傲 氣 面 對 萬 重 浪 (오기면대만중낭)


熱 血 像 那 紅 日 光 (열혈상나홍일광)


膽 似 鐵 打 骨 如 精 鋼 (담사철타골여정강)

  

胸 襟 百 千 丈 眼 光 萬 里 長 (흉금백천장안광만리장)

  

我 發 奮 圖 强 做 好 漢 (아발분도강주호한)


做 個 好 漢 子 每 天 要 自 强 (주개호한자매천요자강)


熱 血 男 兒 漢 比 太 陽 更 光 (열혈남아한비태양경광)


讓 海 天 爲 我 聚 能 量 (양해천위아취능양)


去 開 天 闢 地 (거개천벽지)


爲 我 理 想 去 闖 (위아이상거틈)


看 碧 波 高 壯 (간벽파고장)


又 看 碧 空 廣 闊 浩 氣 揚 (우간벽공광활호기양)


我 是 男 兒 當 自 强 (아시남아당자강)


昻 步 挺 胸 大 家 作 棟 樑 做 好 漢 (앙보정흉대가작동양주호한)


用 我 百 點 熱 照 出 千 分 光 (용아백점열조출천분광)

                

做 個 好 漢 子 熱 血 熱 腸 熱 (주개호한자열혈열장열)


比 太 陽 更 光 (비태양경광)




오만함으로 모두를 대하라.


뜨거운 피는 태양보다도 붉다.


담력은 쇠와 같다. 뼈는 정련강이다.


포부는 백천장이나 뻗는다. 눈빛은 만리를 비춘다.


나는 강해지려 한다. 훌륭한 대장부가 되기 위해서!


뜨거운 피의 남아 대장부는 태양보다 강렬하다.


바다와 하늘조차 내게 힘을 준다.


하늘을 열고 땅을 갈라 나의 이상을 펴리라.


푸른 바다의 충만함을 보라


푸른 창공의 광활함을 보라


호연지기가 드높아진다.


나는 사나이, 마땅히 강해야 한다.


고개를 들어라 가슴을 펴라 모두 동량들이 되자


대장부가 되자


내 온몸의 뜨거움이 온 누리에 빛나 오른다 


대장부가 되자 


뜨거운 피 뜨거운 열정이 태양빛보다도 강렬하다.

 





*****






 길을 잃은 상태로 또 길을 잃어버렸다는 건 참 바보스러운 일이다. 왜 그렇게 겁을 먹었을까? 생각해보면 그처럼 꼴사나운 발광도 없었다.


 노래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을 쩡하니 울리며 퍼지는 노래소리가 나를 담대하게 했다. 밤의 숲길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단 말이야? 이제 나는 열 다섯살이다. 그 때의 어린애가 아니야.


 북경으로 갈까? 무척이나 멀거다. 하북이라 들었으니 정주의 몇배나 멀거다. 가다보면 정말 고생스럽게도 할거다.


 그러니까, 북경으로 가야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으려니 팔다리에 긁힌 곳들이 아파왔다. 다시는 그런 추태는 부리지 말아야지.


 곳곳에 나뭇가지들이 꺾여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부러뜨린 모양인데, 저렇게까지 좌충우돌했었던가 갸웃하게 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밤의 새울음도 그럭저럭 정취가 있었다. 시나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벌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가끔 나방이 날아다니곤 했다.


 흥얼흥얼 처음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빛을 보고 미친듯이 달아난 흔적이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저 멀리에 불빛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인가일까? 숲인지 산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외딴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먹은것이 만두 두어개밖에 없었다.


 어쨌든 저 불빛을 향하기로 했다. 배가 고프니 노래를 불러제낄 힘도 나지 않았다. 생각 하나로 이렇게 힘이 빠지다니 사람이란 참 갈대같은 존재였다.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배는 점점 꺼져왔다. 저것이 인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처음의 생각대로 횃불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염노가 날 찾으러 헤매는게 아닐까 하는 짐작을 했다.


