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는 괜찮았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고봉팔이라는 인물이 일반적인 무림의 상식과 다른 관점을 이용해 우위에 선다는 초반의 전개는 괜찮은 개그 무협인 것 같다는 인상을 을 준다. 주인공을 제외한 인물들의 지적 수준이 심하게 낮아보인다든가 사실 주인공이 무공의 문외한이 아니라 고수였다든가 하는 점은 감점 요소지만.


전반적인 전개도 나쁘진 않다.

별볼일 없어 보이는 일이 큰 일로 이어지는 과정이 거슬리지 않게 이어진다. 

복선도 적당히 깔아놓고, 결말도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작품을 깔 수밖에 없다. 인물들이 너무 작위적이거든.

김정은이 "갓조국 만세!" 하거나, 조갑제가 "단언컨대 북한은 가장 완벽한 국가입니다." 같은 소리를 하면 기분이 어떨까?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게 그런 기분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설정과 개성이 있으면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데, 전개를 위해 너무 작위적으로 행동해.


몇가지 예를 들어본다.

남궁 뭐시기인가 하는 계집애는 고봉팔에게 반해서 쫓아다니는데, 그때 기분 따라 고봉팔을 엿먹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관성이 전혀 없을 뿐이지 절대로 입체적인 캐릭터 같은게 아니다. 그냥 작중 전개 상 고봉팔이 위기에 처할 필요가 있으면 엿먹이는거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스토킹만 하는 거다.


무림맹주는 고봉팔을 무림맹의 일에 끌어들인 장본인인데, 사실 고봉팔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고봉팔을 잡는 사람이 절대적인 우위를 갖게 되는 상황에서 고봉팔을 아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예전 사건에 대한 몇가지 단서를 주고 그냥 놔준다. 왜 그랬는지 딱히 설명은 안 나온다. 그야말로 작위적인 행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캐릭터의 무위도 작중 전개의 편의에 맞추어 굉장히 들쭉날쭉하게 변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흑막은 사실 고봉팔의 인생 전체를 조종한 장본인이고, 엄청나게 똑똑해서 뜻대로 풀리지 않은 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놈의 최종 목표는 고봉팔의 진짜 기억을 되찾는 건데, 그 방법이 고봉팔의 강신귀공(일종의 빙의술이다)을 폭주시켜서 그걸 극복하게 하거나, 아니면 폭주한 상태에서 제압해서 강제로 극복하게 하는 거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점은 고봉팔이 뭘 빙의시키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가 막판에 허겁지겁 막으려 든다는 점이다. 흑막 본인도 강신귀공에 조예가 있고, 심지어 고봉팔이 빙의시킨 대상이 자기가 아는 놈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럴까? 뻔하지. 흑막이 참회해야 하는데 전부 다 알고 있었다고 하면 그러기 힘드니까 앞뒤가 안 맞는 설정을 넣은 거다.


마지막으로 고봉팔 본인의 설정도 어설프다.

용비불패를 본 사람이라면 고봉팔을 보고 용비를 떠올리지 않기 어려울 거다. 과거에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는 특수 부대의 대장이었고, 그 부대가 버림받을 때 살아남은 극소수 중 하나이며, 그 시절과 관계된 어딘가에 돈을 보내주고 있고, 고의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문제는 용비와 달리 고봉팔은 저런 설정이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다. 과거 따로 현재 따로 놀아서 읽는 내내 거슬렸다.

내 생각엔 고봉팔의 설정이 도중에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작중에 강신귀공은 귀신의 힘이 육체에 영향을 미쳐서 수명도 줄고 육체에 부담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많이 쓰기 힘들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1권인가 2권인가 정도에는 고봉팔이 강신귀공을 쓸 때 외워야 하는 주문이 쪽팔려서 쓰기 싫다는 소리를 하거든.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 거라서 대외적인 변명일 가능성도 없고.



전체적으로, 무림해결사 고봉팔은 괜찮은 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작 이상으로는 봐줄 수 없다.

작가가 소재를 충분히 다듬지 않고 냈다는 느낌이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