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독청이라고 했다.
그는 검정일색의 경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춤의 검대에는 짤막한 검을 차고 있었다. 단정한 이목구비에는 표정이 없어 얼음으로 깎은 것 같았다. 중키에, 조금 가는 체형을 가진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서 있는 자세와 손의 굳은살, 시선의 움직임과 호흡의 완급을 보아하니 제법 쾌검을 수련한 듯 했다. 옷에는 먼지가 없지만 옷감은 싸구려다. 흙이 묻지 않았지만 신발도 낡았다. 영흥루(英興樓)의 3층까지 소란없이 올라왔다. 보기와 달리 재력이나 무력을 소유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철협은 독청을 힐끗 스쳐보는 것으로 관찰을 마쳤다. 빠르게 관심을 잃어버린 그는 죽엽청을 쭈욱 들이켰다.
철협과 그의 두 친구는 독청을 무시하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위의 손님들이 예상했던 큰 호통이나, 흉흉한 무력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주탁에 단도를 박아넣은 행패에 비하면 얌전한 대응이었다. 이곳이 영흥루라서 더욱 그러하고, 영흥루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영흥루는 무림인들이 즐겨찾는 주루였다. 하오문의 분타였기 때문이다.
꽝, 하며 단도가 박히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던 점소이들이 끼어들려 했으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한 일행의 행동에 개입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3층의 다른이들도 다시 자신들의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들의 귀는 여전히 독청에게 집중하고 있을 것이었다.
독청은 가만히 서서 일행의 술자리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죽엽청이 바닥나고, 점소이가 다음 죽엽청을 가져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일행은 말이 없었지만 독청이 나타난 후로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군자검은 불쾌한 내색도 않고 잔에 술을 따랐다. 철협은 느릿하게 술을 받아 마셨다.
친구들이 가만히 있기 때문에 섬서일검도 참고 있었다.
"무슨 용건이냐?"
"너는 빠져라."
섬서일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섬서성에서 으뜸의 검객으로 추앙받는 사람이었다. 동년배 중에서는 천하에서도 으뜸이었다. 그보다 20년은 어려보이는 애송이에게 이토록 짧고, 건방진 대답을 들었던 경험이 없었다.
"나는 독청이다." 라는 말과 함께 주탁에 단도를 박았을 때부터 눈치챘던 것인데, 섬서일검은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이 애송이는 살고싶다는 욕구가 결여되어 있다.
"나는 군자검을 죽이러 왔다."
애송이가 또다시 나불거렸다. 섬서일검이 손을 쓰려는 순간 군자검이 멀뚱하게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를 찾아왔는가?"
섬서일검은 다시 한번 참았다.
"일단 자리에 앉는 것이 어떤가?"
군자검은 태연하게도 독청에게 남은 자리를 권했다. 철협은 애송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무심하게 술을 마셨고, 군자검의 목소리에는 한푼의 노기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독청이란 녀석에게 호기심마저 느끼는 모양이었다. '원래 이런 친구들이었지'하며 섬서일검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싫다."
"내게 원한이 있는가?"
독청이 품에서 도전장으로 보이는 서찰을 꺼냈다. 섬서일검은 '저런게 있으면 진작 내놓았으면 될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으나, 군자검은 빙긋 웃으며 서찰을 받아 갈무리할 뿐이었다.
독청은 서찰을 전하자마자 등을 돌려 뚜벅뚜벅 사라져버렸다. 3층의 손님들은 이런 흥미로운 사건에 들뜬 모양이었다. 몇 명인가는 독청을 뒤쫓아가기도 했다. 무림인들은 대체로 싸움구경을 좋아했다.
"태현, 무슨 꿍꿍이인가?"
빙긋 웃는 남자, 이름은 양문혁이고 호를 군자검이라 하는 남자의 자는 태현이라 했다. 그가 웃을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능글맞음이 얄미울 정도라, 언쟁이라도 할라치면 언제나 섬서일검이 흥분하여 안달하곤 하였다.
"그 친구 참 명필이구만."
군자검은 어느새 독청이 남긴 서찰을 펼쳐보며 허허거리고 있었다.
"강하다."
철협 신웅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첫번째 발언이었다. 철협은 다시 죽엽청을 들이켰다.
*****
섬서일검 조휘가 이들과 사귄지도 벌써 5년째였다.
처음에 그가 철협을 만났던 것은 절강성의 산음(山陰)이었다. 경호(鏡湖)의 경치를 구경하던 섬서일검과, 색마를 쫓아 2개월을 추적한 철협이 맞붙게 된 것이다.
사천땅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철협이 절강에 이르도록 색마를 잡지 못한 일과, 천하의 명승지를 유람하는 취미가 있는 섬서일검이 그때까지 철협과 아무런 안면이 없었던 일, 그리고 철협이 섬서일검을 색마라 오인하게 되었던 모든 일들은 지독한 우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둘을 중재한 것이 군자검이었다. 그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알려진 색마 '천면음'을 잡으며 화려하게 강호에 등장했다.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의 천면음을 보며 섬서일검은 분통을 터뜨리고는 웃고 말았다.
그런 사연으로 만난 세 노총각들이 어느덧 말을 트게 되고, 친구가 되고, 협행을 하며 함께 떠도는 데에는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그들이 만난지 5년이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이야말로 샌님같은 군자검과 딱딱한 철협을 고주망태로 만들어버리려던 섬서일검의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독청이라는 자가 건네준 서찰은 예상대로 도전장이었다. 그것도 군자검 혼자서 나오기를 원하는 내용이었다. 도전대로 홀로 가겠다는 군자검을 극구 만류한 것은 섬서일검이었다.
