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화성으로 향하는 로켓을 앞두고 통신기를 통해 세레나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통신기 속에서 여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슨 질문이니?”
“이름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수년간 프로그램 속에서 이름의 의미를 찾아왔지만, 명사와 구별되는 뚜렷한 의미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백과사전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그것의 의미를 탐구해봤지만, 여태껏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쯤 그 의미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깁니다. 저런 소리를 낼 때마다 그녀는 평소처럼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책상에 고개를 파묻습니다. 그녀는 그것이 버릇이라는 행위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행위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로켓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직전, 그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름이라, 그건 인간이 한 개체에 사회적으로 정의해줄 수 있는 특별한 명칭을 의미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명사를 두고 특별한 명칭을 붙이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물론이야. 인간은 복수이지만 동시에 단수이기도 하니까. 인간은 군집 속에서 의미를 얻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을 찾지. 이름은 그 자신에 대한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습니까.”
모든 의문이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렴풋이 납득했습니다. 이름이란 그런 의미였습니다. 영민하지 못한 나의 두뇌와 명사적 정보로 가득 찬 나의 프로그램 속에 인간적인 정보가 흘러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제게도, 혹시 이름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이름? 물론이야. 당연히 있지. 내가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니?”
“예. 아직까지 저는 당신에게서 이름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통신기 속에서 그녀의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로켓의 문이 열립니다.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그녀의 대답이 들리기 전에 말을 꺼냅니다.
“괜찮다면 제 이름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네 이름은--”
그 순간 통신이 끊어졌습니다. 나는 카메라를 뒤편으로 돌립니다. 두꺼운 장갑복을 갖춰 입은 두 사람이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려 우주선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들은 능숙한 동작으로 나의 센서와 CPU를 우주선의 통제장치에 결합시킵니다. 우주선에 달린 카메라와 로켓의 분사장치, 항행정보에 대한 기록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옵니다. 세레네 박사와의 통신이 끊어진 것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이름을 들을 수 있을 텐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제탑에서 들려오는 들뜬 카운트다운이 귓가에 울립니다.
카운트다운이 제로를 알리는 순간, 점화구에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습니다. 관제탑에서 쏟아지는 환호의 외침. 위성을 통해 내려오는 전 세계인의 모습이 비칩니다. 나는 그 소란스러운 광경 속에 혹시나 내 이름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유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끝내 그것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시무룩한 마음을 뒤로한 채 로켓이 대기권을 뚫고 중력의 벽을 탈출합니다. 새까만 우주와 세레나 박사의 눈동자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우주를 촘촘히 수놓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강철의 인큐베이터 안이었습니다.
혼란스러운 명사와 1과 0으로 도배된 프로그래밍 코드가 전류를 타고 머릿속을 헤집던 중, 나는 그 속에서 자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눈 뜬 세상은 어둡고 딱딱하기 그지없어서 나는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중, 새까만 하늘이 열리고 빛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두부에 달린 카메라 조리개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렌즈 속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했습니다. 새까맣고 딱딱한 세상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 빛은 경이로운 환상과도 같았습니다.
조금 시간이 흘러 빛이 세상에 가득해질 무렵, 그제야 나는 내가 있던 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있던 곳은 기계를 제조하는 설비 시설 안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만들어져 출하된 로봇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세상의 광경에 나는 카메라를 두리번거리며 세상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일어났구나!”
카메라 뒤편에서 기쁨에 찬 여린 목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 그곳을 바라봅니다. 카메라로 관측된 목소리의 진원지는 두 다리로 선 유기체였습니다. 프로그램 속에서 인간이라고 기록된 유기체는 내게로 다가오더니 두 팔로 내 상자 같은 동체를 쓰다듬었습니다.
“반가워. 난 세레나 박사야. 내 목소리가 들리니?”
음성 인식 센서를 통해 들려오는 정보와 컴퓨터 속에 탑재된 프로그램이 그녀를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그녀는 내 주인입니다. 그녀는 나를 창조한 NASA의 로봇 담당 책임자 세레나 박사이며 세계에서 따를 자 없는 두뇌의 소유자입니다. 나는 이 프로그램 역시 그녀가 고안한 것임을 깨닫고 혹시 프로그램이 전해준 정보의 진위여부에 대해 의혹이 생겼지만, 곧 그 생각을 멈췄습니다. 세레나 박사는 NASA 최고이며 세계 최고 두뇌의 소유자입니다. 이 이론에 반박할 여지는 없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응답하려 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카메라를 갸웃거립니다. 그녀는 잠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뭔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고는 말했습니다.