 그러나 곧 불빛의 정체가 밝혀졌다. 작은 공터에 피워져있는 모닥불이다. 역시나 인가가 아니었다는 것이 실망이었다. 여행객이 모닥불에서 짐승을 잡아 굽고 있는것이 보였다. 배가 더욱 고파졌다.


 아무래도 숲은 아주 깊은가 보았다. 나도 노숙을 해야 하겠구나. 모닥불정도라면 얻어 쓸 수 있으리라. 어떻게든 구운 고기도 조금 먹고 싶다.


 공터에 다달아 모닥불 근처로 걸어갔다. 여행객은 부스럭대는 소리를 눈치채고 있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크게 의외라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허나 나에게는 엄청나게 의외의 사건이었다.


 그는 검마였다.






 기가 막혔다.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내 입의 주인은 잠시동안 내가 아니었다. 내 주둥이가 독자적인 생명을 얻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이렇게 담대한 인물이었다니.


 검마는 가만히 나를 보더니 관심없다는 듯 모닥불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작은 짐승의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는 것이 보였다. 향이 아주 일품이었다.


 "맛있겠네요."


 아! 나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그늘바위를 얻어 쓰려던 염포사걸은 시체가 되었다. 나는 염포사걸보다도 훨씬 약하다. 이대로 뒤돌아서 도망치는 것이 옳다. 왜 이렇게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나는 죽을 자리를 찾아와서 검마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검마를 쫓아왔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검마는 꼬챙이에 꿰인 고기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응."


 그렇구나, 맛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멍하게 하고 있다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때엔 나는 어느새 모닥불가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기회다. 아니다. 죽을 기회다. 아니다. 운이 좋았다.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 계획도 없잖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는 느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있는 느낌, 배가 고픈 느낌, 여러가지 느낌.


 "그, 그렇군요."


 뻣뻣하게 얼어서 꼼짝도 못하는 내 앞에서 검마는 꼬챙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붉은 모닥불이 비친 그의 얼굴은 대단히 고요하고 단정하였다. 당연하겠지만 낮에 고갯마루에서 마주친 그 차림새 그대로였다. 허리춤에는 작은 검이 찰싹 붙어있었다.


 검마의 입가에서 흐릿한 움직임을 보았다. 웃는 건가?


 "다 익었군."


 그렇구나. 다 익었구나. 그런데 지금 검마가 웃은건가? 그러고 보니 웃으면서 사람을 죽인다는 마두가 검마였던가? 다른 누구였던가? 검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검마가 웃었다, 검마가 웃었어,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내 앞에서 그는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입 한입 베어물을 때마다 그 작은 짐승의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나갔다. 이 와중에도 탐이 난다. 음식은 배가 고플때 먹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배가 매우 고팠다. 그렇다면 저 고기는 내 것이 되어야 마땅한게 아닐까?


 "저도 좀 주세요."


 아니야, 내가 미친게 틀림없어. 언감생심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난 지금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야. 북경에 가야 해. 가다가 굶어죽는 것이 여기서 검마에게 베이는 것보다 낫다.


 검마는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무표정함이라니! 멀뚱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지가 떨려오는 것만 같다. 아니다. 너무 긴장되어 사지가 떨리지조차 않는다. 힘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힘이 점점 빠져서 몸이 무너지며 점점 건방진 자세로 변해간다. 미칠 것 같다.


 진정하자.


 검마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막만한 돌을 집어들었다. 그렇구나, 나에게는 저 빛나는 검을 쓸 가치도 없다는 것이겠지? 날 죽이겠다는 건가? 아. 검마는 식인을 했던가? 검마는 식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곱게 죽였으면 좋겠다. 그래, 죽여라. 하지만 나를 먹으면 죽어서도 원망할거다! 귀신이 될거다. 귀신이 될거라구!


 검마는 진짜로 돌을 던져버렸다. 다만 숲을 향해서였다. 돌이 날아가면서 허공에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를 남겼다. 희끗하게 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은 어둠속에서 우지끈우지끈거리며 나뭇가지를 부러뜨려대었다. 그러자 검마는 휘적휘적 걸어서 숲속에서 작은 새의 시체를 들고나왔다. 다른 손에는 새알도 몇 개 챙겨온 듯 했다.


