회 장로들의 대응책을 눈감은채로 가만히 듣고 있던 빙의신녀가 굳건한 의지가 가득한 눈을 뜨며 말했다.


"내게 방도가 있을지도 몰라요."


"?! 정말입니까 신녀! 대체 어떻게...."


노인이 신녀의 말을 끊으며 재촉을 하자 다른 서상회 장로들의 빈축을 샀으나 다른 장로들도 신녀의 입에 집중하였다.


"그것은.....우리가 한씨 성의 고수를 찾아 내어 그의 입으로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에요."


"!!!!"

확실히 한가 고수의 한마디만 있다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것이다.

설령 한가 고수의 사전허락이 있다해도 신녀에 대한 질타는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서상회는 피해를 받지 않을 것이기에

서상회의 장로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내심을 공유했다.

장로들은 신녀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감탄하면서도 가능성이 희박해보이는 신녀의 방책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녀. 한씨 성의 고수는 행적이 묘연하여 신룡과 같은 인물이라 누구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가 고수의 추종자들조차 그를 찾지 못해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한씨 성을 쓰는 절정고수는 얼마전 그의 새로운 색공절학을 선보인뒤로 이유를 알수없는 행방불명상태여서

그가 잠적했다는 말부터 그의 본업이라고 알려진 성균관 전속 의원일이 바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난무하고 있던것이다.

그를 찾는 일은 지난할 것이나 찾기만 한다면 모든것을 어둠에 덮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래도 우리는 찾아야 해요. 한가 고수의 한마디만 있으면 봄날에 눈녹듯이 모든 의혹이 녹아없어질 것이에요.

 신룡과 같다는 그라고 해도 서역의 초절정고수였던 본녀의 부름에는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