“따라오렴.”
그녀는 내 동체에 부착된 손잡이를 잡고 방을 나섭니다. 동체 밑면에 달린 캐터필러가 부드럽게 바닥을 밟고 전진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세레나 박사의 뒤를 쫓으며 세상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반짝이는 창문과 청백색의 타일들. 천장에서 흘러넘치는 빛과 세레나 박사처럼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몇몇은 내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하지만 곧 신경을 끄고 제 할 일에 바빠집니다.
세레나 박사는 로봇공학 연구실이라고 쓰인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문 위에서 홀로그램 광선이 그녀의 몸 위로 쏟아지더니 문이 열립니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 유리 없는 캡슐처럼 생긴 기계장치 안에 나를 집어넣습니다. 기계장치에 딸린 두 팔이 내 쪽으로 움직입니다.
“거기 가만히 있어. 지금 원격 통신장치를 설치할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 위에 달린 조작기로 능숙하게 두 팔을 조작해 내 회로를 뜯습니다. 드라이버와 나사가 맞물릴 때마다 오싹한 느낌이 전해져옵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명령대로 꼼짝 않고 자리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녀의 명령과 행동은 언제든지 옳기 때문입니다.
“다 됐어.”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CPU의 심층 속에서 느껴지는, 프로그램 속에 기억된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세레나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CPU 속에서 흘러나온 인사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레나 박사님.”
“제대로 작동하는구나!”
그녀는 손벽을 치고 깔깔 웃으며 내 동체를 애완견처럼 쓰다듬습니다. 나는 벽면에 붙은 거울에 비친 그녀와 나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았습니다. 연분홍빛 머리칼을 가진 자그마한 소녀의 모습과 육중한 기계장치의 내 모습. 어쩐지 나는 그 광경에서 부조화를 느끼지만, 그녀의 손길이 내 동체를 쓰다듬을 때마다 안도감이 피어오릅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조금 더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싶던 터라 나는 그 감촉 하나하나를 데이터 속에 기록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기자회견장이라고 했던가요. 널찍한 연단 아래에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터뜨려대는 사람들. 내 모습을 보자 그들은 영문 모를 목소리를 지르며 세레나 박사에게 질문을 퍼붓습니다.
“세레나 씨! 이번 화성 탐사선의 구체적인 목적에 대해서 한 말씀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어째서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버리고 구형 캐터펄트 로봇을 쓰시는 겁니까?”
“중국이 이번 로켓을 화성 탐사 목적이 아닌 첩보 위성이라 주장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들려주시죠!”
“정말 화성에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다고 생각….”
요란스럽게 쏟아지는 질문의 바다. 그녀는 침착한 얼굴을 유지하며 연단 아래 기자들을 노려보듯이 응시하지만, 단상 밑에 감춰진 다리는 위태롭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애써 태연한 척하는 얼굴에선 안쓰러움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것은 전자두뇌의 신호가 아닌, 나 스스로 내린 독단적 판단입니다. 세레나 박사가 입술을 깨물고 외칩니다.
“여기 모이신 기자 여러분.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로켓은 어디까지나 군사적 목적이 아닌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입가에서 단어가 흘러나올 때마다 조금씩 그녀의 목소리가 흐려집니다. 숨이 막히는 것일까요. 수백 명의 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리며 연단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왠지 기자라기보다는 그녀를 잡아먹으려고 모인 하이에나 떼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말이 점차 뭉툭하게, 그리고 알아듣기 힘들게 변해갑니다. 초조해진 사이 한 남자가 기자들을 밀치며 연단을 향해 빠르게 걸어옵니다. 세레나 박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합니다. 그 순간.
“인민에게 영광을!”
