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글 속에서 협의라는 기치를 찾아볼 수는 없다.
다만 칼밥 먹고 사는 날카롭게 선 이들의 협잡과 모략, 처절한 생존에의 사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웃기지만 웃지 못할 처절한 웃음들
그의 글을 처음 봤을 때,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이 좋았었다.
'양각양'으로 한국 무협계에 충격적인 데뷔를 한 한상운의 마지막 장편 무협은 '무림사계'이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쓰고 떠난 이 장편 무협소설은, 기존의 그의 글과는 궤를 달리한다.
(방송작가나 현대소설류는 계속 쓰고 있지만, 장편무협은 08년 무림사계 이후로는 전혀 쓰지 않았다. 다만 단편은 가끔 썼다... 요즘은 그마저도 끊겼지만)
양각양, 비정강호, 무림맹연쇄살인사건, 신체강탈자, 도살객잔, 독비객, 특공무림...
독비객과 특공무림을 제외한다면 그의 글 속에는 음울함이 가득하다. 친구의 뒤통수에 칼을 꽂아 넣으려고 하고, 도움을 주는 듯한 이들은 알고 보면 모두 적들인 그러한 글들... 그나마 좀 가벼운 독비객조차 아비와 아들의 골육상쟁이 나올 정도이니 말 다했다 싶다.
그랬던 글을 썻던 그일진데, 무림사계에서는 무림을 보는 그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가볍게 쓴 특공무림에서조차 소림사 장문을 무림에서 뼈가 굵은 스님 탈을 쓴 조직폭력배처럼 묘사하지만,
무림사계에서의 소림 승려들은 武俠, 협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이들로 그려진다.
무림을 쓸어버리려는 적에 맞서, 소장문인까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적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과 제법 친했던 소림승 '원호'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과연 이게 한상운이라는 사람이 쓴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보여준다.
돈받고 싸우는 낭인 검사, 승부사의 세계에서 세번째로 손꼽히던 도간호 조범, 그게 그의 과거이다.
승부사의 세계는 냉정하다.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죽게되거나, 병신이 된다.
승부사로 이름을 날리던 날 중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 저수지의 물을 어느 논에 먼저 대느냐를 두고 분쟁이 일어난 마을에 그가 고용된다.
고용된 곳에 도착해보니 그곳은 자신이 열 살 때 집을 나왔던 고향 마을, 지주에게 고용되어 상대방을 무릎 꿇린 뒤,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한 할머니의 시선을 느낀다. 저수지 문을 걸어잠군 지주와 맞서 싸우던 이들 중에 섞여 있던 그의 어머니였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조범은 부끄러워졌다. '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건가?'
도간호 조범은 그 후 단신으로 백여명에 가까운 지주의 하인들을 물리치고 저수지의 수문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협객행을 벌이다가 소림에 투신하여 원호가 되었다.
주인공 담진현은 처음에 그를 보며 '무림에 적이 많아져 소림에 들어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중이 되었던 것이다.
주인공을 도와 주다 죽어간 원호는 진정한 협객이었다.
주인공에 대한 그의 묘사도 살펴볼 만 하다.
그는 나쁜놈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귀찮은 일을 피하려다 보니', '책임감을 안지려다 보니'
어느 순간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되었다.
자신이 벗어나려고만 하면 언제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았고,
해결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하면 할수록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결국 나중에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도망가지고 않고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왜 기존의 자신의 글들과는 다른 이러한 글을 썼을까?
나는 작가의 나이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작가가 음울한 분위기의 글들을 썻을 때는, 주로 20대 시절이었을 때다.
사회에 한창 불만이 많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될 것 같은, 그러한 암울한 생각에 빠져 있을 시기
시대적 상황(IMF 직후)을 생각하면, 1997~8년 쯤 출판된 양각양은 그렇게 심하게 암울한 것 만도 아닐테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고, 하고싶은 것만 하고싶던 작가는 어느덧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꾸리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할 나이가 되었다.
우수한 대학 취직 잘되는 학과를 나왔음에도,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피해 하고싶은것을 좇았던 작가는, 결국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부딪히게 되었을 것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근사해 보일지는 몰라도, 배고프기 그지 없는 직업이다. 특히나 그가 좋아했던 무협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마주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작가의 글은 언제나 시대상과 함께 자신을 투영한다고 했다.
무림사계의 주인공 담진현은 어쩌면 한상운 자신을 그린 것은 아닐까?
무림사계에서 담진현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앞으로 한걸음을 내딪으며 글은 끝난다.
그리고 장편무협계에서 작가 한상운의 자취는 6년째 찾을 수가 없다.
이러한 일들이 나는 우연이라고만은 생각치 않는다.
그는 현대소설 작가로, 방송드라마 및 영화 작가로 여러 가지 글들을 쓰고 있다.
그가 작업한 대본이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되는 것을 보며 예전 그의 글들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무협작가 한상운의 글이 다시 쓰여지는 그 날이 고대된다.
두서없고 쓸데없는 감상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무협갤러리에서 놀던 생각도 나고, 책장에 꼽혀 있던 무협책들을 정리하며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글 솜씨가 모잘라 머릿 속에, 가슴 속에서 쓰고 싶던 글과는 조금 다른 글이 쓰여졌네요...
정독했는데 구구절절하게 잘 느끼고 쓴 감상문 같아 읽기에도 좋네
조흔 감상글이다
괜츈한 글 다른 작가들도 좀 써봐라
하..한상운
길지도 않고 무슨말이 하고 싶은지도 딱 보인다 쩐당
잘 쓰셨네요
잘썼다
무림사계는 내 인생 최고의 무협지다.
개인적으로 무림사계 이전의 작품인 '비정강호'나 그 이후에 나온 스릴러 소설 '게임의 왕'도 인생의 갈피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잉여인간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자신의 실제를 정면으로 마주치고 결국 그 실제를 극복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주제를 갖고 잇다고 봄
무림사계봐야겤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