 끔찍한 소리와는 달리 새의 시체는 멀쩡하다.


 검마는 익숙하게 새의 털을 뽑았다. 어떻게 한 것인지 새의 배가 쩍 벌어지며 내장이 쏟아졌다. 시체를 휘휘돌리며 털과 내장을 제거한 검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새를 푹 꽂았다. 빙글빙글 돌리며 목을 베고 피를 뽑는다. 목에서 피가 쭉쭉 뿜어나온다. 나뭇가지로 새의 껍질에 여기저기 상처를 내더니,  품에서 조미료를 꺼내 솔솔 뿌렸다. 계속 새는 돌아간다.


 어지럽게 돌아가던 꼬챙이를 모닥불에 얹어놓고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먹고 싶으면 돈을 내라."


 "네?"


 "돈을 내란 말이다. 새는 오십문이고 새알은 하나에 열문씩이다."


 너무 비싸다! 라고 외쳐버릴 뻔 했으나 다행히 검마의 안전(顔前)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도, 돈이 없..."


 "농담이다."


 전혀 웃기지 않는다. 농담을 하면서 사람을 죽인다던 마두가 검마였던가? 다른 사람이던가?


 검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아' 하고 중얼거렸다.


 "너는 아까의 그 꼬마로군."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염노의 등 뒤에 숨어있었는데.


 "네."


 한동안 대화는 없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새고기를 보다가 문득 검마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왜 여기에 있는거냐?"


 검마가 질문을 했다!


 "걱! 크흠, 그, 그게."


 검마가 멀뚱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시선! 이래선 도무지 입이 열릴 것 같지가 않다. 모닥불이 비쳐 붉게 일렁이는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향하고 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으음..."


 검마의 눈초리가 살짝 찌푸려졌다. 덜컹, 하고 가슴이 내려앉고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는것이 보였다.


 "다, 당신이 좋아서요!"


 "...어?"


 검마가 멍한 표정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나의 대답이 불충분한 모양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수상한 대답이었다. 나의 주둥아리가 주인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그! 그러니까! 그, 그것이!!"


 "아아, 됐어. 특별히 경멸스럽게 생각하는건 아니다."


 이게 아닌데.


 얼어붙다못해 온몸의 관절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어떻게든 설명을 하고 싶었으나 도무지 뜻대로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마는 새고기를 꽂은 꼬챙이를 뒤적이면서 가끔 흥미있는 눈빛으로 힐끗 나를 바라보곤 했다. 아무래도 엉뚱한 오해를 사버린 것 같았다.


 "일행은 어쩌고?"


 "헤, 헤어졌어요."


 "흐음."


 검마는 지금 그렇단 말이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눈초리는 나를 벌거벗겨 시장 한가운데에 던져버리는 것 같았다.


 "일행을 내가 죽였는데 무섭지 않나보군."


 너무 무서워서 울고 싶다.


 "그... 사람들은 특별히 친한것도 아니고. 공식적인..이 아니라 정당한 결투였으니까요. 무림인들은 원래 사람을 잘 죽인다고..."


 순간 말을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하소연할데가 있을 리 없었다. 검마의 눈썹이 다시 찌푸려지는 것을 보았을때, 나는 염노의 팔대 조상까지 원망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아아 염노 왜 그런 쓸데없는 상식을 알려줘서는...


 "나는 무림인이 아니다."


 "네?"


 "나는 무림인이 아니야. 무림인이라고 부르지 마라."


 "그, 그럼?"


 "난 무림인을 싫어한다."


 검마는 그리곤 입을 다물었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다 못해 얼어서 바스라질 지경이었다. 화나게 했다!


 무림인이라고 불리면 기분나빠하는 무림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바도 없다. 하지만 지금 저 사람이 기분이 나빠지면 나에게 매우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 어쩐지 처음 봤을 때 부터 무림인이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허리에 칼을 차고 있긴 했지만 그건 칼이 아니라 장식품으로밖에 안보였고.. 억! 아니 그렇다고 우습게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그 칼에서 그렇게 대단한 빛이 뿜어나오리라고는.. 그리고 얼굴도 기생오라비가.. 아니고! 우아하고..."