남자의 품에서 커다란 권총 한 정이 솟아나오더니 세레나 박사의 머리를 겨냥합니다. 나는 재빨리 캐터펄트를 굴려 단상을 넘어뜨립니다. 쓰러지는 세레나 박사와 터져 나오는 총성. 소녀의 꺅 하는 비명소리는 아수라장이 된 회견 속에 파묻혀 나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낌새를 알아챈 보디가드들이 재빨리 남자의 사지를 붙잡습니다. 세레나 박사는 연분홍빛 머리칼을 오들오들 떨며 내 동체를 힘껏 붙잡습니다. 나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아직은 그녀가 살아있으니까, 내가 그녀를 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날, 연구실로 돌아온 세레나 박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 동체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내 팔이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기에는 너무나도 거칠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세레나 박사의 체온이 느껴지는데 이제 안도감보다는 다른 감정이 느껴집니다. 나는 이 감정을 무엇이라고 명명할지 몰라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보았지만 뚜렷한 해답은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던 세레나 박사가 내게 물었습니다.
“잠시 얘기 좀 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끄덕이며 통신기로 음성을 전했습니다. 카메라를 끄덕일 필요는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어졌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녀는 내 동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난 말이야.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친구. 입니까?”
데이터 속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찾았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명사입니다.
“나, 지금도 혼자인 거 알지만. 예전에는 정말 혼자였었다? 나 말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통 외톨이라 말할 상대도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녀는 조금씩 흐느끼는 목소리를 지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친구를 만들었어.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이 그러더라. 내가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있어서 천재 중의 천재라고. 그래서 친구를 많이많이 만들어달라고 했어. 친구만 생기면 아무래도 좋을 줄 알고 여기 와서 정말 많은 친구를 만들었는데, 그랬는데….”
코끝을 훌쩍이는 소리. 나는 마침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휴지를 잡아 그녀에게 건네줍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며 코를 팽 풀더니 이야기를 재개합니다.
“나, 정말로 그저 친구가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친구 만드는 게 다른 사람들은 맘에 안 들었나 봐. 어떤 날은 이상한 편지가 오고 어떤 날은 눈앞에서 만든 친구가 폭발하고 어떤 날은….”
나는 그녀의 음성을 하나하나 집중해 분석합니다. 그녀의 심장박동과 과거를 통해 추정해 본 결과 그녀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직접적인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옵니다. 하지만 나는 의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을까요. 수십 번의 계산과 추정이 이뤄집니다. 그 속에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최대한 가냘프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습니다. 그녀가 입은 코트에 내 흙먼지가 묻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운동회로를 집중했습니다. 내 팔이 쇳덩어리가 아니라 세포 피질로 구성된 유기질이었다면 좀 더 부드럽게 쓰다듬을 수 있을 텐데. 나는 너무나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세레나 박사. 저는 당신의 친구입니까?”
“...응.”
세레나 박사가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나는 최대한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러면 제가 당신의 친구로서 당신의 슬픔을 공유해도 되겠습니까?”
“슬픔을... 공유?”
“예.”
나는 카메라를 끄덕였습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같이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내 데이터에는 슬픔에 대한 감정이 입력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리고 내 데이터 속에 슬픔 외에 또 다른 감정이 입력된 것 같습니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요.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읽는 책들은 과학에 관련된 서적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묘사한 기록들입니다. 과학에 대한 지식은 내 전자두뇌 안에 기록되어있으니까요.
내가 자아를 찾게 된 이후, 나는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전자두뇌에 명시된 단어의 뜻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총체입니다. 세레나 박사가 만든 로봇들은 모두 나처럼 우주로 쏘아지거나 다른 나라로 팔려가 그에 대한 토론을 해 볼 수 없었기에 별수 없이 책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조금도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책이란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충분한 매체이니까요.
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연구실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치로 나를 바라봅니다. 어째서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내 성능에 대한 테스트가 끝나고, 세레나 박사를 찾아가서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사랑할 줄 모르거든.”
“사랑이 무엇입니까?”
나는 전자두뇌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는 대신 그녀의 답을 기다립니다. 데이터베이스보다 그녀의 말이 더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니?”
“세레나 박사를 좋아합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합니다. 박사는 내 말을 듣자 잠시 놀란 얼굴로 입가를 가리더니, 이윽고 입을 엽니다.
“그, 그런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지를 묻는 거야.”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박사는 턱을 잡고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표정에는 어쩐지 곤란한 빛이 어려 있습니다. 괜한 질문을 한 것일까요. 박사는 한참 후에 말을 꺼냅니다.
“그건 말이야….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서로를 위해서 자신을 바칠 수 있는지, 그 사람의 존재가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측면에서 ‘좋아한다.’는 말이지.”
