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만리행은 한국 무협계에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견마지로 같은 작가의 등장 역시 반갑다.

 

한국 무협을 그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 장르가 판타지의 하위 문화 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조야한 문장력, 떨어지는 어휘력은 대다수 글쟁이들이 겪는 문제고, 이 계열에서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보이는 비문 때문에 짜증났다. 순수문학계에서 이 계통을 우습게 아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거지. 순문학 작가인 박민규의 '절'을 넘어서는 무협작품이 얼마나 되나? 비무협작가가 무협작가들 대다수보다 무협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걸 이걸로 밥벌어 먹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중국 중세, 근세를 배경으로 하면서 작가란 사람들이 그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정치적 상황에 대해 다룬다면 최소한으로 당대의 직위 정도는 파악해야 하고, 지리적으로도 어떤 지역이 어떤 명칭으로 불리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김훈은 칼의 노래를 지을 때, 순수하게 배에 관한 서적만 수십 권을 독파했다. 400여 페이지의 글을 적는데도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보다 수 배, 수십 배의 분량의 책을 내는 무협작가들이 이만큼 정성을 쏟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또래들이 장르 문학에 관해 물어오면, SF에서는 듀나나 배명훈, 판타지에서는 전민희와 이영도를 추천했다. 다만 무협에서는 누굴 꼽아주지 못했다. 되려 무협은 안 본다며 고개를 저었다. 무협을 본 지 십수 년만에 자랑스레 추천할 수 있는 작가가 나와 기쁘다. 견마지로는 책을 쓰는 것 외의 것으로 호구지책을 삼고 있다 했는데, 그래서인지 도리어 글을 쓰는데 성급하지 않은 듯하다. 만려일작(萬慮一作)이라는 그의 신념답게, 그는 과작(寡作)하는 작가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