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고약하다. 흑갈색의 약액은 걸쭉했고, 뜨거웠다. 나는 거대한 약탕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운기하라."
지시에 따라 호흡을 고르고 심법을 암송했다. 주화입마를 강제하는 심법이었다. 신을 뽑아낸 자리에 마를 깃들이는 과정이다. 신교의 비법은 심오막측하여 한계가 없다. 내가 평생을 쌓아온 무거운 내력이 민들레씨 날리듯 가볍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허탈감이 느껴지리라 상상했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상실감도 고통도 없었다. 그 무감함이 오히려 기묘하여 눈을 떠 보았다. 회백색의 수증기와 검붉은 마기가 허공을 휘돌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과, 전신으로 스며드는 약물, 머리에 꽂힌 침, 역겨운 냄새와 흐릿한 시야 속에서 나는 흐릿해진다.
어느새 내력이 모두 사라졌다. 서서히 오감이 사라진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근육에 힘이 풀린다. 기억이 사라질 것이다. 감정도 사라질 거라고 들었다.
대법이 끝나면 나는 강시가 된다.
신교 역사상 최강의 강시, 아무런 번뇌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초인적인 병기가 되어 그녀의 적을 말살하는 일에 활용될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하여 강시가 된다.
망설임은 없다. 그녀를 위해 사라지는 것이 내게 남은 유일한 바람이었기에.
후회도 없다. 아둔한 내가 최선의 길을 선택하였기에.
하지만 의식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번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오른다.
마영대장의 별명은 귀검이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에게 항명하기 위해서는 그를 죽여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귀검의 충실한 수하였다.
귀검은 망곡(亡谷)출신이었다. 나도 망곡 출신이다. 망곡은 중원 각지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세뇌시키고 단련시키는 신교의 훈련소였다. 망곡의 훈련생들은 망자라고 불리웠다.
나는 일곱살때에 망곡에 팔려와 망(亡)삼백팔호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년 후에는 망칠십칠호가 되었고, 이년 후에는 망이십구호가 되었다. 망곡을 나설때에 나는 열다섯살이었고, 망일호였다.
귀검은 전대의 망일호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내게 참 잘해주었다. 나는 귀검의 직속으로 배속되어 마영십사호가 되었다.
마영대로서의 임무는 단순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냈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사는게 참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세뇌를 풀어낸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무공을 익히는 일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나를 금제하는 대부분의 제약을 스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의 상태를 귀검에게 보고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신교의 살수로서 나는 그럭저럭 인정받고 있었다. 편한 나날이었다. 당시의 나에겐 별다른 목적의식도 회의도 없었다. 나는 귀검에게 쓸모있으며, 위협이 되지 않는 적당한 수하가 되어 3년을 더 살았다.
그냥 살고, 그냥 죽였으며, 그냥 수련했다. 일상은 단순했다.
그녀를 만나는 날에, 나는 마영일호였고, 열여덟살이었다. 귀검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슬슬 불편해지던 즈음이었다.
귀검은 나를 견제했지만, 딱히 죽이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마영대를 떠나야만 했는데, 명목상의 승진이었지만 사실상의 방출이었다.
어느날 귀검이 나를 성신궁으로 데려가더니, 성신단의 단장에게 굽실거리더니, 나는 신녀를 호위하는 성신단에 이속되었다.
성신단장은 마흔 가량의 근엄한 중년인이었다. 그가 나를 신녀에게 데려가 인사시켰다.
신교에서 가장 존귀하신 신녀님과, 신교의 소모품인 나.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였을까?
나를 강시로 만들고 있는 액체에는 백종의 영약과 백종의 극독이 혼합되어 있다고 들었다. 내가 들어와있는 보정(寶鼎)은 천하에 유일한 귀물이고 그것을 신교의 성화로 달여낸다. 극강의 무인이 스스로 내력을 흩어버리고 이지를 상실한 채 대법을 받아야 한다.
약액을 조제하는 일에 신교의 역량을 총동원하였고, 신교에서 가장 강한 내가 자원하였으며, 수많은 방술사들과 의원들이 대법에 매달려 있다.
대법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달구어진 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내 몸에서 신을 뽑아내고 혼을 흩어버리는 과정이리라. 아마도 내가 느낄 수 있는 최후의 고통이리라. 이렇게 영혼이 쪼개어져버리고 나는 사라지리라.
고통은 깊었다. 머릿속이 탈색되듯이 비어간다.
환청처럼 그녀의 목소리만이 귀에 아른거렸다. 약한 새가 우짖듯이 나약한 목소리.
신녀는 새장에 갇힌 전서구와 같은 사람이었다. 필요하고, 귀중하지만, 자유롭지 않으며, 향수병에 빠져있는.
전서구는 언제나 고향을 찾아 날아간다. 마영대 시절에는 전서구의 습성을 유용하게 생각했다. 비둘기의 다리에 서신을 매달아놓으면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 주인에게 서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보낼 서신이 없으면 새장은 열리지 않는다. 날지 못하는 전서구는 슬픈 존재였다.
신녀의 고향은 절강성이었다. 신교가 중원을 수복하여 신교천하를 이루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었다.
중원의 무림인 세력들과, 황제의 병사들과, 신녀를 증오하는 수많은 교적들을 모조리 죽이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비둘기처럼 빠르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성신단의 단원들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단원들의 일상을 궁금해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했다.