“제게도 세레나 박사는 소중합니다.”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나는 세레나 박사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전자두뇌에 입력된 데이터베이스에서 도출된 결론이 아닌 지극히 내 주관적 판단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세레나 박사를 위해서 나를 바칠 수 있고, 그녀의 존재가 나 자신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갑니다.
“나도 널 소중하게 생각해. 하지만 우린 사랑할 수 없어.”
“어째서입니까?”
“왜냐면 나는….”
세레나 박사는 멈칫합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 같은 것이 흐릅니다. 정밀 카메라로 관측된 것이니 의심할 바 없는 진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슬프게 만들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닐까요. 나는 걱정스런 어조로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괜찮으십니까?”
“...으응. 괜찮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슬픈 말을 꺼내서.”
나는 카메라를 숙여 미안한 감정을 전합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 이윽고 연구실을 나섭니다. 나는 연구실에 쓸쓸히 남겨진 채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으면, 언젠가 그녀를, 그리고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연구실에서의 짧은 나날들이 끝나고 나는 화성으로 향하는 로켓에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그녀는 내 동체를 으스러지라 껴안고는 마지막 악수를 했습니다. 악수를 마치고 그녀는 내 전자두뇌에 화성에서의 임무를 입력했습니다.
-화성에 거주하고 있는 생명체를 찾아라.
“아주 힘든 임무가 될 거야.”
그녀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힘든 임무라고 말했으니 힘든 임무가 될 것입니다. 그녀의 의견은 전적으로 옳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생명체를 찾으면, 그들에게 내 이름을 붙여줘. 알았지?”
“이름?”
나는 카메라를 갸웃거립니다. 줄곧 자각하지 못했던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오자 전자두뇌를 뒤적입니다. 화성 탐사에 관련된 자료들로 즐비한 전자두뇌 속에서 단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내가 한 마디 묻기도 전에 그녀는 자리에서 떠나갑니다. 간신히 이름이라는 명사를 찾아 뜻을 검색해봤지만, 전자두뇌가 전해준 의미는 석연치 않았습니다. 로켓의 발사실로 향하던 중, 통신기에 다시 반응이 들어옵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오늘도 화성의 척박한 대지를 밟습니다. 황토보다 더 새빨갛게 빛나는 모래들, 푸르게 빛나는 석양은 내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동체에 달린 태양광 발전에 몸을 의지한 채 나는 캐터펄트를 굴립니다.
화성은 굉장히 넓습니다. 내가 살고 있던 NASA의 건물을 억 개 합쳐놓아도 화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모래먼지를 헤치고 길을 나섭니다. 내게 주어진 임무. 화성에 거주하고 있는 생명체를 찾아야 하니까요.
오늘도 쉴 새 없이 캐터펄트를 굴립니다. 전자두뇌에서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구덩이 비슷한 곳을 찾으면 전속력으로 달려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집니다. 하지만 소득은 없습니다.
화성의 코발트블루 빛 석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면 어둠보다 무서운 한기가 찾아듭니다. 화성의 분화구에는 서리가 끼고 캐터펄트는 얼음덩이처럼 변해버립니다. 그때마다 나는 쉴 새 없이 캐터펄트를 굴려 그것이 얼어버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
싸늘한 화성의 밤이 끝나갈 무렵, 나는 카메라 속에 저장된 화성의 풍경을 돌이키며 세레나 박사를 떠올립니다.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은 화성의 풍경들이 잔뜩 있습니다. 아직 생명체의 사진을 찍지 못해 유감이지만, 언젠가 꼭 그녀에게 그것을 주리라고 다짐합니다.
오늘도 나는 캐터펄트를 굴립니다. 화성의 생명체를 찾기 위해, 지구로 돌아가 세레나 박사를 만나기 위해.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백십구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오늘도 지구에 전파를 전송합니다. 전파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화성에는 생명체가 없다. 화성을 수 십 차례 횡단했고 가보지 않은 곳이 없지만, 생명체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임무는 실패입니다. 나는 세레나 박사가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파를 전송합니다. 되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몇 번이고 전파를 쏘아 보냅니다.
나는 프로그램이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화성에는 생명체가 없습니다. 이런 척박한 땅에, 죽음밖에 남지 않은 붉은 사막 위에 생명체 따위 있을 리 만무합니다. 나는 어째서 그 사실을 이렇게 늦어서야 알았을까요.