 검마가 훗, 하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만으로 아까 물들어갔던 어둠이 단숨에 수십리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웃기는 녀석이군."


 "그, 그런 이야기 많이 듣죠, 네.."


 "다 익었다. 먹어라."


 검마가 인심쓰듯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구나."


 "네에..."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새는 맛있었을 것이다. 정신이 없어서 어떤 맛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공복이 해결되면서는 조금 느긋한 마음이 되었다. 뱃속이 든든해지고 모닥불은 따뜻했다.


 꾸역꾸역 삼키다가 가슴을 치고 있으려니 검마가 가죽물통을 건넸다.


 "다 마시지는 마라."


 "감사합니다."


 꿀꺽꿀꺽 물을 삼키고보니 물통입구에 새기름이 지저분하게 묻어버리고 말았다. 검마도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듯 안색이 조금 흐려졌다.


 "다, 닦을게요! 닦으면 되잖아요!"


 "음..."


 허겁지겁 옷깃으로 기름을 닦아내니 이번엔 풀즙과 흙먼지가 잔뜩 묻어버렸다. 이 엄청난 흉사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내놔."


 얼른 검마에게 물통을 건네주었고, 검마는 품에서 흰 천을 꺼내 정성스럽게 입구를 닦았다.


 "죄송해요..."


 "음."


 그 후 새알도 까서  입가심을 했고, 긴장으로 뻣뻣했던 근육도 조금씩 풀어지며 모닥불의 온기를 즐길 수 있었다.


 검마는 그 후로 아무런 말이 없이 모닥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모닥불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런데, 너는 어쩔 생각이냐?"


 "네?"


 "나를 따라왔다는 건 알겠는데, 이제부터 어쩔 생각이냐고 물었다."


 "계, 계속 따라가야죠."


 검마가 고개를 지그시 돌렸다. 어깨의 흔들림 없이 머리만 움직이는 육식동물의 움직임이었다. 부엉이일까? 아니면 사마귀...


 "헛소리하지 마라."


 "예?"


 "나는 놀러다니는 게 아니다."


 "저도 놀러다니는 거 아닌데요."


 검마는 작게 숨을 뱉어내더니 다시 언어를 허공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무척이나 낭랑하다고 생각되었다. 검마에 대한 동경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원수를 죽이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어린애를 끌고 복수에 전념할수는 없어."


 "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뜻밖에 목소리가 크게 터져버려서 제 풀에 놀라 움찔하고 말았다. 하지만 검마는 흔들림없는 눈으로 나의 눈을 정면에서 마주보았다.


 "그래? 너는 무엇을 위해 나를 따르겠다는 소리냐?"


 "그러니까..."


 "난 약혼한 사람이 있다."


 이게 뭐라는 소리야!


 "이미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난 네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그! 그런건 나랑 상관없다구요!"


 "상관없다라... 역시 치기어린 말이군."


 안돼. 이 사람은 너무 잔혹한 오해를 하고 있어. 나를 더 이상 매도하게 놔 둘 수는 없다.


 "당신의 제자.. 제자가 되고 싶어요!"


 이 말은 검마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새삼 바라보았다. 약간 얼이 빠진 표정이 된 듯도 했다.


 "그렇게... 내가 좋으냐?"


 "이, 이봐요!"


 검마는 손을 올려 내 얼굴을 잡았다. 턱 아래로 잡아 마치 과일을 품평하듯이 좌우로 돌려보더니,


 "그래도 안돼."


 라고 말을 한다.


 "제자를! 얼굴로 받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음기가 강해."


 상처받으라고 한 말인건 알지만 역시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그게 얼굴에 써 있어요?"


 "내 검은 감히 여자가 배울 수 있는게 아니야. 극한의 단련으로 몸의 지방이 빠져나가 남자의 체형으로 변한다. 몸의 곡선은 사라지고 머리의 숱도 줄어든다. 나의 내공을 익히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저는 남자인데요."