하지만 성신단은 그녀와 대화하지 않았다. 교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무조건의 복종과 살신성인의 희생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들은 신녀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교주가 신녀와의 대화를 금하였기에, 그녀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목숨이 아까워서 그녀와 말하지 않았다. 근접호위 당번일 경우에는 말없이 그녀의 한탄을 들었다. 몇 번이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항상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성신이호였다.
"성신이호!"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었지만 듣기에 좋다. 나는 신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날아오는 비표를 퉁겨냈다.
암습자들은 꽤 강적이었다. 도합 칠인의 자객이 궁에 침입하여 성신단 열세명을 죽였다.
살아남은 호위는 내가 유일했고, 자객은 모두 건재했다. 등 뒤에서 신녀가 절망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교주... 어째서..."
그녀는 비둘기처럼 울었다. 무능한 성신단을 탓하는 대신에 교주를 원망하며 울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아름답다.
드디어 감시의 눈이 떨어졌다. 성신단은 죽었고, 자객들은 곧 죽을 것이다. 신녀와 이야기할 수 있다.
이제 전력을 다해도 의심받지 않으리라.
망곡에서 배운 무공은 네가지였다. 무공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빠르게 내공을 쌓는 무공, 시선을 피하는 무공, 조용히 걷는 무공, 조용히 찌르는 무공.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무공들이다.
신녀는 자신의 시야에서 나를 놓쳤는지 약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신녀와 암습자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들이 신녀에게 한걸음 접근할 때마다 하나씩 찔러서 죽였다.
마지막 일곱번째 자객이 신녀에게 검을 날리려고 몸을 움츠렸을 때, 그의 등골에 조용히 비수를 찔러 넣었다.
자객의 목덜미에는 거미모양의 반점이 있었다. 귀검이었다.
"성신이호!"
신녀는 무공을 몰랐다. 기실 그녀는 수다를 떠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자객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그녀는 언제나 비명을 질렀다.
"네."
귀검의 등골에서 비수를 뽑아내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말을 해서인지 목이 잠겨서 내가 듣기에도 음침한 대답이었다. 신녀는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고, 나와 한동안 시선을 마주치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성신이호."
"네."
"...성신이호?"
"네."
신녀가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를 바라보는 눈빛. 나만을 위한.
그녀는 나와만 대화하고, 나에게만 웃었으며, 아마도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생각보다 강했다. 그녀가 나를 부를때마다 더욱 강해졌다. 그녀가 웃어줄 때마다 용기를 냈으며 그녀가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쓸모있는 사람, 강한 사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도 내 생각보다 강했다. 그녀는 신교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것은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신교를 장악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모였고 그녀는 단호했다.
그녀를 위해서 교주를 죽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권력이 재편되었다. 원로원의 반대파를 모조리 죽였다. 부교주를 죽이고 신녀에게 충성하는 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어둠속에 숨어서 죽이고 죽였다.
신교의 전력이 반토막이 날때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신교를 손에 넣었다. 만족스러웠다. 나는 충분히 쓸모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마대전이 일어났다.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정파의 고수들. 정파라는 이름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녀를 죽이려 하는지. 그녀는 손에 한번도 피를 묻힌 적이 없는데도, 온갖 고수들이 척마멸사를 부르짖으며 밀려들었다.
전쟁은 길었고, 우리는 밀렸다. 나는 계속 죽이고 죽였다. 그녀의 수신호위에서, 근위대장으로, 타격대장으로, 사령관으로, 누군가를 죽일수록 그녀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적은 끝이 없었고, 점점 강해졌다. 소림사의 노승과 무당파의 중년도사를 죽이고 남궁세가의 가주를 죽이던 날. 결국 검이 부러졌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검객이었다. 나와 비슷한 키. 날카로운 눈매와 검. 나는 정파의 신진고수에게 패했다. 내가 쓰러진 것을 기점으로 신교의 군세가 전멸에 가까운 패퇴를 겪었다고 들었다. 그 청년은 나를 베고 천룡검이라는 별호를 얻었다고 했다.
나는 혼절한 채 신교로 돌아와 회복에 전념했다. 부상은 크지 않았다. 일주일만에 완쾌할 수 있었다.
그 일주일 사이에 신교는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그녀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녀는 새와 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죽음을 명령했다.
강시가 되면, 이길 수 있을것이다. 이 세상을 상대로 싸울 수 있으리라.
나는 그녀를 위해서 죽으리라.
대법의 마지막 절차가 다가왔다.
내가 죽기 전에 내 몸에 그녀의 목소리를 심는다.
나의 주인과 나의 몸만이 기억하는 진언으로 강시는 주인을 인식하고 그 명령에 따른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단 한마디의 주문. 그녀와 나만의 비밀.
절대명령권. 나의 새로운 이름. 그녀만이 부를 수 있는 나의 새 이름.
그녀가 속삭였다.
"장난감."
그 한마디에, 내 영혼이 파괴되고 나는 강시가...
군림천하같은 커플링이군
흐미 래청성님 필력보소...
허무개그 무협
근데 강시되면 꼬추 안서서 신녀를 딸 수가 없잖아
반전에 집착하는 느낌.. 마지막 구절에서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보단 김빠졌다.
신녀 개새뀨...
마지막 문장이 정신이 파괴되고 의식이 소멸하는 순간을 의미하는건지, 아니면...
오히려 허탈하네