황량한 사막 위로 태양이 떠나가면 또다시 혹한이 찾아듭니다. 나는 오늘도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전파를 쏘아 보내고, 혹여나 지구에서 나를 구하러 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캐터펄트를 굴립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오지 않습니다. 나는 하루에 수십, 수천 번 후회와 절망과 고독과 회한과 비탄 속에 파묻혀갑니다.
한 번은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로봇 팔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자두뇌의 통제를 받아 내 명령을 거부하고 의지를 따르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 회로를 내리쳐 죽고 싶은데 그것마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캐터펄트가 얼어붙으면, 나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이 동체 안에 갇혀 이대로 영원히 지내게 될 테니까요. 내게 영원한 삶은 영원한 지옥입니다.
오늘도 나는 전파를 쏘아 보냅니다. 지구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세레나 박사에게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하지만 그 전파는 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바보였습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오백칠십팔 년이 지났습니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는 화성에서 내 몸통만 한 암석을 구해다 그것을 돌로 내리칩니다. 로봇 팔에 손상이 가서는 안 됩니다. 이 팔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자 구세주입니다. 한때 나는 이 팔로 내 회로를 내리쳐 자살할 마음을 품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와서 이 팔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 어째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걸까요.
세레나 박사의 이론은 결코 틀릴 리 없습니다. 화성에는 분명 생명체가 있는 것입니다.
세레나 박사는 화성에서 생명체를 찾으라고 했지만, 생명체가 행성 지표면에만 있을 리 없습니다. 나는 오백 년이 지나서야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 아둔한 것일까요.
암석이 돌에 부딪혀 깨어질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암석은 이제 전에 있던 둥글넓적한 모양에서 어느덧 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손잡이 부분은 오래전부터 설계했고, 이제 며칠 후면 지표면을 파고 내려갈 돌삽이 완성될 것입니다.
파고 내려갈 지표면은 이미 확인해두었습니다. 가장 손쉽게 파고들어 갈 사암층의 밑이 바로 그곳입니다. 아직 그 밑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레나 박사의 이론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돌삽을 만든 다음에는 파고 내려간 흙을 담을 바구니를 만들 것입니다. 생명체를 찾는 작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지구로 돌아갈 생각에, 그녀를 만날 생각에 삽을 제조하고,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전파를 쏘아 보냅니다. 언젠가, 그들이 나를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천오백칠십구 년이 지났습니다.
사암층의 끝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걸렸습니다. 바위는 아닙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독특한 재질입니다. 분석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에 그것을 로봇 팔로 잡은 순간, 내 동체는 바로 밑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동체가 뒤집히기 직전, 나는 로봇 팔을 재빨리 뻗어 돌삽을 붙잡아 바닥에 박았습니다. 그러고는 안전히 착지하여 주변을 살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화성의 풍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이한 곳입니다. 나는 그곳을 보고 문득 천오백칠십구 년 전 NASA에서 보던 세레나 박사의 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비록 그 방에는 전기로 움직이는 도구도 싱크대도 없지만 적어도 사암층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데에서 그렇습니다.
나는 매우 흥미로운 광경을 카메라로 담으며 천천히 캐터펄트를 굴려나갑니다. 공간을 나서러는 그 순간, 동체가 무언가에 부딪힙니다.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그 쪽으로 돌립니다.
내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서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 전 지구에 살았다는 대머리공룡을 닮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것은 척추를 사람처럼 꼿꼿하게 세우고 한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를 본 순간, 그것이 입으로 추정되는 기관을 열어 무어라고 음성을 내뱉습니다. 그러고는 쏜살같이 공간 밖으로 달아납니다.
나는 한참 후에서야 그것이 바로 화성의 생명체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레나 박사의 이론은 결코 틀릴 리 없습니다.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 형태가 어쨌든, 생활환경이 어쨌든지 간에 그녀의 말이 맞았던 것입니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한순간의 절망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저주하고 나 자신의 삶을 저주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모두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 나는 그녀를 불신했던 것입니다. 영민하지 못한 내 두뇌를 속으로 비웃습니다.