 "너는 여자만도 못해. 익히다가 죽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서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한다. 정말로 나를 남색가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는 '더 이상 제자소리 하지 마라' 라는 기색을 온몸에서 뿜어대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섭지만은 않았다. 그가 나를 해칠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근거는 없다. 그저 느낌이다.


 그는 나에게 모닥불을 제공했고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제자로는 받아주지 않지만.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 있는건가요?"


 "무슨 소리냐."


 "여긴 관도에서도 멀고 인적도 뜸한곳인데, 왜 편한 길을 놔두고 숲 속으로 들어온 거냐구요."


 "인적이 뜸하니까."


 "......"


 "네가 보았듯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겨서 말이다."


 불현듯 염포사걸의 얼굴이 기억나며 그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겠지. 그보다는 검마가 무림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굴어서 소동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밤이 늦었군. 자라."


 검마는 말을 마치고 불가에 좌정했다. 고수답게 모포나 침낭같은 것은 가지고 다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야 물론 고수니까 눕지 않아도 편하게 쉴 수 있을거라 미루어 알 수 있었으나, 문제는 나도 아무런 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저도요?"


 "음?"


 "저는 어디서 자죠?"


 "알아서 자라."


 "그런..."


 검마는 대꾸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가부좌를 틀고 반석처럼 꿈쩍않는 모습이 그대로 그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후우..."


 대충 모닥불가에 팔베개를 하고 눕기로 했다. 화상을 입을까 두려워 뒤척이며 자세를 계속 바꾸다가, 내가 자는사이 검마가 떠나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검마의 곁에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






 무언가가 나의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한참 잘 자던 중이라 매우 귀찮았다.


 "일어나라."


 검마의 목소리였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눈을 번쩍 치켜뜬 내 정면으로 검마의 멀뚱한 얼굴이 있었다. 소금씹은 표정이다.


 "옷을 놔라."


 그제서야 내가 그의 바지가랑이를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좌정한 자세 그대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그가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빨리 놔라."


 검마의 미간에 또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이 빠지지가 않았다. 밤새 힘을 준 채로 잠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았다.


 "손이 안 펴져요."


 "멍청한..."


 검마가 손가락으로 내 팔꿈치 어딘가를 툭 건드리자 팔이 쩌릿거렸다. 고통스럽기까지 했지만 손에서 힘이 빠지며 그의 바지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너 때문에 이제껏 세안도 못했단 말이다."


 "네..."


 검마의 뒤를 따라 걷자 냇물이 나타났다. 무성한 숲 속에서 어떻게 물을 찾았는지 궁금했지만 아무 말 않고 나도 세안을 했다. 검마의 얼굴이 하얀 것은 매일 세안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마는 이곳이 시양산이라고 했다. 시양산이 어디에 붙어있는 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리 높지 않고 산맥이 구비구비 퍼져있어서 땅을 많이 차지하는 산이라고도 말해주었다. 그는 시양산을 넘어 태원 방향으로 갈 예정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것으로 보아 날 일행으로 인정한 것 같아서 가슴이 매우 뿌듯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억지로라도 자랑스러워하고 싶었다.


 "아침식사는 안해요?"


 산 속에서 끼니를 찾는다는 것은 물론 호사스러운 일이었으나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그 유명한 검마였다. 그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이다.


 "반시진."


 "예?"


 "반시진 후에 사냥을 한다."


 검마는 어제의 야영지로 돌아와서 체조를 시작했다. 느릿느릿, 정성스럽게 팔다리를 굽혔다 펴는 자세는 어찌보면 단순하고 어찌보면 대단히 괴상했다. 그래도 억지로 따라하려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의 체조를 훔쳐보면서 열심히 흉내내었다. 검마는 나의 시도를 분명히 알아챘을텐데도 일언반구 말을 걸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씩 제자가 되어가는게 아니겠어?


 기분이 좋았다.


 꽤나 오랫동안 체조를 하더니 이번엔 양지로 걸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는다. 뭐하는 짓인가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검마의 숨소리만이 길고 조용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일각정도 숨을 고르더니 그는 곧장 사냥을 시작했다. 이번의 사냥물은 토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