그 미심쩍은 애송이가 무슨 꿍꿍이를 부렸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다. 그리고 그 애송이에게 직접 본때를 보이고 싶다는 것이 내심이었다. 군자검이 나서는 이상 그의 차례까지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뒹구는 꼴은 구경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군자검 양문혁의 검은 절세의 중검(重劍)이었고 결코 상대를 베지 않는 자비의 검이기도 했으니, 애송이에게 섬서일검 자신의 설교를 받을 기력은 남겨둘 것이라는 속셈이었다.
그 둘이 나서자 자연스럽게 철협도 따라오게 되었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모양새를 보면 정체도 모르는 애송이를 상대로 강호에 이름높은 기협삼검이 총출동한 것이다. 독청이 지목한 공터에 가까울수록 섬서일검에게 일종의 낭패감이 들기 시작한 이유였다.
도전장에 적혀있는 아름드리 고목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독청은 오솔길과 고목이 마주하는 정면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분하다고도, 싸늘하다고도 할 수 있을 묘한 표정이었다.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얇고 붉은 입술을 꾹 다물고 일행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한걸음 두걸음 다가갈수록 독청이 갈무리하고 있는 무형의 살기가 찌를듯이 일행을 자극했다.
그 기도에 일행은 독청을 새삼 인정하게 되었다. 섬서일검은 이 애송이가 잘생겼다는 것까지 인정했다. 그는 독청이란 청년의 외모에 대해서는 조금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왔군."
그러나 참으로 버르장머리를 찾기 어려운 애송이다.
철협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근처에 숨어있는 일당은 없는 모양이었다. 무력의 강약을 떠나서 철협의 이목은 무림에서 손꼽히는 것이었으니 언제나처럼 믿을 수 있었다. 섬서일검은 몇몇의 시선을 느꼈으나, 영흥루에서 그들을 따라온 무림인들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여기는 이목이 드문 곳이 아니었다. 어쩌면 행인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독청은 그리고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서서히 기세를 일으키는 것이 말없이 곧장 쳐들어올 모습이었다. 과연 예의도 절차도 모르는 자다.
군자검이 대답했다.
"오해할까 말하는 것인데, 오늘 이 친구들은 참관인의 자격으로 함께한 것이네."
군자검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서고, 철협과 섬서일검은 뒤로 비켜서 일행은 품(品)자 형으로 독청과 마주하게 되었다.
"신경쓰지 않는다."
젊은이가 오만하게 대꾸하며 덧붙인다.
"네가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테니까. 상관정!"
군자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례한 상대의 언사 때문인지, 상관정이란 이름으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허어, 하고 탄식을 했다.
"무슨 착오가 있는 것 같네만?"
별안간 흥분한 독청이 부르짖었다.
"내가! 내가 네놈을 어찌 잘못 볼 수 있단 말이냐! 내 누이를 죽인 네놈을? 네 약지의 흉터가 선명하지 않느냐!"
군자검의 오른손 약지에는 흐릿하게 베인 흉터가 있었다. 평범한 관찰력으로 발견할 수 있는 선명한 흉터는 아니었다. 그 흉터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으며, 1년 안에는 자취를 감출, 그런 미미한 흔적일 뿐이었다.
"상관정! 내 이름을 잊었느냐?"
군자검이 혀를 찼다. 억지도 이쯤 되고보면 무시하기 어렵다, 아니면 정말 악독하리만치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는 설득을 포기했다.
어이없어하는 그를 위해 철협이 입을 열었다.
"그 흉터는 5년전 '천면음'을 상대하다가 생긴 것이다. 천면음이란 이름은 들어봤겠지."
들어봤겠지, 라는 사족은 철협 나름의 배려였다. 눈앞의 젊은 도전자는 강호와 무림이라는 것을 거의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서일검이 괜히 덧붙였다. 저 애송이에게 무언가 쏘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혈기는 이해한다만, 도전상대와 방법의 선정은 최악.."
"도전이 아니라! 복수다!"
막무가내인 독청의 행패에 그들은 아연한 기분이었다. 특히 말이 도중에 끊겨버린 섬서일검의 기분은 더욱 좋지 않았다.
어쨌든 상대는 진심으로 덤비려는 것이기에 군자검에게도 흐트러진 심기를 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섬서일검이 반쯤은 짜증을 담아 몰아붙였다.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이냐? 뭐를 제대로 알아보고 덤비는거냐?"
"나는!"
"복수라는 말의 무게를 책임질 수 있느냐?"
"...복수를 완결지은 자가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나를 설득하려 하지마라."
단호한 독청의 말에 '복수는 허망한 것' 운운 말하려던 군자검은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도 복수의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쩡히 서서 칼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기억..."
독청이 허리춤의 낡은 검을 뽑았다. 길이가 두자 남짓한 소검이었으나, 뽑히는 순간 검신에 휘황한 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이 결코 얕볼 수 있는 병기가 아니었다.
도전자가 눈을 빛내며 순식간에 접근한다. 가벼운 병기임을 무시하고 독청은 머리 위에서 사선을 그으며 놀라운 속도로 검을 내려쳤다. 군자검은 당황하지 않고 발검해 십(十)자 형태로 병기를 맞부딪혀 갔으나 그 기세와 힘에 있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챙! 검과 검이 부딪치며 그의 애검에 이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의 귓가에 독청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너는 죽는단 말이다...."
"자네, 사람 잘못 봤네."
짧은 글인데 잘릴까봐 나눠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