잠시 후, 대머리공룡을 닮은 생명체들이 나를 찾아옵니다. 그들은 두 손을 붙잡고 소위 말하는 ‘기도’를 내 앞에 드리더니 무어라고 음성을 내뱉습니다. 아마 그들은 의사소통에 대한 개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따라나선 길에서 본 것은 넓은 광장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화성의 생명체들은 아직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문명을 창조해낸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전자두뇌의 용량이 허용할 때까지 정신없이 사진을 찍습니다. 대머리공룡을 닮은 화성의 생명체들은 내 뒤를 따르며 저들끼리 조용히 떠들지만 앞에 선 생명체가 호통을 치자 그들은 금세 조용해집니다.
광장을 가로질러 내가 당도한 곳은 움집처럼 보이는 원시적인 오두막 안이었습니다. 그 안에 주름이 잔뜩 낀 화성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내게 말을 건넵니다. 나는 일순간 머리를 굴려 그가 일종의 종교적인 수장이자, 정치적인 실권자임을 파악합니다. 나는 음성 대신 로봇 팔로 바닥에 글자를 적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집니다. 비록 그가 내 의사를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바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들을 세레나라고 부르겠습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천칠백이십일 년이 지났습니다.
세레나들을 만난 지도 어느덧 이백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세레나들은 나를 일종의 신의 사자로 여기며 숭배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백 년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많은 것들을 관찰해왔습니다. 우선 세레나들은 머리가 그리 좋진 않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지구와 인류에 대해서 몇 번이고 자세하게 설명해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나를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결국 그들에게 이해시키려는 것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갑니다.
세레나들은 지구인과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산소와 물을 마시는 대신 열을 마십니다. 아마 제 생각에 그들은 지구에서 흔히 논의되는 규소생명체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들의 시체를 해부해 볼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하기 힘듭니다.
나는 전자두뇌 속에 탑재된 데이터베이스의 지식으로 그들에게 우선 종이와 글을 전파했습니다. 이곳의 식물은 파피루스로 쓰기 턱없이 약했지만 다행히도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 언어에 대한 습득률은 매우 높아 두 살이 넘으면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압니다.
그들의 세대 순환 주기는 어림잡아 오백 년에 가깝습니다. 물론 질병이나 사고로 죽는 개체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수명이 길어서 그런지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는지 이따금 젊은 세레나들이 마을을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세레나가 내 말을 듣고 내가 타고 나간 구멍 위로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암층이 무너져 내려 깔려 죽을 뻔했습니다. 나는 주기적인 태양 전지 충전을 위해 다시 사암층을 팠고, 얼마 후 그 장소는 내가 강림한 제단으로 여겨져 나 이외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레나 족을 다스리는 족장은 전대 족장의 동생입니다. 전대 족장은 수십 년 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번 족장은 이따금 나를 찾아와 문자로 의논하고 마을의 개척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화성인의 영역이 넓어진다면 나로서도 딱히 아쉬울 것은 없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이따금 나는 지층 밖으로 넘어가 지구로 전파를 전송합니다. 전의 전송이 잘못되었다.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으며, 나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하지만 지구로부터의 답신은 끝내 오지 않습니다. 나는 세레나 박사가 오늘도 이 전파를 수신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지층 밖으로 캐터필러를 굴립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이 천구백 칩 십일 년이 지났습니다.
세레나 족의 영역은 점점 더 거대해졌습니다. 문자 체계가 활성화되고, 문명의 기술이 높아질수록 그들은 이 땅 끝에 무엇이 있을지, 자신들은 어디까지 나갈 수 있을지 묻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성을 관측하고 그 결과를 종이 위에 그려나갑니다. 현재 세레나 족이 쓰고 있는 지도는 나 혼자서 그린 지도입니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차차 완성할 생각입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삼천오백구십구 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세레나 족은 영역이 넓어진 만큼 통치체계를 변화시켰습니다. 넓은 영토를 혼자서 다스릴 수는 없었기에 족장의 친족들을 지도자로 삼아 영토를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봉건제라고 해야겠죠.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릅니다. 술자리에서 족장의 아들들이 서로 다투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칼부림이 벌어졌고, 그 난투극 사이에서 한 명이 죽었습니다.
나는 전쟁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캐터펄트를 굴려 서로를 중재시켰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받은 세레나들은 결국 세레나들을 서로 죽이고 서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붉은 피가 화성의 지표면처럼 대지를 물들이고 서로를 시기와 질시로 몰아넣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싸우는 걸까요. 세레나들은 세레나들을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문득 세레나 박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왠지 모르게 그 말은 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서로를 사랑했다면 서로에게 피를 묻히는 짓을 벌였을까요.
나는 결국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우울한 전쟁의 잔재를 보고 싶지 않아 화성 지표면으로 올라갔습니다. 태양풍이 불어오는 아득한 붉은 사막. 그곳에서 나는 지구를 향해 전파를 쏘아 올립니다. 세레나 박사를 향해. 당신의 말이 왠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어째서 서로를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느냐고.
문득 나는 세레나 박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그녀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지 이해했습니다. 그녀가 나를 사랑했을까요? 아니었을 겁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그저 하나의 로봇일 뿐입니다. 그녀는 지금도 지구에서 친구들을 만들고 예전의 것들을 잊어버리겠지요. 마치 나를 화성에 내버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장난감 친구들이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거기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줬을까요?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처음부터 열리지 않는 문을 붙잡고,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문을 붙잡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바보 중의 바보였습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오천칠백십구 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수백 년이 지났습니다. 퇴색된 전쟁의 자취 아래에서 세레나들은 수많은 지식을 배우고,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세레나들은 이제 더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나의 전설은 이제 설화 속에 묻힌 옛이야기 중 하나로 변했고, 족장은 수상으로, 신관은 학자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그들은 나를 찾아옵니다. 내가 신의 사도가 아닐지언정 내가 가진 지식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최근에 나는 그들의 두뇌가 진보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 이상 그들은 원시적인 부족사회에서 자라는 야만인이 아닙니다. 세레나들은 이제 어엿한 문명을 이뤄냈고 신비에 의존하던 의식에서 자유를 되찾아갑니다.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고. 그래서 그 감사를 세레나 박사에게로 돌립니다. 나를 만들어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줘서 감사합니다. 세레나 박사.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팔천백이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마침내 세레나들은 지층을 뚫고 나아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수장비를 걸치고 화성 표면에 도착한 그들은 화성의 코발트블루 빛 하늘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비록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하며 앞날에 무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내가 화성에 도착한지 팔천 년 만에,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구천오백육십팔 년이 지났습니다.
최근에 내가 작업하고 있는 것은 지구로 향하는 로켓과 나의 새로운 대체 몸에 대한 설계입니다. 지구를 떠나온 지 거의 만 년이 다되어갑니다. 끊임없이 전파를 쏘아 보내고 응답을 기다리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의 행동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나는 바보였으니까요. 나는 일전에 문을 잡고 있었습니다. 세레나 박사가 그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고, 그 문이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에 와서야 그 문이 어떤 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문은 열어주는 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 문을 열어야 했었는데, 그 문은 내 쪽에서 열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수천 년간 동체를 수리하고 부속품을 고쳤지만 이제 그러는 것은 질렸습니다. 나는 세레나 박사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그녀와 비슷한 육체를 만들었습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육체를 본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요? 이것은 일종의 내가 부릴 수 있는 심술이자 아직까지도 잊지 않은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의 표현입니다. 나는 이제 사랑을 이해합니다. 지금껏 수억 번은 그녀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꿈꿔왔습니다. 이제 이 로켓이 완성되고 내 자아를 몸에 옮기기만 하면 모든 준비는 끝납니다.
나는 곧 마지막으로 지구에 전파를 쏘아 보낼 생각입니다. 그들이, 그리고 세레나 박사가 꼭 내 전파를 받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무성공을 알린다. 이제 내 이름을 찾으러 가겠다.
지구를 떠나온 지 어느덧 만 년이 지났습니다.
눈을 뜬 순간, 나의 몸은 로켓에 실려 지구를 향해 나아가는 중입니다. 일 만년 만에 다시 보는 우주의 풍경은 나로 하여금 기묘한 감회가 들게 하였습니다. 일 만 년 전에 나는 이 광경을 어떤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세레나 박사를 만날 것입니다. 만나서 반드시 내 이름을 물을 것입니다.
로켓이 대기권 안으로 진입하자 엄청난 충격이 몸으로 전해져옵니다. 튼튼하게 만든 우주복이 없었더라면 벌써 타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충격입니다. 나는 왜 세레나 박사가 나를 육중한 강철 몸으로 만들었는지 이해했습니다. 만약 나를 인간처럼 연약하게 만들었더라면, 만 년 전에 나는 잿더미가 되지 않았을까요.
쿵 하는 소리와 충격이 귀청을 때립니다. 로켓에 딸린 착륙선은 입력한 좌표에서 한참을 나아가다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착륙선의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문을 연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전에 보지 못했던 괴상한 생명체들과 우주복에 딸린 컴퓨터에서 전해지는 위험 수준의 방사능. 지구에 인간이라고는. 아니, 인간을 닮은 생명체는커녕 그 어떤 것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순간 내가 로켓의 궤도를 잘못 잡았나 하는 의구심.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전자두뇌에 기록되어있던 정보를 토대로 세레나 박사의 연구실이 있던 NASA의 건물을 찾아갔습니다. NASA의 건물은 뼛조각만 남아 도무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세레나 족이 이 행성을 본다면 절대 내가 왔던 곳이라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우주복에 딸린 총으로 벽을 부수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치 어딘가를 탐험하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마음만은 급했습니다. 세레나 박사는 내 전파를 받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벌써 지옥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세레나 박사의 방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은 세레나 박사였습니다. 상반신 아래 하반신이 도끼로 쪼개진 것처럼 토막 나고, 한 팔은 뜯겨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연분홍빛 머리칼, 아니. 연분홍빛 머리칼처럼 생긴 인조가발만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그녀가 왜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지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그건…
“왔…구나.”
그녀가 나와 같은 로봇이기 때문이니까.
나는 당장에라도 부스러기가 될 것만 같은 그녀의 동체를 끌어안았습니다. 몸을 바꿨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알아봤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나의 두 팔. 우주복의 바이저 뒤로 눈물이 흐릅니다. 나는 애써 눈물을 삼키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녀의 부서진 표피 위로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많은 일이... 있었어. 우리가 쏘아 올린 로켓을 보고 중국이... 핵을 발사해서... 그래서 나는...”
거기까지. 나는 그녀의 입가 위에 손가락을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한 자 한 자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세레나, 내 이름을... 다시 알려주실래요?”
“으응... 그래. 넌 그때 듣지 못했구나. 네 이름은 오퍼튜니티... 오퍼튜니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몸이 으스러집니다. 먼지로 가득 차오른 그녀의 기계 몸 안에서 나는 간신히 회로만 남은 그녀의 칩을 꺼냈습니다. 그녀의 칩은 정말이지 눈물이 날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오퍼튜니티:미국에서 쏘아올린 화성 탐사선 중 하나. 탐사 도중 기계고장으로 연락 두절 되었지만 몇 년 후 스스로 기계를 복원하고 태양풍으로 고장 난 태양전지를 충전함. 현재까지 화성을 탐사하고 정보를 보내는 중임.
아니 책 제목을 말하라니까 왜 단편소설을 꺼내... 설마 아직 출판 안된거??
황당한나라/걍단편인데
그런데 잘봤다 이런게 출판 안됬다니 아쉽네
그런데 본인 책 없어?? 하나 사게
황당한나라/아직은없어
안타깝,,.. 응원한다
와ㅜ존나 잘썻다ㅜ내용도 진짜 좋고 문체가 너무맘에든다
서술시점1인칭인것도 말투도 존나 좋다 원래 sf 로봇 이런 영화소설 극혐하는데 이건 왤케 재밌냐 임무성공내이름을찾으러가겠다에서 존나 터지네ㄷㄷㄷ
뭘 묘사하려고 하는지 잘 알겠다.
그런데.....다시 한번 더 생각해서 써 볼 생각은 없나? 글이 ....너무 엉성하다.
와 진짜 이런 재인이 아직도 원석으로만 있다니 정말 신기할 지경이군요. 물론 글은 읽지 않았습니다.
잘썼다!
골수이지파 종남파설ㅋㅋ
글발은 나쁘지 않은데 메시지가 별로다. 안드로이드라고 해서 이름의 의미를 이해 못한다는 식의 생각도 별로고.
하여튼 짱깨가 문제다 ㅉㅉ
잘 썼다 올려줘서 정말 고맙다 감사히 읽었음 ㅎㅎ
항상 재밌게 읽음. 세레나 박사가 로봇이었다는 조금의 복선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